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발간, '임종국의 꿈' 현실로
장장 44년만에 정점 도달, 각계 4389명 친일행각 상세히 기록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효창공원 백범 묘소 앞에서 일제시대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해방 전후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총 3권, 3천 페이지에 달하는 인명사전을 공개했다.
이 사전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성수 전 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현상윤 전 고대총장,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 언론인 장지연, 소설가 김동인 등 유력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신현확(1920∼2007) 전 국무총리와 최근우(1897∼1961) 전 사회당 창당준비위원장, 이동훈 등 3명은 지난해 발표된 `친일 명단'에 포함됐으나 유족들의 이의 신청 등이 받아들여져 수록 대상에서 제외됐다. 친일사전 수록이 보류된 384명에 대해서는 추가조사를 벌여 향후 사전을 개정·보완할 때 반영키로 했다.
<친일인명사전>의 뿌리는 고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이다. 임종국 선생은 1965년 굴욕적 한일협정에 분노해 그 다음해 이광수 등의 친일행각을 파헤친 <친일문학론>을 썼고, 그후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친일세력들의 각종 압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가난과 천식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각계의 친일행적 추적에 평생을 바쳤다.
고인은 생전에 조선총독부 자료 등을 기초로, 각계 인사들의 친일 행각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당시는 컴퓨터도 이용할 수 없던 시절로, 고인은 단어장 한장한장에 각계 친일인사들의 행적을 펜글씨로 깨알같이 적어내려갔다. 고인은 생전에 천식으로 건강이 크게 악화되자 후학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잇게 하려 했으나, 너무나 힘든 작업인 까닭에 후학을 구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러나 고인의 사망을 계기로 고인의 유업을 잇기 위해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했고, 그후 1994년 친일인명사전 출간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친일 후손들의 집요한 방해로 큰 진전을 보지 못하던 중, 2004년 <오마이뉴스>가 제안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성금운동이 네티즌들의 폭발적 호응을 얻어 모금운동 열흘 만에 목표액 5억 원 전액을 모금하였으며 이후 계속 성금이 답지하여 7억여 원에 달하는 편찬기금이 조성되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1999년 8월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전국 교수 일만인 선언’이 발표된 후 본격적으로 구성이 추진되어, 2001년 12월 관련 학계를 망라한 조직으로 발족하였다. 편찬위원회에는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교수 학자 등 전문연구자 150 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하여 180 여명이 집필위원으로 위촉됐다.
이들은 그후 8년간 3천여종의 문헌 자료를 수집ㆍ분석한 후 250만명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확인ㆍ심의 작업을 거쳐 수록대상을 선정했다.
매국행위에 가담하거나 독립운동을 탄압한 반민족 행위자, 군수나 검사, 소위 등 일정 직위 이상 부일 협력자 등을 수록했으며, 대중적 영향력이 큰 교육이나 언론, 종교계 종사자와 지식인 등은 더 엄중한 기준을 적용했다.
연구소는 애초 작년 8월 사전을 출간할 계획이었으나 수록 대상 인사들의 유족이 제기한 이의신청 처리, 발행금지가처분 소송 대응, 막바지 교열작업 등 실무적인 문제로 발행이 늦어졌다.
국론통합국민운동본부, 나라사랑실천운동 등 보수단체는 이날 정오 같은 장소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반대 및 민족문제연구소 해체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연구소 측이 장소를 옮기면서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 박정희 대통령 아들 박지만씨와 장지연 후손들은 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시켰다.
연구소와 편찬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지방편·해외편), 식민지통치기구사전, 자료집, 도록 등 총 20여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를 2015년까지 완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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