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6일 국민연금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할 일' 많다던 유시민, 盧와 만찬석상서 사의 표명

유 장관은 이날 저녁 청와대 만찬에 참석, 노 대통령에게 지난 2일 부결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장관직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승용 청와대 대변인 겸 홍보수석에 따르면 유 장관은 이 자리에서 "주무장관으로서 국민연금법 개정안 처리까지 매듭지었어야 하는데 못해서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사의를 표명한 뒤, "연금법 개정은 국가적 과제로서 반드시 국회에서 처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알았다. 두고 보자"라며 즉답을 주지 않았다.

윤 대변인은 이와 관련, "대통령께서 사의를 수용할 지 반려할 지 여부는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유 장관은 이날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일개 장관직보다는 국가대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저만 없어서 국민연금법 개정이 잘 된다면 장관직을 포기할 수도 있다"며 사의 가능성을 표명하면서도 "(그렇다고 언론이) '유시민 장관 사퇴 의사 밝혀', 이렇게 안 써 주기 바란다. 나 할 일 많고 앞으로도 당분간 더 집중해야 될 일이 많다"고 말했었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유 장관이 장관직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만큼 이날 오후 모종의 '돌출 상황'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하고 있다.

'열린당 2차 탈당' 움직임에 유시민 조기 투입?

과정이 어떠했듯, 유 장관의 사의 표명은 정가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 장관은 그동안 다른 열린우리당 당적 보유 각료들이 당적을 포기할 때도 "내발로 당을 나갈 생각은 없다"며 당적에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열린우리당 간판을 포기할 수 없다는 얘기. 따라서 그의 각료직 사의 표명은 열린우리당으로의 컴백 및 본격적 정치 행보 재개를 의미한다.

정가에서는 시기는 미정이나 노 대통령이 유 장관 사의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미FTA로 일단 밑바닥 지지율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 만큼 유 장관이 내각보다는 정계로 컴백하는 게 여러 모로 노 대통령의 임기말 구상을 실현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열린우리당에서 '제2차 집단탈당'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한 만큼 유 장관이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컴백, 당을 사수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정동영 전 의장은 이미 이달 중순께 '비장한 결단'을 예고한 상태며, 김근태 전의장 또한 '반(反)한미FTA 전선'에 합류한 상태다. 이들은 탈당후 기존 정파들과 연합, 열린우리당을 현재의 '제2당'에서 '제3당'으로 주저앉혀야 연말대선에서 정상을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을 '정세균 체제'로 저지하기란 역부족이란 판단을 노 대통령 및 친노진영이 함직하다. 동교동계가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DJ 차남 김홍업씨를 재보선에서 당선시켜, 'DJ 분신 김홍업'을 앞세워 정계개편의 헤게모니를 쥐려는 것처럼, 노 대통령은 '노(盧)의 남자'로 불리는 유장관을 앞세워 정계개편의 헤게모니를 틀어쥐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연말대선의 변수, 유시민

정가의 최대 관심은 향후 대선정국에서 유 장관의 역할이다.

일각에선 유 장관을 노 대통령의 '히든 카드'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명박 캠프의 고위관계자는 "범여권 후보들 가운데 전국적으로 가장 큰 조직을 갖고 있는 인물은 유시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유장관은 독자적인 지지세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분석된다. 세칭 '유빠'가 그것이다. 여기에 최근 30%대로 높아진 노대통령 지지율이 합쳐진다면 한번 해볼만하다는 계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유장관은 영남 출신으로 노대통령이 주장하는 '영남후보론'의 적임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분석에 대해 대다수 정치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유빠'라는 지지층 자체가 가변적인 존재인 데다가, '네거티브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당내 반발세력도 엄청나다. 따라서 유장관이 열린우리당이 주도하는 친노 정계개편의 중심축으로 나선다면 연말대선은 해보나마나라는 분석을 한다. '킹 메이커' 역할을 할 진 몰라도 '킹'감은 못된다는 것.

따라서 이들은 유 장관 컴백시 '킹 메이커' 역할 가능성에 보다 무게를 싣는다. 현재 노 대통령이 가장 애착을 갖는 후임은 이해찬 전총리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총리를 '한반도 해빙의 메신저'라는 정치스타로 키우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전해진다. 이 전총리는 '충청 출신'. 충청-호남을 연결하는 '서부연합'의 적임자이기도 하다. '이해찬 후보'에 대한 동교동계 의중을 타진한 경우 이들의 반응도 부정적이진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 장관과 이 전총리는 막역한 사이. 대학 선배인 이 전총리는 유시민이 독일유학후 귀국해 일자리를 잡지 못했을 때 학술문화진흥재단에 취직을 시켜주는 등 오랜 기간 돕고 도움을 받아왔다. 때문에 정가에서는 유장관이 컴백하면 갈길을 못잡고 헤매는 열린우리당 헤게모니를 장악한 뒤 이해찬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설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과연 유 장관 컴백시 정가에 어떤 변화가 일지, 벌써부터 그는 '뉴스메이커'로 급부상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