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대북송금 특검을 필두로 과거문제를 끄집어내 노골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압박하는 데 대해 청와대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김 전 대통령 발언과 관련, "전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만나 편안한 자리에서 한 것 같다"며 "전후좌우 맥락없이 흘러 나왔는데 저희에 대해서 한 말이 아닐 것이므로 청와대가 의견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며 대응을 피했다.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김 전대통령의 노 대통령 비판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만큼 반박하고 싶어도 반박할 수 없는 처지다. 대북송금 특검 문제는 북한도 그동안 끊임없이 문제삼아온 대목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재임기간중 북한과 관계가 순탄치 못했던 것도 이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 입장에선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당시 상황이 특검을 안하기 힘든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누구는 특검을 하고 싶어 했나. 끊임없이 실정법을 위반한 팩트가 터져나오고 있던 상황에 밀린 것일 뿐인데 DJ가 너무 한다"며 '벙어리 냉가슴'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친노진영 일각에서는 DJ가 전임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질타한 점에 주목하며 DJ의 속내가 대통합민주신당내 헤게모니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끊임없이 범여권주자들을 닥달해 민주신당을 창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호남내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민주신당은 민주당에도 뒤쳐진 3위로 나타나는 등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명숙, 이해찬, 유시민 등 친노대선주자들이 후보단일화를 해도 손학규, 정동영에게 크게 밀린다는 일부 여론조사 결과도 DJ에게 친노세력과 분명히 거리를 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낳고 있다.

실제로 최근 동교동에서는 "손학규냐 정동영이냐"를 놓고 고심중이란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 친노 의원은 "민주신당을 만들면서 열린우리당을 없앤 만큼 DJ가 작심하고 친노세력을 궁지로 몰아넣기로 작심한 게 아니냐"는 위기감어린 분석을 하기도 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DJ가 특검을 문제삼으며 노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노대통령이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 정치9단다운 '시간차 공격'이 아니냐"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DJ의 '노무현 공격'은 벌써부터 범여권내에 가공스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손학규측 송영길 의원이 강도높은 노무현 비판을 가한 데 이어, 24일에는 'DJ의 대구며느리'를 자처하는 추미애 전 의원이 DJ 비판에 전폭적 공감을 표시하며 대북송금 특검을 놓고 노대통령을 질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24일 DJ의 노대통령 비판을 "친노와 반노로 나뉘어 진행 중인 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 있어서 노 대통령과의 주도권 경쟁"으로 해석했다.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고 범여권 경선이 시작되면서 정가의 관심이 범여권 파워게임으로 빠르게 이동중인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