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국회 외면속 ‘저출산ㆍ고령화 연석회의’ 흔들

한국 사회의 최대위기 '저출산-고령화' 논의 실종

2006년 올 한 해도 ‘한-미 FTA’, ‘노사 갈등’, ‘여야 대치’ 등 정치ㆍ사회 전반에 걸쳐 극심한 파열음이 새어나왔다. 진단은 다양하나 해법은 역시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는 양 진영 간의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로 귀결된다. 그러나 입법기관인 국회가 겉으로는 대화와 상생을 강조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대화 창구’ 마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사례가 내년 1월로 출범 1주년을 맞는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 문제다.

출범 1년 맞는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

지난 1월 정부는 대통령 훈령으로 국무총리실 산하에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를 설치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반면 젊은 세대의 출산율은 전세계 최저로 급락, 이런 상황을 타파하지 않았다간 십수년후 한국사회의 근간이 밑둥째 붕괴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특히 저출산의 근원을 찾아 근원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절실했다. 전문가들은 나날이 폭등하는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 증가가 저출산의 근원으로, 저출산 문제 해소는 우리사회가 당면한 최대 위기인 주거 및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했었다.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는 연석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사회적 합의’ 창출을 위한 연석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이 전 총리와 함께 연석회의 공동의장으로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강신호 전경련 회장 등이 선임됐다.

공동의장들의 면면에서도 알 수 있듯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는 정부 출범 이래 가장 큰 사회적 합의기구의 위상을 띠고 있다. 연석회의에는 우선 ▲정부에서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재경부, 교육부, 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9개 부처가 참여하고 있고 ▲경영계에서도 전경련, 경총, 대한상의 등 주요 경제단체가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도 ▲시민사회단체 그룹에서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이 ▲노동계에서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종교계에서 조계종, 한기총, 천주교주교회 등이 ▲노인ㆍ여성계에서도 대한노인회를 비롯한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재단 등이 연석회의 주요 단체로 등록돼 있다. 한마디로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는 1997년 ‘IMF 환란’ 이후 출범한 ‘노사정위원회’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합의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는 국무총리가 당연직으로 공동의장을 맡으며, 9개부처의 장관들과 참여단체 대표들이 '37인 연석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동시에 각 단체의 실무자들이 '24인으로 구성되는 실무협의회 위원'으로 연석회의를 꾸려가고 있다. 연석회의는 두 달에 한번 씩 37인의 연석회의 위원 모두가 참석하는 본회의를 연다. 매 주 화요일에는 24인 실무협의회가 열려 본회의에 상정될 안건들을 논의한다.

지난 6월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는 출범 6개월만에 사회 협약체결에 성공,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합의기구로서의 자리매김을 시사했다. ⓒ연석회의


노사정위 뛰어넘는 사회통합 대기구, 지난 6월 ‘사회 협약’ 성과

물론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는 그 이름처럼 우리 사회의 당면과제 중의 하나인 ‘저출산ㆍ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기구 역할을 맡고있다. 그러나 애초 정부는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가 아닌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를 논의할 ‘국민통합 연석회의’ 출범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노사정 위원회의 실패 등 민감한 의제에 대한 합의체 기구 구성의 난맥상을 절감, 정부는 우선 사회 각층의 이해당사자들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해서 찾은 의제가 바로 ‘저출산ㆍ고령화대책’이다.

실제로 지난 1월 출범한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는 4번의 본회의를 거쳐 불과 5개월만인 지난 6월, ‘저출산 고령화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이라는 성과물을 내놓았다. 사회협약에는 ▲출산과 양육에 어려움 없는 사회 실현 ▲능력개발과 고용확대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생활 기반구축 ▲모든 사회주체의 실질적 역할 분담 등 저출산ㆍ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4가지 큰 뼈대가 설정됐다. 아울러 정부ㆍ경영계ㆍ노동계ㆍ시민단체 등 연석회의 참여 주체들이 각자 세부 실천방안을 설정해 자율적으로 이행해나가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물론 이같은 사회협약을 놓고 “알맹이는 없고 구호만 요란했다”는 일각의 지적도 뒤따랐다. 그러나 ‘연석회의 지원단’ 안동일 홍보팀장은 “사회협약이라는 게 사실 힘들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단체가 총망라 돼 있는 연석회의에서 지금 당장 무슨 실효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대신 안 팀장은 “우선 다함께 모여 타협의 장을 정례화 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두어야하고, 무엇보다 저출산ㆍ고령화 대책의 거시적 뼈대에 사회 전 분야가 합의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국회, 멀쩡한 사회합의기구 놔두고 자신들만의 논의에 빠져

그러나 정작 사회적 합의와 상생을 강조하는 국회는 이같은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무시를 넘어 대폭적인 예산 삭감을 통해 원만한 대화의 장 자체를 깨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가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를 무시하고 있는 단적인 예가 바로 ‘국민연금 개혁’ 문제다.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는 지난 9월 한명숙 총리 주재로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제5차 본회의를 열어 연석회의가 추진할 하반기 핵심 의제로 ‘연금 개혁’ 문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연석회의는 매주 화요일 마다 실무협의회를 열어 각 단체가 주장하는 국민연금 개혁 방향의 이견 조율작업에 들어갔다. 연석회의는 실무협의회를 거친 국민연금 개혁 조율안을 본회의에 올려 국회와 대통령에게 올 연말까지 보고한다는 시간표도 작성했다. 특히 각 정당들은 실무협의회에 이례적으로 옵저버 형식의 자문위원까지 파견해 논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는 이같은 연석회의의 시간표를 철저히 무시, 자신들만의 개정안을 토대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석회의의 한 관계자는 “우리 내부의 이견 조율이 엄청나게 힘들지만 그래도 정부를 포함한 사회 각 단체들은 모두 조율안에 머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도 국회가 저렇게 먼저 나서 자신들 입맛대로 결정하겠다고 하니 우리도 지금 논의를 중단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민의를 반영한다는 국회가 민의 수렴기구인 연석회의 결과도 안 보겠다고 저러니 정작 저들만의 국회”라고 국회의 일방통행을 질타했다.

매주 화요일 마다 열리는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 내 실무협의회. ⓒ김동현 기자


연석회의 예산 21억원에서 4억 5천만원으로 대폭 삭감, 사실상 ‘해체’ 선고

국회는 더 나아가 올해 21억원이던 연석회의의 예산을 내년에는 4억5천만원으로 대폭 삭감해 연석회의 존립 자체를 밑둥부터 흔들고 있다. 최근 국회 정무위 예산소위는 이같은 예산안을 통과시켜 국회 예결위로 넘겼다.

한 국회관계자는 “처부는 물론이고 정부 내 모든 기구의 예산을 일률적으로 깍는 분위기”라며 “연석회의 역시 애초 6억원으로 삭감하려다 4억 5천만원으로 깎는 가이드라인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특히 이 관계자는 “각 예산항목의 타당성 논의는 차치하고 상하선을 두어 일률적으로 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석회의 지원단 운영총괄을 맡고있는 김경일 팀장은 “당장 내년도 홍보를 어떻게 해야할 지 걱정”이라고 이같은 국회 내 예산 삭감 방침을 우려했다. 김 팀장은 “연석회의 자체를 국민들에게 잘 인식시켜,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대화창구로 격상시키려 했는데 연석회의 존재 자체 사업방향이나 존재 자체를 제대로 홍보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아쉬워했다.

이같은 연석회의의 예산 부족은 사업 방향에도 치명타로 작용하고 있다. 연석회의는 이 달 들어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에 부합하지 않는 법령ㆍ제도 등에 대한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실질적인 불편함과 아이디어를 직접 듣겠다는 취지에서다. 11월말 현재 한달 가량 신고센터에 접수된 의견만 22건에 이르지만 홍보가 제대로 안돼 더 이상의 진척이 어려운 상태다.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한 시민단체 인사는 “국회는 법과 제도를 논의하는 반면 여기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시대적 흐름과 철학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와같은 합의를 통한 사회적 공감대가 향후 마련될 법과 제도의 연착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런데도 국회는 무조건 법과 제도를 만들면 국민들이 순응하리라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아직도 못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는 11월부터 시작한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에 부합하지 않는 법령ㆍ제도 등에 대한 신고센터’를 계속해서 상시 운영할 방침이다. 신고센터는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 홈페이지(www.withall.or.kr)를 통해 접수받고 있으며 법령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에 통보해 개선조치 될 예정이다. 문의사항은 02) 2100-8842~7.
김동현 기자

댓글이 0 개 있습니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