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에 줄 김밥, 밤새 만든 어느 선생님
<현장> 동일여고 조연희 교사, 급식비리 폭로후 파면 '길거리 수업'
동일여고 졸업생인 정우미 현 숙명여자대학 물리학과 3학년 학생의 회상이다.
서울 금천구 동일여고에서 국어과목을 가르치는 조연희(42) 선생님. 학생의 날? 누가 그런 걸 챙기기나 할까? 그저 나라에서 요식행위로 만들어 둔 기념일에 불과한 그 학생의 날을 조 선생님은 단 하루라도 학생들에게 의미깊은 날로 만들어 주고 싶어 자신만의 선물을 준비했던 게다.
35명 반 아이들 전체에게 손수 김밥을 싸 주기 위해 그는 전날 밤을 꼬박 새워야했다. 담임 선생님의 감동의 김밥을 받은 아이들은 맛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은 김밥이 아니라 뜨거운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꼬옥 안았다. 선생님도 아이들을 꼬옥 안았다. 동일여고 졸업생 정우미씨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제 더 이상 학생들과 함께 호흡할 수가 없다. 지난 6월 28일, 동일여고는 조 선생님을 비롯한 같은 학교 음영소(체육. 48) 선생님, 박승진(체육. 48) 선생님을 파면조치했다. 이들 세 명의 선생님이 학교에서 퇴출당한 이유는 급식비리를 비롯한 일련의 학교-재단(동일학원)이 얽힌 비리를 폭로했기 때문. 보복성 인사조처였던 셈이다. (본보 7월4일자 관련기사 참조)
그렇게 아이들을 떠나게 된 조연희 선생님은 결국 거리에서 아이들과 만나기로 했다. 지난 11일, 동일여고 아래 길모퉁이에서 첫 거리 수업을 진행한 선생님은 13일, 두 번째 거리 수업을 가졌다.
한 졸업생 “난 선생님을 통해 내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됐다”
수업시간이 파한 오후 3시 30분. 동일여고 재학생들이 삼삼오오 조 선생님의 거리 수업이 있는 장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날 두 번째 거리수업을 듣기위해 온 동일여고 재학생만 족히 1백여명. 그리고 학생들 뒤편으로는 조 선생님의 제자였던 졸업생 5명도 함께 하고 있었다.
졸업생 우미씨는 “동일여고 사태에 대해 어제 기사를 보고 알았다”면서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게 너무 안타까워 직접 선생님들을 만나기 위해 이 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우미씨는 “수많은 선생님을 겪어봤지만 조연희 선생님만큼 진정 스승이라고 부를만한 선생님은 드물었다”고 회상했다.
“있잖아요. 우리 담임 선생님. 전 저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면서 뭘 배웠는지 아세요? 내가 앞으로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 우리 선생님이 우리들을 대하듯이 나도 그렇게 사람들을 대해야지... 그걸 느꼈어요. 그걸 배웠어요.”
이 날 거리 수업에 참관한 또 다른 졸업생은 한쪽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의엿한 대학생이 된 김예지(22)씨.
“왜 울어요?”
“너무 서러워서요. 저에게, 아니 우리반 아이들 모두를 제자가 아닌, 진짜 인간으로 대하셨던 우리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길바닥에서 초라하게 수업을 하는 것이 너무 서럽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고마워서요.”
"엄마같은 선생님, 이모같은 선생님"
예지씨는 파면당한 이들 선생님들의 무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했다.
“사실 조연희 선생님을 비롯해 파면당한 음영소 선생님, 박승진 선생님... 그리고 이들 선생님 이외도 정말 양심있는 다수의 우리 동일여고 선생님들... 편하게 남들처럼 살 수 있잖아요. 비리다, 뭐다 해서 밝히지 않아도 되는 일이잖아요.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잖아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양심을 택했어요. 교육자로서, 스승으로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모습을 그렇게 보여준 거죠.”
사실 조연희 선생님에게도 이들 졸업한 학생들은 특별한 제자들이었다. 24살, 꿈많은 나이에 조 선생님은 동일여고 국어교사로 부임했다. 그가 지난 20여년 가까이 동일여고에서 숨쉬던 동안 우미씨와 예지씨와 같은 반 아이들이 더욱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들이 그에게 있어 마지막 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 비리 문제를 들추기 시작한 지난 2001년 이후로는 담임에서 배제됐다.
그가 반 아이들을 2학년으로 올려보내던 마지막 종례 시간. 그는 반 아이들 한명 한명을 꼬옥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아이들도 하나같이 선생님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졸업생들은 조연희 선생님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 ‘엄마같은 선생님’, ‘이모 같은 선생님’이었다고.
김밥 만들어준 선생님 vs 인사 안한다고 화내는 선생님
파면 이후 조 선생님은 등교하는 동일여고 학생들에게 국어 수업 자료가 담긴 유인물을 학교 앞에서 배포했다. 유인물을 받은 한 재학생은 자료 내용이 너무 좋아 학급 게시판에 붙여두었다.
그런데 해당 유인물을 본 동일여고 교감이 ‘왜 이딴 걸 여기에 붙여났냐’며 뗄 것을 강요했다. 이후 교감을 비롯한 일부 교사들이 각 학급을 돌아다니며 파면당한 조 선생님이 나눠준 학습자료 유인물이 붙어있는지 없는지를 검사했다고 재학생들은 전했다.
이 날 거리수업에 참석한 박보영(가명) 동일여고 재학생은 “그걸 보고 참 어이없더라고요. 우리가 무슨 선생님들 복직시켜달라고 서명서를 거기다 붙여놓은 것도 아니고, 그냥 학습에 참고될 만하다싶어 붙여놓은 건데. 그걸 막 화내면서 떼다니... 정말 황당 그 자체더라고요”라고 그 날의 표정을 전했다.
학교법인 동일학원 소속 중.고등학교 교장.교감들은 지난 11일, 조연희 선생님의 첫 거리수업 때 직접 거리 지도에 나섰다고 파면 교사들은 증언했다. 방송, 신문 할 것없이 동일학원 비리 문제와 관련한 주요 보도가 나가면서 재단측이 바짝 긴장한 것이다.
또다른 동일여고 재학생 윤세나(가명)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도 저기 위에 푸른색 옷 입고 계신 분 있죠? 저 분이 우리 교감 선생님인데 저렇게 횡단보도 위에 나와있어요. 아마도 여길 지켜보는 것 같아요. 아침에도 등교길에 조연희 선생님이 학교앞에서 아이들을 보기위해 서 있으면 우리들이 인사를 하거든요. 그런데 교감선생님이 인사하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그래요. 그러면서 우리가 짜증나서 교감 선생님께 인사 안하면 인사 안한다고 막 화내요.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내가 싸우는 이유... 당당하게 아이들의 눈빛을 바라보기 위해"
현재 동일여고로부터 파면 당한 이들 세 선생님은 14일 교육부에 부당파면에 따른 이의신청을 낼 예정이다. 이미 교육청 특별감사 결과 선생님들이 제기한 학교 비리와 관련해 상당부분 사실로 밝혀져 60건이 넘는 행정조처가 내려졌다.
그럼에도 동일여고를 비롯한 동일학원 측은 오히려 비리를 폭로한 선생님들을 파면조처했다. 연일 쏟아지는 주요 언론의 해명요구에도 동일학원측은 공식해명 거부는 물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교육부가 이들 퇴출 선생님들에 대해 부당 파면 결정을 내린다 해도 학교측이 행정소송을 내게되면 또 지루한 양측간 공방은 반복돼야 한다.
조연희 선생님은 이 길고 긴 싸움을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이들 눈빛을 당당하게 바라보기 위해섭니다. 제가 당당하지 못하면 아이들의 눈빛을 피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눈빛을 당당하게 바라보지 못한다면 제가 더 이상 교단에 서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저도 동일여고 출신입니다. 제 한평생을 동일과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전 동일을 사랑합니다.”
조연희 선생님의 거리 수업은 방학 중에도 주 1회 가량 실시 될 예정이다. 또 파면당한 이들 세 명의 선생님들을 성원하기 위한 공간(www.dong1.net)에서도 조 선생님의 학습지도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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