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반감의 한 가운데 서울대 서 있다"
[정운찬 총장 이임사] "냉철한 전문지식이 뜨거운 사회의식과 결합해야"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19일 직선제 총장으로선 최초로 4년 임기를 마치고 서울대 문화관에서 이임식을 갖고 총장직에서 물러나, '평교수'로 돌아갔다.
정 총장은 이날 오후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에서 내외빈이 참석한 가진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통해 '서울대의 위기'를 지적하며 서울대인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사회적 반감의 한 가운데 서울대 서 있다"
정 총장은 "총장으로 일한 지난 4년간, 저는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존경심이 식어 있음을 도처에서 목격했다"며 "과거는 그렇지 않았다. 지식인은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그들은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력과 현실문제의 해답을 주는 학문적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그 존경에 화답했다. 그러나 사회는 더 이상 지식인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 싸늘하기까지 하다. 가슴 아프게도 그와 같은 사회적 반감의 한가운데 서울대가 서있다"고 '서울대의 위기'를 정면으로 언급했다.
정 총장은 이어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으나 나를 포함한 서울대 구성원들이 이 사실을 더 이상 간과할 때가 아니다"라며 "서울대에 대한 부당한 비난과 외압이 있을 때는 학교를 지키기 위해 설득하고 투쟁해야 하고 나 역시도 그랬지만 서울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그 일부라도 우리 자신의 허물에서 연유한 것이라면, 통렬한 자기성찰과 자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우리들은 이제까지 서울대를 향한 존경과 권위를 당연시하고 누리기만 하지 않았나? 편협한 엘리트주의에 갇혀 학자로서의 겸손을 잊은 적은 없었나? 작은 기득권에 집착하여,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나? 자신의 학문을 사회 전체가 아닌 부분, 우리가 아닌 나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남용한 적은 없었나?"라고 반문한 뒤,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반감은 기대와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애증도 사라져서 무관심으로 변하기 전에, 우리 서울대인들은 스스로를 서둘러 돌아보아야 할 것"이라고 치열한 자성을 촉구했다.
"냉철한 전문지식이 뜨거운 사회의식과 결합해야"
정 총장은 따라서 "지금은 지식인에 대한 존경과 전문지식에 대한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한 때"라며 "그 첫 단계로, 우리들은 학문적 역량을 키워, 치밀한 지적 탐구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을 사회에 제시하고 학문적 열정으로 현실문제에 대해 올바른 해법을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이어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급속한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며 "이 시대 지식인들은 급히 달성하느라 채우지 못한 내실을 다져서 허약체질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평소 사회적 갈등의 해법으로 제시한 '절차적 민주주의'와 관련, "(그 방향은) 다양한 집단의 첨예한 갈등상황에서 지식인은 이해관계를 예리하고 공평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조정하고 기꺼이 승복하게 만드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재임기간 중 노무현 대통령과 치열한 설전을 벌였던 통합교과형 논술 도입 등 교육 개혁 논란과 관련, "숙고를 동반하지 않은 이념적 편향을 버리고 수월성과 평등성이 조화를 이룬 교육의 정도를 찾아내야 한다"며 "공정하고 생산적인 경쟁을 포용하는 교육제도, 부모의 경제력이 아닌 학생 자신의 능력으로 경쟁하는 교육제도, 계층이동을 활성화시키는 교육제도, 나아가 국가경제에 필요한 우수한 인적자본을 극대화시키는 교육제도가 무엇인지 논의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결론적으로 '서울대의 위기', 더 나아가 '지식인의 위기' 극복 방안으로 "냉철한 전문지식이 뜨거운 사회의식과 결합해야 한다"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먼저 베푸는 리더십 길러라"
정 총장은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갖추라"며 "타인을 배려하여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리더십, 사사로운 연을 버리는 공평무사한 리더십, 자신의 능력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먼저 베푸는 리더십을 길러달라"고 주문했다.
정 총장은 “임기 내내 쌓인 숙제를 하는 학생처럼 매일 허덕였다”면서 재임 중 도움을 준 각계 인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퇴임사를 마감했다. 이날 퇴임사에는 정 총장이 영원한 스승으로 여기는 조순 전 한은총재, 나이차를 뛰어넘은 교분으로 유명한 김종인 의원 등 내외빈과 전임총장들, 교수, 학생 등이 참석해 정 총장의 성공적 퇴임을 축하했다.
정 총장은 퇴임 후에는 경제학부 교수로 돌아가 올해 2학기부터 3과목의 강의를 맡아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할 계획이다.
다음은 정 총장의 이임사 전문.
이임사
존경하는 전임 총장님과 서울대학교 교직원 여러분, 그리고 바쁜 시간 중에도 이임식에 참석해주신 학생과 내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대학교 총장직을 끝내고 작별인사를 드리기 위해, 여기 섰습니다. 4년 전 이 자리, 총장 취임식에서 여러분과 다짐했던 벅찬 포부가 기억납니다. 그 때 저는 서울대학교가 전문적 지식, 비판적 지성, 공동체적 덕성, 측은지심의 감성을 갖춘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을 해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식전수기관으로부터 지식창출기관으로 도약시킬 것을 제안했습니다. 우리 모두 서울대학교를 세계 유수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대학으로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그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분과 함께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원대한 목표에 비추면 성과는 미미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것조차도 저 혼자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함께 고뇌하고 애써주신 교직원과 학생 여러분 덕분입니다. 지난 4년간 여러분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내신 성과들이, 서울대학교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가는 받침대가 되어주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가려는 행선지 곳곳에 장애물이 있습니다. 장애물의 정체와 극복하는 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이 자리를 빌려 감히 피력해봅니다. 물러가는 총장이 드리는 충정의 한 자락으로 너그러이 받아주십시오.
총장으로 일한 지난 4년간, 저는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존경심이 식어 있음을 도처에서 목격했습니다. 과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식인은 사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력과 현실문제의 해답을 주는 학문적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그 존경에 화답했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더 이상 지식인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싸늘하기까지 합니다. 가슴 아프게도 그와 같은 사회적 반감의 한가운데 서울대가 서있습니다. 제가 겪은 체험에 바탕한 추론입니다.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서울대 구성원들이 이 사실을 더 이상 간과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을 올리려고 합니다. 서울대에 대한 부당한 비난과 외압이 있을 때는 학교를 지키기 위해 설득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서울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그 일부라도 우리 자신의 허물에서 연유한 것이라면, 통렬한 자기성찰과 자각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것입니다.
떠나는 총장이라는 핑계로 감히 서울대인들을 대표하여 자문해봅니다. 우리들은 이제까지 서울대를 향한 존경과 권위를 당연시하고 누리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편협한 엘리트주의에 갇혀 학자로서의 겸손을 잊은 적은 없었습니까? 작은 기득권에 집착하여,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습니까? 자신의 학문을 사회 전체가 아닌 부분, 우리가 아닌 나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남용한 적은 없었습니까?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반감은 기대와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애증도 사라져서 무관심으로 변하기 전에, 우리 서울대인들은 스스로를 서둘러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지식인에 대한 존경과 전문지식에 대한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 첫 단계로, 우리들은 학문적 역량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치밀한 지적 탐구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을 사회에 제시해야 합니다. 학문적 열정으로 현실문제에 대해 올바른 해법을 발굴해야 합니다.
전문지식에 대한 탐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시간과 공간의 큰 틀 속에서 조망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급속한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급히 달성하느라 내실이 채워지지 못했습니다. 지식인들의 임무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실을 다져서 허약체질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민주적 의사결정절차의 확립이 그 하나일 것입니다. 다양한 집단의 첨예한 갈등상황에서 지식인은 이해관계를 예리하고 공평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조정하고 기꺼이 승복하게 만드는 방향 등이어야 합니다.
교육부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숙고를 동반하지 않은 이념적 편향을 버리고 수월성과 평등성이 조화를 이룬 교육의 정도를 찾아내야 합니다. 공정하고 생산적인 경쟁을 포용하는 교육제도, 부모의 경제력이 아닌 학생 자신의 능력으로 경쟁하는 교육제도, 계층이동을 활성화시키는 교육제도, 나아가 국가경제에 필요한 우수한 인적자본을 극대화시키는 교육제도가 무엇인지 논의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서울대인들의 냉철한 전문지식이 뜨거운 사회의식과 결합해야 합니다. 학문을 바로 세우고, 정확한 정보와 숙성한 지식을 사회에 제공해야 합니다. 하위부문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발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내야 합니다. 그제서야 서울대학교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으로 사회의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학생 여러분, 우리 사랑하는 학생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창조력을 키우며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준비를 해주십시오. 주어진 것을 공부하거나 잘 알려진 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패를 두려워말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합시다.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합시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십도 갖추십시오. 타인을 배려하여,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리더십을 기르십시오. 사사로운 연을 버리는 공평무사한 리더십을 함양하십시오. 자신의 능력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먼저 베푸는 리더십을 길러 주십시오. 무엇보다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국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를 잃지 마십시오.
이제 마지막 인사말씀을 올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임기내내 쌓인 숙제를 하는 학생처럼 매일을 허덕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 되돌아보니, 거기에는 제 삶의 일부인 서울대학교를 성장시키는 기쁨, 저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회를 갖게 된 데 대한 감사,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여러분들이 주신 조언과 격려가 있었습니다. 즐거움과 보람이 번민과 고뇌보다 더 컸습니다.
사랑하는 서울대학교 가족과 서울대학교를 아껴주시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늘 저를 돕고 격려해주시며, 제 옆에 계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족한 능력이나마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도, 4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저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7월 19일
서울대학교 총장 정운찬
정 총장은 이날 오후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에서 내외빈이 참석한 가진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통해 '서울대의 위기'를 지적하며 서울대인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사회적 반감의 한 가운데 서울대 서 있다"
정 총장은 "총장으로 일한 지난 4년간, 저는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존경심이 식어 있음을 도처에서 목격했다"며 "과거는 그렇지 않았다. 지식인은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그들은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력과 현실문제의 해답을 주는 학문적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그 존경에 화답했다. 그러나 사회는 더 이상 지식인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 싸늘하기까지 하다. 가슴 아프게도 그와 같은 사회적 반감의 한가운데 서울대가 서있다"고 '서울대의 위기'를 정면으로 언급했다.
정 총장은 이어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으나 나를 포함한 서울대 구성원들이 이 사실을 더 이상 간과할 때가 아니다"라며 "서울대에 대한 부당한 비난과 외압이 있을 때는 학교를 지키기 위해 설득하고 투쟁해야 하고 나 역시도 그랬지만 서울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그 일부라도 우리 자신의 허물에서 연유한 것이라면, 통렬한 자기성찰과 자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우리들은 이제까지 서울대를 향한 존경과 권위를 당연시하고 누리기만 하지 않았나? 편협한 엘리트주의에 갇혀 학자로서의 겸손을 잊은 적은 없었나? 작은 기득권에 집착하여,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나? 자신의 학문을 사회 전체가 아닌 부분, 우리가 아닌 나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남용한 적은 없었나?"라고 반문한 뒤,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반감은 기대와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애증도 사라져서 무관심으로 변하기 전에, 우리 서울대인들은 스스로를 서둘러 돌아보아야 할 것"이라고 치열한 자성을 촉구했다.
"냉철한 전문지식이 뜨거운 사회의식과 결합해야"
정 총장은 따라서 "지금은 지식인에 대한 존경과 전문지식에 대한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한 때"라며 "그 첫 단계로, 우리들은 학문적 역량을 키워, 치밀한 지적 탐구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을 사회에 제시하고 학문적 열정으로 현실문제에 대해 올바른 해법을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이어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급속한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며 "이 시대 지식인들은 급히 달성하느라 채우지 못한 내실을 다져서 허약체질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평소 사회적 갈등의 해법으로 제시한 '절차적 민주주의'와 관련, "(그 방향은) 다양한 집단의 첨예한 갈등상황에서 지식인은 이해관계를 예리하고 공평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조정하고 기꺼이 승복하게 만드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재임기간 중 노무현 대통령과 치열한 설전을 벌였던 통합교과형 논술 도입 등 교육 개혁 논란과 관련, "숙고를 동반하지 않은 이념적 편향을 버리고 수월성과 평등성이 조화를 이룬 교육의 정도를 찾아내야 한다"며 "공정하고 생산적인 경쟁을 포용하는 교육제도, 부모의 경제력이 아닌 학생 자신의 능력으로 경쟁하는 교육제도, 계층이동을 활성화시키는 교육제도, 나아가 국가경제에 필요한 우수한 인적자본을 극대화시키는 교육제도가 무엇인지 논의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결론적으로 '서울대의 위기', 더 나아가 '지식인의 위기' 극복 방안으로 "냉철한 전문지식이 뜨거운 사회의식과 결합해야 한다"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먼저 베푸는 리더십 길러라"
정 총장은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갖추라"며 "타인을 배려하여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리더십, 사사로운 연을 버리는 공평무사한 리더십, 자신의 능력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먼저 베푸는 리더십을 길러달라"고 주문했다.
정 총장은 “임기 내내 쌓인 숙제를 하는 학생처럼 매일 허덕였다”면서 재임 중 도움을 준 각계 인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퇴임사를 마감했다. 이날 퇴임사에는 정 총장이 영원한 스승으로 여기는 조순 전 한은총재, 나이차를 뛰어넘은 교분으로 유명한 김종인 의원 등 내외빈과 전임총장들, 교수, 학생 등이 참석해 정 총장의 성공적 퇴임을 축하했다.
정 총장은 퇴임 후에는 경제학부 교수로 돌아가 올해 2학기부터 3과목의 강의를 맡아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할 계획이다.
다음은 정 총장의 이임사 전문.
이임사
존경하는 전임 총장님과 서울대학교 교직원 여러분, 그리고 바쁜 시간 중에도 이임식에 참석해주신 학생과 내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대학교 총장직을 끝내고 작별인사를 드리기 위해, 여기 섰습니다. 4년 전 이 자리, 총장 취임식에서 여러분과 다짐했던 벅찬 포부가 기억납니다. 그 때 저는 서울대학교가 전문적 지식, 비판적 지성, 공동체적 덕성, 측은지심의 감성을 갖춘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을 해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식전수기관으로부터 지식창출기관으로 도약시킬 것을 제안했습니다. 우리 모두 서울대학교를 세계 유수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대학으로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그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분과 함께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원대한 목표에 비추면 성과는 미미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것조차도 저 혼자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함께 고뇌하고 애써주신 교직원과 학생 여러분 덕분입니다. 지난 4년간 여러분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내신 성과들이, 서울대학교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가는 받침대가 되어주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가려는 행선지 곳곳에 장애물이 있습니다. 장애물의 정체와 극복하는 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이 자리를 빌려 감히 피력해봅니다. 물러가는 총장이 드리는 충정의 한 자락으로 너그러이 받아주십시오.
총장으로 일한 지난 4년간, 저는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존경심이 식어 있음을 도처에서 목격했습니다. 과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식인은 사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력과 현실문제의 해답을 주는 학문적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그 존경에 화답했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더 이상 지식인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싸늘하기까지 합니다. 가슴 아프게도 그와 같은 사회적 반감의 한가운데 서울대가 서있습니다. 제가 겪은 체험에 바탕한 추론입니다.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서울대 구성원들이 이 사실을 더 이상 간과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을 올리려고 합니다. 서울대에 대한 부당한 비난과 외압이 있을 때는 학교를 지키기 위해 설득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서울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그 일부라도 우리 자신의 허물에서 연유한 것이라면, 통렬한 자기성찰과 자각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것입니다.
떠나는 총장이라는 핑계로 감히 서울대인들을 대표하여 자문해봅니다. 우리들은 이제까지 서울대를 향한 존경과 권위를 당연시하고 누리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편협한 엘리트주의에 갇혀 학자로서의 겸손을 잊은 적은 없었습니까? 작은 기득권에 집착하여,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습니까? 자신의 학문을 사회 전체가 아닌 부분, 우리가 아닌 나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남용한 적은 없었습니까?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반감은 기대와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애증도 사라져서 무관심으로 변하기 전에, 우리 서울대인들은 스스로를 서둘러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지식인에 대한 존경과 전문지식에 대한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 첫 단계로, 우리들은 학문적 역량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치밀한 지적 탐구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을 사회에 제시해야 합니다. 학문적 열정으로 현실문제에 대해 올바른 해법을 발굴해야 합니다.
전문지식에 대한 탐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시간과 공간의 큰 틀 속에서 조망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급속한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급히 달성하느라 내실이 채워지지 못했습니다. 지식인들의 임무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실을 다져서 허약체질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민주적 의사결정절차의 확립이 그 하나일 것입니다. 다양한 집단의 첨예한 갈등상황에서 지식인은 이해관계를 예리하고 공평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조정하고 기꺼이 승복하게 만드는 방향 등이어야 합니다.
교육부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숙고를 동반하지 않은 이념적 편향을 버리고 수월성과 평등성이 조화를 이룬 교육의 정도를 찾아내야 합니다. 공정하고 생산적인 경쟁을 포용하는 교육제도, 부모의 경제력이 아닌 학생 자신의 능력으로 경쟁하는 교육제도, 계층이동을 활성화시키는 교육제도, 나아가 국가경제에 필요한 우수한 인적자본을 극대화시키는 교육제도가 무엇인지 논의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서울대인들의 냉철한 전문지식이 뜨거운 사회의식과 결합해야 합니다. 학문을 바로 세우고, 정확한 정보와 숙성한 지식을 사회에 제공해야 합니다. 하위부문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발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내야 합니다. 그제서야 서울대학교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으로 사회의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학생 여러분, 우리 사랑하는 학생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창조력을 키우며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준비를 해주십시오. 주어진 것을 공부하거나 잘 알려진 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패를 두려워말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합시다.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합시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십도 갖추십시오. 타인을 배려하여,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리더십을 기르십시오. 사사로운 연을 버리는 공평무사한 리더십을 함양하십시오. 자신의 능력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먼저 베푸는 리더십을 길러 주십시오. 무엇보다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국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를 잃지 마십시오.
이제 마지막 인사말씀을 올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임기내내 쌓인 숙제를 하는 학생처럼 매일을 허덕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 되돌아보니, 거기에는 제 삶의 일부인 서울대학교를 성장시키는 기쁨, 저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회를 갖게 된 데 대한 감사,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여러분들이 주신 조언과 격려가 있었습니다. 즐거움과 보람이 번민과 고뇌보다 더 컸습니다.
사랑하는 서울대학교 가족과 서울대학교를 아껴주시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늘 저를 돕고 격려해주시며, 제 옆에 계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족한 능력이나마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도, 4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저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7월 19일
서울대학교 총장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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