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블랙 먼데이'의 악몽이 재연됐다. 남유럽발 재정위기 재연으로 유로 가치가 연일 폭락하면서 유로 체제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다가 일본의 신용등급 하락 루머, 중국 긴축 등에 대한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4.12포인트(2.60%) 급락한 1,651.51에 마감했다. 이날 외국인은 7천621억원을 순매도해 이달 들어 순매도액이 3조9천억원으로 4조원에 바짝 육박했다. 기관도 1천21억원을 순매도하며 가세했고,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3천200억원가량 매물이 쏟아졌다. 단지 개인만 7천652원어치 순매수로 버텼으나, 주가 급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중국 증시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들어, 상하이종합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36.70포인트(5.07%)나 폭락한 2,559.93, 선전성분지수는 598.42포인트(5.79%) 추락한 9,731.72로 각각 거래를 마쳤다. 상하이지수 2,600이 무너진 것은 작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2.17% 하락하면서 두달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대만 가권지수는 2.23% 내리는가 하면, 호주의 S&P/ASX200지수는 143.9포인트(3.1%) 폭락해 1년만에 최대 하락률을 기록하는 등 아시아 증시 전체가 말 그대로 '블랙 먼데이'였다.

이처럼 아시아 증시가 동반폭락한 가장 큰 원인은 유로 체제 자체가 붕괴되면서 세계경제가 대혼란 상태에 빠져들 것이란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아시아 시장에서 서방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상품투자전문가인 짐 로저스는 지난 주말 1조달러 지원책과 관련, "유로는 내부에서부터 부식이 시작돼 언젠가는 완전히 소멸할 것"이라며 "나도 유로를 갖고 있으나 이번 구제조치를 보고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원유는 공급부족 상태로, 앞으로 원유값은 크게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서방 애널리스트들도 1조달러의 지원에 대한 독일 내부의 강력한 반발, 연일 심화되는 그리스 정치불안 등을 이유로 유로화가 폭락을 거듭해 '1유로=1달러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UBS의 경우 최근 보고서를 통해 "유로의 대 달러 가치가 내년에 유로당 1.10달러로 더 주저앉을 것"이라면서 "심지어 유로가 달러보다 더 싸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 가치가 오전 한때 1.2232달러대까지 추락해 2006년 4월 18일(1.2221)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폭락했다.

여기에다가 세계신용사 피치의 일본신용등급 강등설 루머까지 겹치면서 시장 불안을 한층 증폭시켰다. 피치는 즉각 이를 부인했으나, 시장에선 유럽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상륙하는 게 아니냐는 공포에 떨었다.

또한 연일 팽창하는 부동산거품을 끄기 위해 중국정부가 금리인상 등 긴축에 나설 것이란 관측까지 겹치면서 아시아 증시 전역에는 패닉적 분위기가 전염병처럼 확산됐다.

환율도 크게 요동쳐, 외국인들의 가공스런 '셀 코리아'가 재개되면서 달러-원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23.3원 오른 1153.80에 마감했다. 부도 위험도 높아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급등해 열흘만에 다시 1.00%포인트를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