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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족은 죄 없다. 투기족이 문제다"

[盧정권의 부동산 망국사] <12> 盧의 '국민책임론'

노 대통령의 어지러운 ‘말의 향연’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노무현 대통령도 다급해졌다. 대통령 특유의 어지러운 ‘말의 향연’이 시작됐다.

노 대통령은 6월28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부동산값 폭등과 관련,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다 올라도 한국은 올라서는 안된다"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부동산 정책을 통해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며 취임 초부터 누누이 했던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다시 한번 선언했다.

7월6일 ‘국민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선 당시 야당이 경질을 주장하던 윤광웅 국방장관을 옹호하는 과정에 여소야대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정치가 잘 되어야 경제도 잘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당장의 부동산 정책만 보아도 당정협의에서 깎이고 다시 국회 논의과정에서 많이 무디어져 버렸고, 그것이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서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정치가 경제정책에 바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제대로 부동산 정책 방향을 잡았으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때문에 투기를 잡지 못했다는 ‘네 탓 타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어 2005년 7월7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만난 자리에서는 “부동산 정책은 지난 수십년 동안, 몰라서 부동산 값을 못 잡은 것이 아니고 땅 부자들의 여론 조성에 밀린 거다, 계속해서. 그래서 1가구1주택 가진 사람들을 끊임없이 교란시키고 여론을 교란하고 승복시켜 가지고 1가구1주택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저항을 만들어 내서, 조세 저항이다 무슨 저항이다 해 가지고 만들어 내서 결국, 결국에는 계속해서 좌절시켜 온 거 아니냐. 그래서 정책이 없는 것이 아니고 저항에 정부가 못 이긴 거다”라고 주장했다. 이 또한 땅 부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에게 놀아나는 우매한 국민에게 부동산정책 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네 탓’ 타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부동산 거품이 들어갔다 꺼지면 IMF 사태를 다시 맞을 수 있고 10년 불황 파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거품 들어가는 것은 안정을 위해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해, 부동산 거품 파열에 대한 공포감을 무의식중에 드러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거품이 파국적 형태로 진행시킨 양극화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은 없다"며 "더 나빠지지 않게 지키는 것만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무력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노무현대통령은 부동산정책 실패를 여러 차례 국민탓으로 돌려 국민들을 격노케 했다. ⓒ연합뉴스


노 대통령은 이어 며칠 뒤인 7월14일 대학장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 때는 “제가 대통령이 된 이래 어느 분야를 보아도 옛날보다 후퇴했거나 위험을 가중시킨 곳은 없다”면서 “경제, 금융시스템, 신용불량자, 북핵, 한미동맹 등 감히 자신하지만 한 군데도 상황을 악화시킨 곳은 없다고 감히 자신한다.”고 호언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5년, 10년 문제없이 간다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있게 장담할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다만 2004년부터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걱정 하나가 바로 사회가 양극화 돼가고 있다는 점”이라며 “스스로 자기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이를 해소할 만한 확실한 정책수단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고 빈곤, 소외 극복 등 재분배 영역에 있어서도 정책수준이 현저히 뒤떨어져 있다”고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생산과 분배 과정, 산업간 분배 과정에 있어서의 단절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정부를 포함한 어느 두뇌집단도 ‘이것이다’라고 할 만한 정책 제안을 해 온 곳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양극화 책임의 일단을 제대로 된 정책 제안을 하지 않은 한국 지식집단에게 돌리는 ‘네 탓’ 타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다음날인 7월15일에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80년대 금융실명제 도입추진 등 안정을 추구했던 정책기조가 90년대 들어 2백만호 주택건설 등 경기부양으로 바뀐 것은 당시 사회분위기에 정책결정자들이 굴복한 사례이며, 2001년 벤처, 카드, 부동산 거품을 가져온 경기부양책이 나온 것도 당시 사회분위기의 큰 영향이 있었다"며 "참여정부는 결코 경제에 거품을 만들지 않겠으며 차기 정부에 숙제를 넘기는 일이 없도록 건강한 정책으로 (경제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는 작금의 부동산 폭등에 따른 양극화 심화 책임을 전 정권인 김대중 정부 탓만으로 돌리는 발언이었다.

7월29일 기자 간담회에서는 당시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해 정치적 파란이 일고 있는 데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 “국민들이 저를 왜 대통령으로 뽑았겠나. 외교를 잘하라고 뽑아준 것도 아니고, 경제를 제일 잘할 것이라고 저를 뽑은 것도 아니다”라며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보다 더 본질적인 개혁을 원칙대로 밀고 나갈 것이라는 그런 기대로 저를 지지하지 않았겠나”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부지불식중에 경제-외교보다는 정치를 우선시하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노 대통령은 8월18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과 만난 자리에서도 경제실정을 비판하는 작금의 경제기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다섯 시간이든 여섯 시간이든 계속해서 한국의, 한국 경제의 전략지도에 관해 다 얘기할 수 있다. 자신 있다"며 "내가 몰라서 놓치고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단언하는데 참여정부 시절에 성장동력이 저하돼 다음 정권이 고생할 일은 정말 없을 것"이라며 "이 다음 정권 때는 경제부장들은 별로 쓸 게 없도록 제가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두 달에 걸친 적극적 해명공세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네 탓 타령’으로 일관하는 데 대한 국민 반응은 얼음장 그 자체였다. 노 대통령 임기가 후반기 돌입하는 반환점(2005.8.25)에 즈음해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노 대통령에게 참담한 것이었다.

<동아일보>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8월18일 실시)에 따르면, ‘노 대통령이 가장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분야’ 2개를 묻는 질문에 ‘부동산 정책’(28.8%)이 단연 1위를 차지했고 이어 ‘물가 불안정’(26.4%), ‘빈부격차 확대’(24.7%), ‘실업문제’(23.6%) 순이었다. 요컨대 ‘부동산값 폭등에 따른 빈부격차 확대’가 참여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지적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중앙리서치에 의뢰해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8월15~16일)도 92.0%의 국민이 ‘노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잘한다’는 7.5%에 불과했다. 100점 만점에 채 10점도 못 받은 것이다. 사실상의 F학점, 낙제점이었다. 최악의 경제성적표였다.

노 대통령의 ‘국민 책임-대통령 무책임론’ 파문

흔히 야당에서는 노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오기 정치’ 또는 ‘벼랑끝 정치’라 부른다. 그런 야당의 평가가 정치적 공세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이 노 대통령이 ‘임기 후반 전환점’에 진입한 2005년 8월25일 발발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민과의 대화’를 자청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은 KBS TV의 ‘참여정부 2년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 다름아닌 국민을 향해 ‘울분’을 토로하는 것을 시작으로 특유의 ‘벼랑끝 정치’를 재가동했다.

노 대통령은 “저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는 엊그제 발표로 29%”라며 “책임정치를 하는 나라에서 29% 지지도를 갖고 과연 책임정치의 뜻에 맞는가, 이 수준의 국민적 지지도를 갖고 국정을 계속해서 운영하는 것이 과연 책임정치의 뜻에 맞는가, 이 수준의 국민적 지지도를 갖고 국정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예기치 못한 폭탄발언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질문 던질 거 뭐 있냐? 당신이 결단하라’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제도가 내각제가 아니어서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서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국민적지지, 여론조사 결과를 갖고 대통령직을 불쑥 내놓은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며 “나는 ‘29%짜리 대통령과 함께 우리의 미래를 걱정해야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해 국민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 발언은 정치학계에서 흔히 ‘통치 불능 지지율’로 표현하는 ‘20%대 지지율’로 급락한 데 대해 대통령이 느끼고 있던 위기감이 얼마나 극심한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여러 차례 비공식적 라인을 통해 자신을 ‘식물대통령’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옆나라 일본에서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가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 밑바닥을 기던 지지율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데 대한 부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 발언은 그러나 보다 엄격히 말하면 국민에 대한 ‘도전장’이었다. 자신의 지지율이 왜 폭락했는지에 대해 ‘자성’하기보다는 ‘당신들이 그만두라면 그만둘 수도 있다’는 식으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에 대한 ‘울분’을 토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국민들이 참여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꼽고 있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비난여론에 대한 강한 반발과 ‘국민 탓’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출범 이래 잇따른 금리인하와 지역개발이 전국의 부동산값 폭등을 초래했다는 지적에 대해 “금리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현상은 금리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지역개발이 일부 투기꾼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개발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안할 수 없다”라며 정부 책임을 강력 부인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부동산 주택 가격 파동은 얼마간의 투기꾼들에 의해 조성된 것은 아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국민이 내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본격적으로 ‘국민 책임론’을 폈다. 노 대통령은 “역대 정부가 계속 실패했다”는 말로 부동산 실정이 참여정부만의 현상이 아닌 역대 정권의 공통된 실정임을 강조한 뒤, 역대 정권의 실정 이유를 “정책을 하면 총론에서는 찬성하다가 각론 만들 때 `서민부담 가중', `세금 폭탄', `시장원리 위배', `헌법 위배' 등 각종 반대를 들고 나와 주저앉혀버린다. 총론할 때는 전부 박수소리가 나오는데 정책을 입안하면 그야말로 폭탄을 맞는다. 지난 18일부터 언론 보도들을 한번 봐라. 관계없는 서민들도 `정부정책 때문에 세금 올라간다'고 느끼도록 돼 있다”고 주장, ‘건설족 언론’에 의해 끌려다니는 국민 탓을 했다.

노 대통령은 재차 “부동산 정책이 역대 정부에서 실패한 이유는 저항 때문”이라고 주장한 뒤, “10.29 대책도 호랑이를 그리려고 했는데 표범보다 조금 작은 호랑이밖에 못 그렸다. 경제부처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이거는 조세저항이 있고, 이거는 이래서 저항이 있고'식으로 하나씩하나씩 빠지더니 당정협의에서 빠지고, 국회에 가서 왕창 깎인다. 그래서 지난번 것(10.29 대책)도 그리 됐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통령 자신은 제대로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 했으나 자신만 빼고는 경제부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언론 등이 차 떼고 포 떼는 식으로 저항을 해 제대로 된 부동산정책을 펼 수 없었다는 ‘대통령 무책임론’에 다름 아니었다. 노 대통령 편 ‘대통령 무책임론’은 누워 침 뱉기였다. 대통령은 정부 전체를 대표하는 최고통수권자인 동시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회 과반수이상 의석을 갖고 있던 열린우리당의 사실상 오너다. 이런 막강한 자리의 대통령이 수하인 경제각료들과 집권여당의 저항 때문에 시원찮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적 자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주장은 동시에 사실관계와도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었다. 2004년 6월9일의 노 대통령 발언이 그런 대표적 예다. 4월 총선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분양원가 공개’를 열린우리당이 백지화하면서 비난여론이 일자, 노 대통령이 이때 내세운 주장이 그 유명한 ‘시장방임론’이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은 경제계나 건설업계의 압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다.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고, 결국 벌고 못 벌고 하는 것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내 생각을 모르고, 또 내가 정책에 참여하지 않으니까 원가공개를 공약했는데 다시 상의하자. 이는 결론이 어디로 나더라도 개혁의 후퇴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다.”

노 대통령은 물론 1년여 뒤인 2005년 6월24일 부동산값이 재폭등하며 비난여론이 들끓자, “(지난해 그렇게 말했지만) 지나고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더라”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못할 것도 없다”고 말을 바꾸긴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6.9 발언’은 결정적으로 주택가격 안정을 갈망하던 다수 국민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발언이었고, 그후 부동산값 폭등의 결정적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런 노 대통령이 ‘대통령 무책임론’을 펴니, 과연 노 대통령이 ‘대통령 책임제’라는 헌정질서 아래 대통령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큰 책임을 지고 있는가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가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직할권 아래 있는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비난하는 동시에, 건설족 언론에 끌려 다니는 국민을 비난했으나, 한 여론조사는 대통령의 국민 비난이 얼마나 국민 모독적 발언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노 대통령 발언이 있었던 8월25일 <내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를 통해 서울시민 6백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고 1가구 2주택자에 대해 양도세를 중과하는 정책에 대해 서울시민의 62.3%가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찬성비율은 서울 강북 62.2%, 강남 64.7%로 도리어 강남에서 찬성여론이 더 높았다.

“작금의 부동산값 폭등이 한국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위기감의 결과였다. 실제로 많은 강남 사람들도 끝없는 아파트값 폭등에 대해 “부동산이 미쳤다”고 파국적 종말을 우려해왔다. 노 대통령이 매도하듯, 국민이 '세금 폭탄' 운운하며 저항을 조직하려는 건설족 언론에 끌려다니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였다.

노 대통령이 또하나 주목해야 되는 여론조사 내용은 '정부의 8.31 부동산 종합대책이 아파트값 안정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전체의 6할이상이 세금 강화에 찬성하면서도 전체 응답자 중 34.2%만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고 61%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고 응답했다. 세금만 갖고 부동산폭등을 잡으려는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의 표현이었다.

정부의 ‘네 탓 타령’, “건설족은 죄 없다. 투기족이 문제다”

위기의 노무현 대통령이 6월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투기를 잡겠다”고 말하자, 모든 정부부처가 앞다퉈 “부동산투기를 뿌리 뽑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부동산 투기세력, 공인중개사, 부동산정보포탈 등을 ‘투기족’으로 규정한 뒤 이들에 대한 엄중대처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투기를 불붙인 정부나 고분양가 등으로 폭리를 취한 건설사 등에 대한 반성이나 대책은 결여돼, 국민의 냉소를 자아낼 뿐이었다. “투기족이 나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투기족만 문제냐, 투기족 위에 군림하는 건설족이 더 문제다”라며 “마치 정부가 산에 불을 질러 놓고선 뒤늦게 ‘불이야’라고 소리치는 격”이라는 게 국민 다수의 따가운 눈총이었다.

여러 부처 가운데 가장 먼저 나선 곳은 국세청. 전군표 국세청 차장은 6월20일 "부동산 투기는 전국민과 국가경제에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당사자들에게만 피해를 주는 강도,절도,도박보다도 더 악성 범죄"라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은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해 소득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건전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정신적.도덕적 기반을 와해한다"고 주장하며 세무조사를 통한 투기세력 척결을 선언했다.

며칠 뒤인 7월1일에는 “2000년부터 올해 6월까지 5년간 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강남지역 9개 아파트 단지에 대해 거래량을 분석한 결과 전체 거래량 2만6천8백21건 가운데 3주택 이상 보유자의 취득건수가 1만5천7백61건으로 전체의 58.8%를 차지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국세청 발표가 있었다. 조사대상인 서울 강남구 5개, 송파구 1개, 서초구 1개, 강동구 2개 등 강남권 아파트 9개 단지 가운데 6개 단지는 재건축 지역으로, 이들 9개 단지의 가격은 최근 5년새 3배 가까이 치솟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지역의 평균 아파트가격은 2000년 1월 3억7천7백만원에서 올 6월 10억6천5백만원으로 2.82배(평균 상승금액 6억8천8백만원)나 올랐다.

이주성 국세청장은 전국 지방국세청 조사국장들을 긴급 소집한 자리에서 조사결과를 밝히며 “분석결과 투기적 가수요가 아파트 가격 급등의 원인임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투기 척결을 지시했다. 국세청은 즉각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 전원에 대한 세무조사를 선언하는 동시에, 인터넷상에서 아파트 시세정보를 조작해온 혐의가 있는 부동산 포탈 등 34개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지난 4년간 단군이래 최대호황 기간에 막대한 개발차익-분양차익을 거두고도 세금은 쥐꼬리만큼만 내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탈세 조사 요구를 받고 있는 건설사나 공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아 그 한계를 드러냈다.

부동산 폭등의 최대 책임자인 건설교통부도 ‘네 탓’ 타령으로 일관하기란 마찬가지였다. 건교부는 아파트값 폭등의 책임을 난립하고 있는 공인중개사 탓으로 돌렸다. 서종대 건교부 주택국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비해 인구당 비율이 10배에 달할 만큼 부동산업소들이 너무 많아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고 투기의 한 책임을 공인중개사들에게 돌렸다. 그의 말대로 IMF사태후 실업 대책의 일환으로 공인중개사 규제를 풀고 부동산경기를 부양하자, 공인중개사 숫자는 50만명을 넘을 정도로 폭증했고 이들이 아파트 주민 등과의 호가 조작, 담합 등을 통해 부동산값 폭등의 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자신들에게 떠넘긴 데 대해 중개업자들은 "현재의 부동산 시장 과열은 정부의 정책 부재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중개업자에게만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라면서 정부를 맹성토하며 동맹휴업에 들어가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밖에 정부는 공인중개사를 압박해 호가 조작을 하는 부녀회 등 가정주부들을 ‘집단투기세력’으로 규정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정부의 지적은 일면 맞으나, 부동산 경기부양책으로 아파트값 폭등을 초래해, ‘가만히 있다가는 평생 집 한 칸 장만이 힘들 것’이라는 불안감을 낳으면서 모든 국민을 집단투기 심리로 빠져들게 한 근본적 원인 제공자가 정부 자신들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선 정부는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았다. IMF사태로 국가를 파산상태로 몰아넣고도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는 ‘관료 무(無)오류론’으로 맞섰던 관료들의 뻔뻔스러움의 재판이었다. (<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 2백41~2백52쪽)
박태견 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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