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루비니가 낙관론자", 패닉과 한국
<뷰스칼럼> 'L자형 공포' 현실화 속 한국경제가 갈 길은
월가 "루비니가 비관론자? N0, 도리어 낙관론자"
요즘 아시아 여행중인 그는 홍콩, 인도 언론 등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경제에 대해 올해는 당연히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내년에도 1%미만의 성장으로 실업률이 10%를 넘어서고, 후년에도 2%미만의 성장을 하며 이번 경기침체가 '36개월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더 나아가 미국 등 세계정부가 위기대응에 실패하면 90년대 일본이 경험했던 L자형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며, 그 확률은 33%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 과정에 미국 집값이 앞으로 15%가량 더 떨어지고 다우지수가 6,000까지, S&P500지수는 620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가 연초부터 이런 비관론을 폈을 때, 대다수 서방언론이나 국제기구는 "지나친 비관론"이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우선 내년에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호언하던 IMF 자체가 최근 들어 최악의 경우 2011년까지 불황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크게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IMF 말만 믿고 내년엔 4%대 V자형 회복을 할 것이라고 호언했던 우리정부 입장에서 보면 더없이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유럽 경기침체가 L자형으로 갈 것 같다고 단언하고 나섰다. <FT>에 따르면, 전미경제연구소(NBER) 소장을 지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로마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미국의 소비자 지출이 연간 5천억달러 줄고, 건설 지출은 2천500억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대로라면 미국이 추진중인 7천870억달러 경기부양책은 충분치 못하며 결국 L자형 경기후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FT>는 "미국 소비자들이 돈을 쓰지 않으면 독일, 일본 등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들의 회복도 지연될 것"이라며 "L자형 경기후퇴가 전세계로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월가 "다우지수 4000, S&P500은 400"
비관론이 확산되면서 월가는 완전 패닉상태에 빠져든 분위기다. 루비니 교수가 연초에 다우지수 6,000을 얘기했을 때만 해도 월가는 냉소적이었다. 그러던 게 지난주 다우지수가 6,500대까지 폭락하자, 이젠 "루비니 전망이 도리어 낙관적"이란 식으로 기류가 급변했다. 루비니보다는 앞서 다우지수 4,000을 전망했던 '상품투자 귀재' 짐 로저스가 맞다는 식이다.
그런 대표적 예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 월가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다우지수는 4,000대, S&P500지수는 400~500까지 밀릴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최소한 25%이상 주가가 더 폭락할 것이란 얘기다.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스트래티지스트는 S&P500 지수가 최악의 경우 400~500선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했고, 크리스 귄터 실번트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도 S&P500 지수 500을 전망했다.
말 그대로 패닉적 상황이다.
"부실이 도대체 얼마냐" vs "아무도 모른다"
월가가 이처럼 패닉에 빠져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미국의 세계최대 보험사인 AIG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지원해온 1천700여억달러 가운데 500억달러가 서방의 20여개 금융기관에 '빚잔치'를 한 사실이 새로 드러나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AIG가 빚잔치를 한 것은 파산시 보험료를 대신 물어주는 투기성 파생상품인 CDS 거래를 무더기로 했다가 독박을 썼기 때문이다.
당연히 "AIG 부실이 도대체 얼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파생상품 거래는 평상시 장부 대차대조표에 기록되지 않는다는 데 치명적 위험성이 있다. 이른바 장부외(Off-balance)거래다. 즉 CDS대상인 회사가 쓰러져야 손실이 표면화되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AIG에 앞으로 얼마나 정부돈을 쏟아부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AIG를 파산처리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세계 금융시스템이 바벨탑처럼 무너져내릴 것이다. 미연준이 AIG의 투기행위에 치를 떨면서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계속하는 이유다.
문제는 AIG가 아닌 씨티, BOA 등 다른 대형 서방금융기관들도 오십보백보라는 점이다. 이번에 AIG로부터 500억달러를 타간 20여개 금융기관에 세계의 내로라하는 대형 금융기관들이 모두 포함된 것이 그 증거다. 지난 십수년간 광란적 투기행위를 해온 것은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미 공화당 핵심 인사인 리처드 셸비 의원 같은 경우는 8일 ABC-TV와의 대담에서 "그 은행들이 죽으면 묻어야 한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으나, 월가의 투기적 행태가 부시 공화당정권때 극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규제를 계속 해체해온 공화당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GM, GE 등 제조업 붕괴까지 이어질 경우 금융부실이 급증하면서 월가 패닉은 더욱 심화될 게 분명하다.
한국경제도 점점 U자형으로
월가가 날로 패닉적 상황에 빠져들면서, 우리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주말 "우리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다른 나라의 배 이상인만큼 세계경제보다 우리경제의 침체폭이 더 깊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시각도 점점 장기불황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V자형 회복을 주장해온 정부여당도 요즘 초조해하는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도 "내년까지 나빠질 수도..."라고 했다가 "올해가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고 왔다갔다 하고,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나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의 발언도 점점 비관적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물론 미국경제가 L자형으로 간다고 우리경제도 꼭 그러란 법은 없다. 중국경제가 생각보다 활기를 빨리 되찾는다면 V자형은 몰라도, U자형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의 아시아전문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지난주말 중국경제가 미국경제가 따로 놀 수 없는 '5가지 이유'를 통해 중국-미국 디커플링(탈동조화) 기대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지금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다. 일부 극소수 수출대기업은 공장가동율이 정상화하는 등 환율효과를 보기 시작하고 있기도 했다. 이런 기업은 V자형 회복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수출대기업도 U자형, L자형 늪으로 빠져드는 기업들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기업들이 다수다. 업종마다 다르고, 제품경쟁력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다른 것이다. 전체 기류는 U자형에 가깝다.
'V자형 체질'로
그렇다면 할 일은 딱 하나다. 사실상 전세계에서 용도폐기된 V자형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U자형 심지어는 L자형까지도 대비해야 한다. 대비의 주체는 '정부'여야 한다. 장기불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한 비상 시나리오를 세워야 한다. 급속히 악화되는 재정을 어떻게 덜 축낼 것인지, 외국인의 뿌리깊은 불신을 어떻게 해소할지,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촘촘히 구축할지, 한반도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V자형 회복' 주장은 이제 중단해야 한다. 국민에게도 정권에게도 잔인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다. 대신 어떻게 하면 'V자형 체질'로 탈바꿈할지에 포커스를 모아야 한다. 기존의 V자형 체질'은 환차익 의존 체질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대는 끝났다. 세계장기불황 시대에는 최근 LCD가 정상가동을 하고 있는 데에서도 볼 수 있듯, 최고의 제품경쟁력이 있을 때만 환율 급등 등에 따른 가격경쟁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법이다.
미국은 요즘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물밑에선 주요한 꿈틀거림이 목격된다. 태양광, 풍력 등 대체에너지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미국이었다. 그러던 것이 석유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부시정권이 출범하면서 대체에너지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어 기술을 사장시키고 해외로 유출시켰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이 출범하면서 요즘 실리콘 밸리가 '솔라 밸리', '바이오 밸리'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핵심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녹색성장이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우리도 'V자형 체질'로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 수출기업들은 최고의 경쟁력을 키위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정부는 내수기반 확충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토목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중장년 일용직 대책으로 엄격히 국한해야 한다. 그보다는 젊은층을 위한 IT , 소프트웨어 대책이 나와야 하고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일구고 고통스럽더라도 자산거품 파열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당장 성과는 안나올 것이다. 모두가 5년, 10년 투자와 끈기가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 4년 임기가 남은 정권은 초조할 것이다. 현정권은 5년내내 위기대응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밖에 없다면 이 길에 충실한 게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정권의 숙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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