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자금 방치한다고 경제가 살아날까?
[송기균의 '마켓 뷰'] 주식-부동산 거품만 부풀릴뿐
“한국은행이 얼마 전에 올해 성장률을 -2.4%로 제시했는데 곧바로 통화환수 얘기를 꺼낼 수 있겠느냐?”
“지금 경기가 상승기조로 바뀌었다든가 바닥을 찍었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일보>의 4월21일자 <과잉 유동성 논란 가열…정부 내 시각차>라는 기사에서 인용한 두 명의 금융통화위원의 말이다. 금융통화위원이란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결정권을 가진 막강한 사람들이다.
그 분들 말씀의 뜻은 이렇다. 경제가 상승기조로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에 통화를 환수하면 안 된다.
그 논리를 한 단계만 더 진전시키면 이렇게 된다. 우리 경제가 하반기에도 살아나지 않으면 돈을 더 풀어서라도 경제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돈이 넘쳐나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통화당국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걱정이 많이 된다.
금통위원들이 말하는 ‘실물분야로 자금이 더 흘러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과잉유동성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그 판단이 왜 잘못된 것인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를 따져 보도록 하자.
그 분들이 말하는 실물분야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생산부문을 말하는 것일 게다. 즉, 기업으로 돈이 흘러가서 그 돈으로 설비투자를 하고, 원재료를 구입하여 생산을 더 늘리는 것을 뜻할 게다. 그러다 보면 고용도 늘어날 것이 틀림없으니까.
의도는 좋다. 그리고 설사 그 의도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버블의 부작용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하물며 한국은행(혹은 금통위원들)의 의도대로 될 가능성이 애당초 없다면 버블이라는 독버섯을 초기에 제거하기 위해 신속하게 부동자금을 환수해야 할 것이다.
돈을 엄청나게 푼다고 절대 금통위원들이 말한 대로 돈이 흘러가지도 않을 뿐더러 경제가 살지도 않는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만 치솟아 버블만 엄청나게 키울 것이다. 경제이론과 경제현실이 그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차근차근 짚어 보자.
불황이란 무엇인가? 불황 혹은 경기침체라는 것이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 현상은 언제나 똑 같다. 불황의 현상을 가장 알기 쉽게 표현하면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만들어 놓은 물건이 팔리지 않는 것이 불황이다.
기업이 물건을 만들 능력은 충분한데 만든 물건이 팔리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상태를 우리는 불황이라고 부른다.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까 직원을 해고하고, 그러고도 해결이 안 되니까 일부 기업들이 부도나고, 은행은 부실채권이 쌓이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총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불황인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오는지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이런 과정을 거친다. 경기가 호황일 때 기업은 설비투자를 늘린다. 물건이 잘 팔리고 이익이 크게 늘어나니까 향후에도 그럴 것이라고 판단하여 설비를 크게 늘리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소비, 혹은 물건에 대한 수요가 줄게 되면 불황이 시작된다. 기업의 생산능력은 100인데, 기업이 만든 물건에 대한 수요는 90 혹은 80이 되는 상태가 바로 불황이라고 부르는 경제현상인 것이다.
그러면 이 불황이 어떻게 해소될까?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소비 혹은 물건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지금처럼 버블이 붕괴되어 발생한 불황이라면 소비가 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다. 왜냐고? 너무나 뻔한 이유다.
서브프라임 버블이란 것이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빚 내서 마구 흥청망청 소비한 것이 아니던가? 버블이 팽창하는 동안에는 호황을 구가했다가 버블이 붕괴되자 소비가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몇 년 간 파티를 즐겼는데 이제 파티가 끝나고 계산서가 도착했다. 흥청망청 즐겼던 파티 비용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서 빚을 조금씩 오랫동안 갚아 나가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이처럼 소비가 늘 수 없다면 달리 어떤 방법으로 불황이 종료될 수 있을까? 불황이 종료되는 다른 과정은 과잉생산설비를 줄이는 것이다. 현재 100의 생산능력을 80까지 줄여서 소비수준에 맞추는 것이다. 생산설비가 80이 되면 비로소 소비수준과 맞게 되어 더 이상 경기가 하강하지 않고 그 때부터는 정상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처럼 생산능력을 소비수준까지 하향 조정하는 과정을 일컬어 구조조정이라 부른다. 물론 구조조정은 고통을 수반한다. 가장 큰 고통은 실업이다. 그리고 당연히 소득이 감소한다.
이 두 가지 방법 외에 불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불황의 역사를 열심히 연구해봐도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 경제란 것도 결국은 상식인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행 혹은 금통위원들이 말하는 것은 실물분야로 돈이 흘러가도록 돈을 계속 풀겠다는 것이다. 기업이 돈이 부족해서 설비투자를 하지 않는 게 아닌 것이 너무나 명확한데도 말이다.
만약 그 분들 의도대로 돈이 많이 풀려서 기업이 설비투자를 늘린다면 어떻게 될까? 기업이 공장을 또 짓고 기계설비를 더 구입하여 생산능력을 확대한다면 당연히 과잉생산능력이 더 증가할 것이다. 물건에 대한 수요는 80인데 생산능력이 120으로 증가하면 그 결과는?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구조조정의 고통은 더 심해질 것이 뻔하다.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불황이라는 경제 현상의 근본 문제점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투자결정을 하고 있다. 기업들이 불황기에 생산시설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현명하고도 합리적인 경제행위인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돈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기업은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합리적인 경제적 판단이다. 풀린 돈이 갈 곳은 뻔하다. 어느 곳으로 가야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예의주시하면서 부동자금으로 남아있을 것이 명백하다.
게다가 지금처럼 정부가 부동산 규제완화를 강력히 추진하면 돈이 부동산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은 유치원생이라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경제상식이다.
내 결론은 이렇다. 통화량을 아무리 늘려도 생산분야로 돈이 흘러가지 않는 것은 불황기의 당연한 경제현상이다. 돈을 풀면 풀수록 부동자금이 늘고 결국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버블만 키울 뿐이다.
통화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은행은 버블 붕괴 후의 경제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부동자금 환수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2), 동원증권 런던현지법인 대표, 코스닥시장 상장팀장, 코스모창업투자 대표, 경기신용보증재단 신용보증본부장, (현) 기업금융연구소 소장. 저서 <불황에서 살아남는 금융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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