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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 전략부재가 KT&G 사태 자초"

<인터뷰> 남상구 지배구조센터 원장, "과다한 경영권 보호가 화근"

미국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70)이 KT&G(전 담배인삼공사)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서면서 KT&G뿐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과 기업들이 술렁거리고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에 바빴던 기업들은 국내외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뿐 아니라 한국시장을 탐내는 기업사냥꾼들의 공세에 크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KT&G 사태는 17일 주주총회에서 아이칸의 맹렬공세로 치열한 공방이 거듭되고 있다.

<뷰스앤뉴스>는 한국재무학회, 한국금융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뒤 지배구조 관련 싱크탱크인 한국지배구조연구센터 원장을 맡고 있는 남상구(60)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를 만나 사태에 대한 분석과 향후 전망 및 해법을 들었다.

남상구 원장은 "외국투기자본에 대해 대비하지 못하고 사태 후 전략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KT&G 경영진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김홍국 기자


"해외자본 배척하는 민족주의 시각 우려...본질을 보자"

남상구 원장은 KT&G 사태에 대해 “자칫 해외자본을 배척하는 국수주의적 성격의 민족주의가 자본시장을 휩싸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며 “이번 사태의 본질은 자본시장에서 이익을 챙기려는 외국인투자자들에 대한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무모하게 대결 양상으로 끌고간 KT&G의 경영진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남원장은 “투자자의 속성 상 자신들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적대적 M&A에 나설 수 있는 곳이 자본시장”이라며 “KT&G 경영진들이 외국 투기자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사전에 대책을 세웠어야 했고 사태 발생 후 아이칸 측과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 등 재계에서 경영권 보호장치를 요구하고 일부 주주총회에서 이를 도입하는 데 대해 그는 “황금낙하산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은 당장 아프다고 진통제를 맞는 것과 같다”며 “기업들이 당장 편하다고 이 제도들을 도입하다보면 장래에는 전문경영인과 외국인 주주들이 결탁하는 등 의외의 사태 발생 시 더 위험한 지경에 놓이게 된다”며 신중한 제도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계가 ‘한국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이 아직 미흡하다’며 내놓는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그는 “그같은 평가에 일부 동의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짧은 기간 동안 기업 지배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며 “실제 지배구조 관행을 개선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시간을 갖고 전 사회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기업지배구조센터 원장실에서 1시간여 동안 계속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자산운용 인력구조 등 비효율이 기업사냥꾼 표적된 원인"

뷰스앤뉴스 : 지배구조가 좋은 대표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던 KT&G가 적대적 M&A 시도에 고전하고 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높인 결과 외국인 투기자본의 공격에는 더 취약해졌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남상구 : 지배구조가 좋다는 말은 양면성을 내포한 표현이다. 지배구조가 좋다는 것은 악기가 잘 만들어졌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나 좋은 경영은 연주자가 이 악기로 훌륭한 연주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지배구조가 좋은 경영으로 이어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KT&G가 외부의 기업사냥꾼이나 투기자본에게 취약한 경영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KT&G 측의 대비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KT&G가 지배구조가 우수하지만 일반 기업과 성격이 다르다. KT&G는 공기업의 특권을 가진 채 경영을 해왔고 민영화 이후에도 독점적인 사업을 해왔다. 또 담배값을 올리는 정부정책에 의해 혜택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 이익을 내는 구조를 갖췄지만 자산운용이나 인력구조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인 부분이 컸다고 본다. 지배구조가 잘 갖춰졌지만 향후 개선의 여지가 많은 KT&G와 같은 기업은 기업사냥꾼들이 탐내는 기업이다.

뷰스 :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이 다음 적대적 M&A 대상으로 포스코를 드는 등 기업들에 적대적 M&A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남 : 포스코는 KT&G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해외투기자본들이 의도를 갖고 적대적 M&A에 나서도 나중에 철수하기가 쉽지않다.

게다가 철강산업이 국가의 기간산업이라는 점에서 정부에서 국가전략적 차원의 조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비는 해야할 것이다.

뷰스 : 국내 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의 움직임에 둔감했던 것 아니냐.

남 : 국내기업들이 대부분 그런 외부의 충격에 대해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실례로 대부분 기업들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집중투표제의 폐단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집중투표제는 공격자가 33.5% 수준이 되면 자신들이 원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 그렇다면 KT&G도 방어가 어렵다는 점을 알고 무모하게 대결할 것이 아니라 모양새를 갖추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과거 SK는 타이거펀드와 타협을 했다.

현재는 KT&G가 아이칸측에게 완패한 듯한 모습이다. KT&G의 전략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포스코 등 기업들 긴장하고 대비해 전화위복 계기 삼아야"

뷰스 : 이같은 해외투기자본들의 공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남 : 이번 사태는 KT&G가 국가기간산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다행이다. 국민정서 상 반감이 많지만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포스코, KT 등 기업들이 긴장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기업들은 이제 주주들이 만족할만한 보상을 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경영실적을 통해 얻어진 이익을 주주에게 환원시킬 전략을 세우고 주주들을 설득해야 한다. 투자한 뒤 큰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해야 주주들이 경영진을 지지할 것이다.

뷰스 : 최근 전경련 등 기업단체와 기업들이 적대적 M&A 시도를 막을 수 있는 경영권 보호장치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데.

남 : 경영권 보호는 양날의 칼과 같다. 실제 국내에서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M&A가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 공격을 한 측이 도리어 부담이 더 큰 상황이다.

미국도 초기 적대적 M&A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등 지금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일본기업들의 M&A공세가 거세지자 방어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점차 주주권리를 인식하면서 제도가 정착됐다. 이제 미국은 하루에도 수십건씩 M&A가 일상화되는 사회가 됐다.

당시 미국기업들도 포이즌필(Poison Pill: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기존 주주에게 신주 매입할인권을 부여하는 전략), 황금낙하산제도(Golden Parachute: 퇴임하는 이사에게 거액의 퇴직금 및 잔여 임기 동안의 보수 등을 지급해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적대적 M&A 방어기법) 등 방어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지금은 없어졌거나 차츰 없어지는 추세다.

경영자와 주주가 동등한 힘이 가져야지 한쪽에 지나치게 큰 힘이 주어지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외국인 주식 지분이 급속하게 늘면서 지금 대부분 대주주들은 지분이 극히 낮아진 상황이다. 여기서 경영자와 외국인주주가 결탁하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제도는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황금낙하산제도 등은 진통제를 맞는 것과 같다. 당장 진통제 투여로 아픔을 줄이지만 나중에 문제가 더 커진다. 제도를 도입할 때는 정말 신중하게 해야 한다.

남원장은 기업들에 대해 "외국 투기자본에 대해 적대시하기보다는 전략적으로 활용해 전화위기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김홍국 기자


"기업사냥꾼 거부감 크지만 적대시보다는 활용해야"

뷰스 : 외국인 투기자본의 적대적 M&A에 대해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데

남 : 경제문제를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안된다. SK를 공격했던 소버린의 경우 엄청난 차익을 올리면서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SK는 당시 분식회계 등에 대해 면죄부를 받았고 주가는 5만원대를 유지할 정도로 좋은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경영효율화가 이뤄진 점 역시 SK에는 엄청난 부가가치가 더해진 셈이다.

물론 초단기차익만을 노리는 기업사냥꾼을 좋게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돈 벌려고 들어온 그들에게 한국경제에 기여하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비판보다는 활용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KT&G의 경우 내부 인력운용의 비효율성, 불필요한 자산 보유 및 자산운용의 문제점 등을 안고 있었다. 또 주주보다는 노조를 의식해 종업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컸다는 점도 아이칸측의 공격을 유발한 원인이 됐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뷰스 : 최근 세계은행 등이 국내 기업지배구조가 아직은 미흡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

남 : 그같은 평가에 일부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짧은 기간 동안 기업 지배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7-8년전에 비해 엄청나게 개선됐지 않은가.

그러나 겉모습은 좋아졌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형식이나 제도의 틀은 갖춰가고 있지만 기업의 실제의사결정 과정에까지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실제 지배구조 관행을 개선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시간을 갖고 전 사회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웃나라인 중국이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기업부실 등 문제가 튀어나올 것이다. 결국 우리처럼 공적자금을 투입해야하는 등 위기가 올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예지력을 길러야 한다.

뷰스 : 영미식 기업지배구조가 국내 기업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남 : 어차피 문화적 사회적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기업지배구조가 영미식으로 그대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생성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 주주들이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지만 우리는 개인이 회사를 키운 뒤 자본이 필요해 주식시장에 나가게 된다.

그러나 기업의 기본은 비슷하다. 여기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들 제도의 장점을 잘 도입해야 한다. 너무 성급해서는 안된다. 향후 5-10년 지나야 정착될 것이다.

"기업을 사유물 아닌 공적기관으로 인식하는 책임감 가져야"

뷰스 : 한국경제가 국제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남 : 기업인들의 기본자세가 사회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업은 사회에서 뿌리내리고 성장하므로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기업은 사유물이 아닌 공적 성격을 띄게 된다. 이를 인식하고 더 책임 있는 자세로 경영해야 한다. 지나치게 사사로운 이익 추구에 집착하다보면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뷰스 : 적대적 M&A 등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끼는 기업에 대해 정부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나.

남 : 정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가경제를 다뤄야 한다. 당장 일부 기업들이 힘들다고 경영권 보호에 나서는 것은 근시안적인 태도다. 현재 상황에만 맞춰 정책을 입안하고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나중에 역풍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큰 시각으로 정책을 다뤄야 한다.

기업지배구조센터는 이를 위해 모범규준을 만들고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대한 평가를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한편 정책 건의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또 그동안 지배구조 평가 결과가 발표 후 사장되는 경향이 컸는데 앞으로 기업들에게 심층분석된 상세 보고서를 전달해 경영에 도움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뷰스 : 바쁘신 가운데 시간 내줘서 감사한다.

남 : <뷰스앤뉴스> 창간을 축하한다. 앞으로 정론을 꾸준히 펴주기 바란다. 경제 분야 기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
김홍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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