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대란의 본격적인 지방 확산의 상징으로 회자되고 있는 경남 마산 양덕동 ‘메트로시티’. 옛 한일합섬 부지에 들어설 (주)태영-(주)한림건설 컨소시엄의 ‘메트로시티’ 1순위 청약이 지난 21일 7.1:1의 경쟁률로 마감했다. 2천1백27가구에 모두 1만5천1백13명의 청약자가 몰려든 셈이다. 태영-한림 컨소시엄은 전 평형이 모두 마감됐다며 일찌감치 ‘2순위 청약’은 없음을 못박았다.
청약 신청을 위해 마산 시민을 비롯해 분양가 전매를 노리는 외부 작전세력까지 몰려들어 마산시는 시 출범 이래 최고의 ‘부동산 흥행’의 대기록을 남겼다. 청약을 위해 초겨울 한파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노숙을 하는가 하면 청약 접수 당일 아침부터 늘어선 줄은 무려 6km에 달했다. 2009년 11월 입주예정인 ‘메트로시티’는 내년 10월부터 본격적인 아파트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메트로시티 부지 ‘40년간’ 중금속 오염, 지역단체 “중금속 아파트에 살 건가?”
이같은 '마산 광풍'에 맞서 외로이 ‘메트로시티’ 건설 반대를 외친 한 지역시민단체가 있다.
‘마산YMCA’,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 등 마산ㆍ창원 일대 4개 지역시민사회가 결성해 만든 ‘도시연대’는 "아파트가 들어설 옛 한일합섬 부지 8만7천여평은 지난 40년간 한일합섬이 공장 부지로 사용해 기름은 물론 각종 화학물질에 오염된 중금속 지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곳 부지를 건설 할 (주)태영이 지난 6월 (재)대한토양환경연구소에 의뢰한 ‘토양환경평가’에서도 이 지역의 오염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대한토양환경연구소가 지난 9월 발표한 한일합섬 부지 토양환경평가 결과에 따르면, 전체 부지 8만7천평 중 1천4백평에 걸쳐 토양의 기름 오염이 발견됐다. 토양 내 기름 오염정도를 나타내는 TPH(석유계총탄화수소) 수치는 최고 4만9천8백78ppm으로 기준치(5백ppm)를 무려 1백배 가까이 초과했다.
(주)태영과 (주)한림건설이 컨소시엄으로 마산시 양덕동 옛 한일합섬 부지 9만여평에 지을 '메트로시티' 조감도. ⓒ태영
그러나 도시연대는 이같은 토양오염 조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도시연대는 토양환경평가 결과가 발표된 직후인 지난 9월 11일 성명을 통해 “법정 토양오염 물질 외의 유해물질에 대한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도시연대는 “한일합섬 터의 경우 40년 동안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던 곳으로서, 원료로 유해화학물질(염료)을 취급하던 공장으로 이들 화학물질은 법정 토양오염 물질이 아닌 관계로 이번 토양환경평가 조사에서는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도시연대는 “하지만 토양환경평가제도 시행지침(제2조 1항)에서는 대상지역이 특성에 따라 평가물질을 자율적으로 추가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물질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토양 내 유해 화학물질 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아울러 도시연대는 정확한 오염인자 파악을 위해 부지 안으로 유입되는 지하수와 부지밖으로 빠져나가는 지하수 흐름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도시연대는 토양정밀조사를 위한 시의회, 지역주민, 시민단체 등의 공동 참여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건설사인 (주)태영이 일방적으로 의뢰한 민간연구소의 토양환경평가는 신뢰성에서 애초부터 그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마산 시는 이같은 시민단체의 의견을 일축했다.
시는 이 곳의 토양오염 상태가 알려진 직후인 9월 25일, 토양오염 정화조치와 함께 토양 정밀조사를 건설사인 (주)태영-(주)한림건설 컨소시엄에 명령했다. 그러나 시는 문제의 ‘토양 정밀조사’에 있어서 민관합동조사기구와 같은 객관적인 제3자가 아닌 건설사에 그대로 일임해 버렸다.
시는 이같은 조치만 취하고 곧바로 최종 승인권자인 경남도에 ‘한일합섬 부지의 토양오염문제와 건축승인을 별개로 처리해 달라는 내용과 토양 오염정화 처리는 우리시(마산시)에 맡겨달라’는 협조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경남도는 지난 9월 29일 아파트 건설 사업계획 승인을 최종 통과시켰다.
9월 초 불거진 한일합섬 부지에 대한 오염 문제가 불과 20일만에 시의 후속대책으로 이어지더니 다시 이를받은 경남도가 최종 건설승인을 함으로써, 모든 문제는 채 한달도 안돼 일단락된 셈이다. 토양 오염 문제가 불거진 지역의 건설 사업 계획에 있어 이렇게 빠른 속도로 행정절차가 진행되는 것은 행정상으로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선 분양, 후 정화?”
더 큰 문제는 시가 건설사에 명령한 ‘정화조치기간과 이를 위한 토양정밀조사기간'이 아파트 착공식과 거의 맞물리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한일합섬 부지에 대해 1년 동안(2006년 9월 26일∼2007년 9월 25일)의 정화기간을 설정함과 동시에 토양정밀조사 역시 앞으로 6개월 동안(2005년 9월 26일∼2007년 3월 25일) 진행하도록 건설사에 명령했다. 그러나 시가 정화기간으로 설정한 내년 9월 이후 불과 일주일도 안돼 건설업체의 착공이 시작된다.
현재 (주)태영-(주)한림건설 컨소시엄은 정확한 착공일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애초 계획으로 알려진 착공식일정은 내년 10월께다. 이같은 착공일정을 고려해 시가 토양정화 기간을 빡빡하게 잡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결국 시의 계획표에 따르면 환경정화 및 조사를 동시에 병행하고 일사천리로 공사를 강행한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차윤재 마산 YMCA 사무총장은 27일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이미 분양까지 끝낼 수 있게 사업승인, 분양승인 다 내 주고서 무슨 조사를 하고 무슨 정화를 하겠냐”며 “현재 화학물질 조사도 받아들이지 않는 시가 정화과정에서도 분양열풍에 희석돼 제대로 처리할 리 만무하다”고 마산시와 최종승인권자인 경남도를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면서 차 사무총장은 “마산시와 업체간 특혜가 걸려있지 않다면 어떻게 오염됐다고 이미 조사된 이 지역에 대한 아파트 공사를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하겠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마산 YMCA와 함께 ‘도시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시민단체인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0월 9일, 한일합섬 부지 사업승인 과정에서 마산시와 경남도가 특혜행정을 보였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특히 시민단체는 마산시가 한일합섬 부지의 토양오염 문제와 사업승인을 별개로 처리한 것과, 경남도가 정밀조사와 정화를 확인하기도 전에 사업승인을 해 준 사실은 명백한 '특혜 행정'임을 지적했다.
'메트로시티'가 들어설 옛 한일합섬 부지는 지난 40여년간 석유화학 물질의 반출입이 됐던 곳으로 시민단체들은 이 지역의 오염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태영
의혹 쏠리는 마산시, 급작스런 용도변경에 토양오염 실태조사 한번 안해
이처럼 마산시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한일합섬 부지 아파트 건축 건과 관련해 각종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다.
한일합섬 부지는 지난 1998년 마산시의 도시 재정비 계획에 따라 공업지역에서 일반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이 처음으로 이뤄졌다. 이후 이 땅은 2004년 9월에 (주)태영과 (주)한림건설로 주인이 바뀌었다. 문제는 이들 건설사들이 이 땅을 매입하기 1년 전인 2003년 8월, 이 땅의 용도가 일반주거지역에서 3종 주거지역으로 다시 변경됐다는 것.
3종 주거지역으로 변경되면 건축물 높이의 층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 지역을 개발하는 건설사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 건축업계의 일반적 상식이다. 더 나아가 마산시는 2006년 11월까지 개발행위 제한구역으로 지정한 한일합섬 부지를 지난 해 12월 개발행위 해제조치를 단행했다. 마산시가 이 곳의 개발행위를 해제하기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해 10월, (주)태영-(주)한림건설 컨소시엄은 정식으로 이 곳에 건축허가 신청을 낸 바 있다.
시민단체의 이같은 특혜 의혹은 지난 1997년 김인규 전 마산시장이 재임중 용도변경건과 관련해 뇌물혐의로 전격 구속된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김 전 시장은 바로 이 곳 한일합섬 부지의 용도변경 문제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또 한일합섬 부지에 대한 시의 토양오염 실태조사 문제 역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마산시는 지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토양오염실태조사를 벌였다. 이렇게 5년간 시가 토양오염실태조사를 벌인 곳만 71곳에 이르지만 이상하게도 옛 한일합섬 부지에 대한 토양오염 조사만은 이제껏 단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무려 40여년간 석유화학 물질을 배출한 이 곳에 대한 오염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에 전문가들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결정적으로 한일합섬 부지 오염문제와 유사하게 (주)부영이 옛 한국철강 부지에 건설할 아파트는 오염문제가 뒤늦게 발각돼 ‘민ㆍ관합동조사기구’가 정식으로 발족되는 등 공사 전반에 제동이 걸렸다.
(주)부영 역시, (주)태영-(주)한림건설 컨소시엄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 해 11월 옛 한국철강 부지에 아파트 건축허가 신청을 낸 바 있다. 오히려 (주)부영은 경남도로부터 (주)태영 컨소시엄보다 빠른 올해 7월 최종사업계획승인을 받았으나 오염문제가 불거지면서 분양계획은 물론 착공일 역시 무한 연기됐다.
‘메트로시티’ 입주 자격과 관련해서도 시는 마산시에 주민등록만 돼 있으면 누구든지 응모할 수 있도록 해 위장전입자와 투기세력이 활개치는 장을 스스로 마련해줬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인근 창원시를 비롯한 진주ㆍ진해 등의 아파트 청약을 위해서는 적어도 관할 시에서 최소 3개월~최대 1년은 거주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산시, “터무니없는 의혹 부풀리기” VS 도시연대, “마산시가 미친게 아니라 시청이 미친 것”
이같은 세간의 의혹에 대해 마산시는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마산시청 관계자는 27일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한국철강 부지 문제가 제동이 걸린 것은 땅 전체에 오염이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라며 “반면 한일합섬 부지는 부분적으로 오염된 것으로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정화조치와 아파트 시공이 병행되지 않고 (정화조치까지) 기다리면 오히려 분양가만 높아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토지정화 문제를 담당하는 시 환경보존과 관계자는 “정화가 반드시 되고 난 후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도록 하겠다”면서도 ‘선 분양 후 정화 조치를 하는 것이 타당한 절차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그건 시가 분양 승인을 내 준 것으로 우리 담당 소관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건설사인 (주)태영 역시 “이미 마산시에서 사업승인을 다 해 준 문제로 우리가 따로 답변할 성질은 아니다”라며 “모든 것은 마산시로 문의하라”고 공식적인 답변을 피했다.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 이미정 국장은 “지금 마산시는 행정으로서, 태영과 한림은 기업으로서 해서는 말아야 하는 행위를 강행하고 있다”며 사업승인을 내 준 시와 이를 통해 분양에 나선 건설사들을 질타했다.
이 국장은 메트로시티 광풍과 관련 “정말 미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며 “이를 방조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마산시에 대해서는 ‘평가 자체’도 하기 싫다.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건설사들과 장사를 하고 있는지 분간도 어렵다”고 거듭 마산시를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