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이성적 과열', 그 처참한 말로
[송기균의 '마켓 뷰'] 그린스펀의 두 얼굴
다우지수가 6000선을 상향 돌파하는 등 자산시장이 과열되자 여기에 대해 그린스펀 의장이 경고성 발언을 했다. 자산시장 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금리를 계속 인상하였지만 그래도 자산가격의 상승이 멈추지 않자 여기에 대해 직접 경고성 발언을 했던 것이다. 그의 발언을 직접 인용하면 이렇다.
“비이성적 과열로 자산가치가 과도하게 팽창하고 있다.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장기불황이 초래될 가능성도 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자산가격 상승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비이성적 과열'이 경기과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산가격의 과다 상승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이성적 과열이란 달리 말하면 버블을 뜻한다.
자산가격의 과다 상승을 막기 위해 당시 미연준은 금리인상을 단행하였다. 경기가 과열상태가 아닌 데도 버블의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 부작용이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장기불황일 수도 있다는 그린스펀의 우려를 반영한 조치였다.
이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과 미 언론의 반응은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버블의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고 이에 선제 대응하는 미연준의 조치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그린스펀의 발언을 마치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따라한 것이 바로 그 신뢰의 표현이었다.
그린스펀이 우려했던 비이성적 과열의 문제점이 표면화한 것이 2000년 벤처 버블의 붕괴와 주식시장의 폭락이었다.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미연준은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2001년 9.11사태가 터지고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미연준의 금리인하는 더 공격적으로 되었다. 2000년 말 6.5%였던 정책금리를 2003년 6월 1%까지 공격적으로 인하하였다.
공격적인 통화정책에 힘입어 미국 경제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자라나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그린스펀이 우려했던 거품, 즉 서브프라임 버블이었다.
금리가 사상 최저수준에서 상당기간 머무르자 통화량이 급증하고 당연한 결과로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버블팽창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번의 버블팽창에 대해서는 미연준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버블이 1996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데도 그린스펀의 입에서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미연준의 어느 누구도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자산가격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버블이 터지고 80년 만에 최악의 불황이 닥쳤다.
미연준의 입장에서는 당시의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서 공격적인 금리인하는 당연한 조치였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930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불황을 야기한 책임이 조금이라도 경감될 수는 없다. 서브프라임 버블의 발생 원인은 과다한 통화량 때문이었고 그것의 책임은 통화정책을 책임진 미연준에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때까지도 미연준의 의장은 알란 그린스펀이었다.
1996년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말로 버블의 위험성을 경고하여 경제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오래 기억하게 된 새로운 경제용어를 유행시킨 그린스펀이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서브프라임 버블의 주책임자로 비난 받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과다한 시중 유동성으로 인한 버블팽창과 심각한 경기침체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의 한국은행이 그린스펀과 미연준의 1996년의 성공과, 서브프라임 버블로 인한 실패에서 교훈을 얻기를 바랄뿐이다.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2), 동원증권 런던현지법인 대표, 코스닥시장 상장팀장, 코스모창업투자 대표, 경기신용보증재단 신용보증본부장, (현) 기업금융연구소 소장. 저서 <불황에서 살아남는 금융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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