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은행, 씨티-웰스파고-BOA 등 5~7개"
<분석> '美대형은행 살생부'에 월가 전율, 오바마는 고민중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지난 10일 자산 1천억달러 이상이거나 자금 지원이 필요한 은행들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s)'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옥석을 가리겠다는 의미로, 그후 월가에는 몇몇 은행들이 '국유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급속 확산되며 '살생부'가 나돌기 시작했다.
월가는 이 중에서도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국유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실제로 이들 은행 주가는 가이트너 발언후 지난 6거래일 동안 수직폭락했다. 국유화시 기존 주식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과감하게 자체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공개하면서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타임>은 씨티그룹, BOA, 웰스파고, JP모건체이스 등 가장 덩치가 큰 4대 은행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테스트에 동원된 방법은 자본을 자산으로 나눈 비율로, 낮을수록 은행이 위험하다는 의미다. 테스트 통과비율은 5%로, 자산규모가 자본의 20배라는 의미다.
조사결과 이 비율이 합격선인 5%를 넘은 곳은 '월가의 대부'인 JP모건체이스 한곳뿐이었다. 웰스파고와 씨티는 각각 3.7%와 3.8%였고, BOA는 4.6%였다. <타임>은 "웰스파고는 심폐소생술이 시급한 상태이고, 씨티는 중환자실에 실려가는 중이며, BOA는 수혈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의 4대 은행중 2곳은 이미 파산상태며, 1곳 역시 계속 자금지원을 해줘야 겨우 연명할 수 있는 상황으로, 대다수 미국 대형상업은행들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져있는 좀비은행에 다름 아니라는 의미였다.
크루그먼 "대형은행중 5~7개 사실상 붕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역시 “대형은행 가운데 5개, 많게는 7개가 사실상 무너졌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정부가 밝힌 `스트레스 테스트`를 그대로 적용하고 크기에 상관없이 부실은행은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살생부가 잇따라 나오면서, 미국 의회와 월가에는 '국유화'가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급속확산되고 있다. 철저한 시장신봉론자인 앨런 그린스펀 미연준 전의장과 공화당 의원들이 잇따라 국유화 불가피론을 펴더니, 민주당의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 은행위원장까지 20일 국유화론에 가세하면서 이날 씨티주가가 22%나 폭락하는 등 뉴욕 증시를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미국 상업은행들의 디폴트 위기를 가장 먼저 경고하며 국유화론을 펴온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날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 경제위기를 "우리는 아직 3~4회 이닝에 있다"며 야구에 비유한 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조속한 국유화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스트레스 테스트' 방침에 대해 "그것은 어느 은행의 유동성이 부족하고 지급불능 상태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객관적 수순"이라며 긍정 평가한 뒤, "우리는 몇몇 은행들을 떠맡아야 할 것"이라며 국유화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오바마의 고민, '국유화했다가 달러-국채 폭락하면...'
백악관은 그러나 국유화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는 민간 금융시스템이 정부의 충분한 규제가 있으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며 국유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백악관이 왜 이럴까.
핵심 이유는 씨티은행 등을 국유화할 경우 이들이 안고 있는 천문학적 부채가 정부 부채가 되면서 지금 이미 12조달러로 급증한 미국 국가채무가 통제불능 상태로 폭증하면서, 미국 달러화와 채권이 폭락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얼마전 부실은행 2개를 국유화, 이들의 부채 1조~1조5천억파운드를 떠맡게 되면서 국가부채가 2조파운드(2조8천500억달러)로 급증했다. 영국 국가부채는 영국 GDP의 147%로 선진국중 가장 높은 수치다. 여기에다가 추가 파산위기를 맞은 대형은행들까지 국유화할 경우 이들의 부채 4조4천억달러가 더 국가부채로 잡히면서 영국 자체가 디폴트 상태에 빠져들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게 바로 '영국 디폴트설'의 골간이다.
미국도 최근 잇따른 구제금융으로 국가부채가 12조달러로 급증하며, GDP의 85%까지 국가부채 비율이 급등한 상태다. 여기에다가 씨티, 웰스파고, BOA 같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은행들을 국유화하게 된다면 국가부채 비율은 영국 못지않게 폭증하면서 미국 자체가 디폴트 위기설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바마의 말못할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 디폴트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곧 '2차 세계대공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미국 달러화와 국채 값은 폭락적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다수 국제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럴 경우 미국 국채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국들도 치명적 타격을 입는 등, 세계경제는 또한차례 연쇄적 대혼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바마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으며, 이를 '외통수 고민'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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