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첫 주택정책을 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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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첫 주택정책을 대하며
2025년 6월 27일. 모두가 오래 기억에 담아둘 날이 될 전망이다. 새로운 집값 규제책이 긍정적 파열음을 내며 우리 곁에 다가온 반가운 날이다. 집값 잡으려 늘 앞세웠던 세제, 공급 정책을 살짝 비켜 은행의 팔을 비트는 영리함을 택했다. 수도권, 규제지역 내 주택 담보 대출을 6억으로 제한했다. 대출을 받은 이는 6개월 이내에 반드시 전입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여러 채의 집을 가진 자는 일체 대출 혜택을 못 받게도 해 두었다. 가계부채가 늘어날 것을 염려한 정책 색깔이 완연하지만 급등하던 수도권 집값 안정에 즉각적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늘 그렇듯 이재명 정부의 이번 주택 정책에도 언론, 야당의 비판이 따라붙었다. 낯익은 단어로 조합된 상투성의 비판이 이어졌다. 늦게 집 구하려는 자에게 기회를 뺐는다며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상투적 비판이 맨 앞줄을 차지했다. 현금 부자에게만 좋은 일 시키는 서민 소외라는 전형적 문구도 얼굴을 내밀었다. 신혼부부, 청년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사회적 약자 클리세도 어김없이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 충분히 예상되었던 낯익은 반복형 어깃장이었다.
비판과 어깃장이 예전과 같은 얼굴과 강도로 쏟아져 나왔지만 그 위력은 예전 같지 않다. 클리세로 포장된 프레임이 여론에 불을 붙여 정책을 송두리째 흔들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정책을 가늠하고 비판하는 미디어 공간 여기저기를 다 챙겨 저울질해 보아도 긍정 평가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비판을 하는 쪽에서 클리세를 전면에 세울 때조차도 수줍게 활용하는 소극성을 보일 정도다. 비판의 강도가 예전 같지 않으니 동원된 비판 클리세의 상투성만 더 두드러진다.
비판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를 추정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첫째, 비현실성의 이유다. 2025년 6월 이전까지의 수도권 주택 가격은 누가 생각하더라도 터무니없었다. 거래에 참여한 이들조차 헛웃음을 지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강력하고 유효한 규제 정책의 등장은 환영받았고 비판의 힘은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실수요자와 투기꾼을 핀셋으로 집듯이 구분해 냈음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과거 규제책이 추상에 머물렀던 것에 벗어나 구체성을 띠었다는 점이 유효했던 셈이다. 세 번째, 주식시장의 반등으로 유동성을 포괄할 공간이 생겼다는 점을 또 다른 이유로 들 수 있다.
모처럼의 집값 규제책이 비판의 힘을 이겨내는 시간을 맞고 있다. 이 시간이 연장되어 집값 안정으로 집 장만 걱정에 덜 찌든 이웃들로 넘치길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전히 비판을 이겨내고, 수긍하는 여론을 더 많이 끌어내는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더 촘촘한 대출 정책, 세제 및 공급 정책을 고안하고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은 성공을 규정해 두는 철학적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6월 27일 발표를 사상적으로 규정하고 그를 앞으로 이뤄질 규제책의 나침반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선 집값의 문제가 재산권의 문제가 아닌 주거권의 문제임을 명확히 해두자. 집값 문제는 화폐가 아닌 사람의 문제임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둘째, 앞으로의 집값 규제책은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닌 선반 낮추기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지금보다는 더 싼 집값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는 점을 설파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집은 더 이상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니 살지 않을 집을 더 가지는 것이 반사회적임을 강조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모처럼 효력을 지난 강력한 주택 정책의 등장을 대통령, 정부, 공무원의 치적으로만 돌려선 안된다. 주택 문제와 연결된 온갖 사회 모순을 감안해 보면 주택 정책의 성패는 한국 사회의 성패와 직결되어 있다. 결혼을 미루는 문제, 과도한 가계 부채, 주택으로부터 소외되어 생기는 좌절감, 희망 없는 청년들의 삶 등등. 주택 가격 문제는 한국 사회의 모순의 중요 결절점이다. 그 매듭을 잘 푸느냐 아니냐 정권과 사회, 미래의 성패가 갈린다. 그러니 2025년 6월 27일의 발표와 효력을 우리 모두의 작은 성공으로 기억해 두고 그를 더욱 갈고 다듬는 편이 옳은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