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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프리드리히

[박영택 교수의 '화가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보다']

사람들은 자연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비로소 성찰한다. 반성한다. 그러니까 자연은 관조의 대상이자 심미적 공간인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정의 공간이기도 하다. 세속을 지우고 자연 앞에 섰을 때 더없이 상쾌한 감정은 왜 일어날까? 머리가 지옥일 때 차를 몰고 드디어 바다에 도착해 그 망망대해를 바라보았을 때 왜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핑 돌면서 가슴이 확 터져나가는 듯할까?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림 속의 남자는 한결같이 산속 작은 집에서 책을 읽고 매화를 감상하며 흐르는 물을 내려다본다. 혹은 다리를 건너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를 기다린다. 그는 그렇게 공부하고 수양하며 도를 닦는다. 군자, 신선이 되고자 열망한다. 자연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동양화의 그 인물산수화가 떠오른다. 그림 속 남자는 분명 작가 자신이다. 얼굴을 보여 주던 기존의 자화상과 달리 이 그림은 뒷모습만을 보여준다. 사실 뒷모습은 앞모습에 비해 더 많은 얘기를 해주는 편이다. 구체적이고 세세한 표정과 생김새를 지운 체 오로지 차갑고 단호한, 침묵의 등이 역설적으로 문자화, 언어화 시킬 수 없는 말들을 발산한다.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등이 내는 말이 더 무섭다.

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무한한 자연에 대한 경외, 거대한 산악과 광활한 바다에 대한 열정을 지닌 이들이 바로 낭만주의의 예술가들이었다. 낭만주의의 유토피아란 세계나 자연과 일체가 된 인간 존재의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프리드리히는 저 자연을 응시하면서 그것과 부단히 하나가 되는 어떤 상태를 열망하고 있나보다. 멋지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무엇일까를 질문하며 반성하는 행위이다. 그는 기존의 자신을 새삼 부정한다. “나는 내가 아니다”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진정한 삶을 꿈꾼다. 이게 사유하는 인간 존재의 특권이다. 고유한 자기만의 생을 꿈꾸는 이들은 오직 자신의 단독적인 삶에 대한 긍정, 그리고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자유에 대한 확신을 지닌 이들이다. 세계의 가치는 우리의 해석 속에 있다는 니체의 말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이 그림 속 주인공이 마치 초인의 이미지와도 유사하다.

화가는 안개와 구름이 자욱한 자연풍경을 내려다본다. 그곳은 자신의 조국 땅, 독일의 자연이다. 민족주의적인 내음도 난다. 생각해보면 작가는 나폴레옹의 독일(1806년 드레스덴 정복)침공을 바라보면서 울분을 느꼈을 것이다. 후일 히틀러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좋아해 이를 나치 선전도구로 사용하곤 했다. 지금도 이 그림은 자주 패러디되고 있다.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캔버스에 유체물감, 98.5× 75cm, 1818년경, 독일, 함부르크미술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 David Fridrich: 1774-1840)

프리드리히는 항상 산책용 지팡이와 스케치 도구를 들고 숲으로 다니곤 했다고 한다. 그는 늘 혼자 고독하게 다니며 자연과의 밀회를 즐겼다.

"지금의 나로 있기 위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몸을 맡겨 구름과 바위와 나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겠다. 자연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그에게 자연은 신성한 것이었다. 그 자연을 관조하고 소요하며 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행위란 결국 도처에 임재 하는 창조주를 느끼고 창조의 생명력과 교감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동시에 그것은 자기 성찰과 관련된다. 그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자기 내면을 응시한다. 알다시피 프리드리히는 당시 일반적인 그림들과는 달리 단순히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것, 인간의 눈에 의해 감지된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예술은 인간 내면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은 이다. 작가의 그림이란 결국 그가 믿고 의지 하는 도덕적. 종교적 가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예술가의 상상력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연주의적인 인상이 아니라 정신 안에서 공명하는 그림의 공간이 갖는 분위기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림이 진정한 예술작품이 되려면 글자 그대로 '정신적으로 충만'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 속 주인공, 작가는 옛 독일 의상을 입고 있다. 이 그림은 1818년 그가 카롤리네 봄머라는 여자와 결혼하던 해에 그려진 그림이다. 44세라는 늦은 나이에 25세의 젊은 여자와 결혼했다. 그의 오랜 독신생활방식을 결혼은 크게 바꾸어놓은 듯하다. 그는 사내는 아내가 있으면 우스꽝스러워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혼하자마자 얼마 후 산꼭대기에 올라가 다소 답답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은 아닐까? 결혼을 왜 했을까? 왜 했을까? 하면서... 농담이다.

가파르게 솟은 전경이 암반에서 돌출된 어두운 꼭대기에 한 남자가 뒷모습을 보이며 서 있다. 멋있는 장면이다. 작가는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의 바다 저쪽, 맑은 대기 속으로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바위기둥 들을 지나 멀리 산봉우리와 산맥을 차분히 응시하고 있다. 구름이 층을 이루고 안개가 바다처럼 깔려 있는 이 풍경은 숭고함을 불러일으킨다. 덧없이 스러지며 순환하는 영원하고 무한한 자연 현상을 고독하게 바라보는 작지만 커다란 인간 존재를 보여준다. 그것에서 ‘나’란 주체, 개체는 무의미해 보인다. 영원과 무한 속에서 유한한 인간 존재는 그만큼 슬프고 남루하다. 그러나 그는 저 신비스러운 자연 앞에서 세계에 대한 성찰과 자기 존재에 대한 반성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 꿀 것이다. 그는 새로운 존재가 환생할 것이다.

박영택

필자 소개

성균관대대학원미술사전공, 전 금호미술관큐레이터, 현재 경기대학교예술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식물성의 사유>, <미술전시장 가는 날>,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가족을 그리다> 등이 있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0 0
    sprite1001

    좋은 글 고마워요.
    또한, 호소하는 마음담아 전합니다!!
    요즘 수도권 시내버스에도 광고되고 있는 유투브 컨텐츠에요.
    감상하시고 옳은 판단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https://youtu.be/2QjJS1Cnr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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