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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슈퍼맨이 되길 강요"

<현장> 장애인들, 광화문-강변북로 점거 절규

20일, 28번째 장애인의 날. 외형상 이날은 장애인들의 축제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광화문 앞 도로 점거, 강변북로 기습 진입 등 어김없이 이날도 장애인들이 분노를 터트리는 날이었다.

"장애인의 날? No!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의 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 소속 회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4백여명은 올해로 일곱돌을 맞는 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를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가졌다.

윤종술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는 개회사에서 “장애인은 더 이상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이 땅의 국민으로서 당당히 누려야 하는 기본권을 향유해야 할 인간들”이라며 “그러나 여전히 사회는 우리에게 시련과 고통만을 줬다. 장애인의 날에 우리가 투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도 장애인들은 매년 집회때마다 내걸었던 10가지 대정부 요구안을 집회장 맨 앞에 내걸었다. 대정부 요구안은 매년 지난 7년간의 투쟁을 거치면서 얻은 성과물을 제외하고 새로운 요구안을 내거는 방식으로 진행돼 장애인계의 현실과 흐름을 알 수 없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해왔다.

10대 요구안은 △장애인 노동권 보장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및 시설비리 척결 △성인지적 관점의 장애여성정책 시행 △장애인의 방송통신 접근권 보장 △활동보조권리 확대로 이동권 보장 △장애인 주거권 보장 △장애인 가족 지원정책 마련 △장애인연금제 도입 △희귀 질환 및 난치병 장애인 권리보장 특별법 제정 등이었다. 특히 장애인계의 올해 최대 화두는 지난 11일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비리 사회복지시설의 민주화, 실효성을 상실한 활동보조서비스 제도 확대 도입이었다.

장애인들의 차별철폐 공동 투쟁이 올해로 일곱해를 맞았다.ⓒ최병성 기자

장애인들이 내건 주거권, 노동권, 이동권, 교육권 등 10대 대정부 요구안.ⓒ최병성 기자

장애인계의 화두, 차별금지법-활동보조서비스-시설비리 척결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과 이를 어길 경우 처벌 강화를 명문화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계가 지난 5년간의 투쟁 끝에 얻어낸 숙원사업. 법 제정 운동 5년여만에 국회를 통과, 1년여 준비 끝에 지난 11일 시행됐다.

그러나 출발부터 법안은 취지를 무색케하는 정부 당국의 행보로 삐걱대고 있다. 주무부처인 인권위 직원은 고작 5명에 불과하고 인력 충원을 위해 확보된 예산은 새 정부의 예산 감축 흐름에 묻혀 집행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들이 차별 진정을 해도 이 정도 인원으로는 시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집회에서 “오랜 노력 끝에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시행령은 우려한대로 차별금지법을 장례 치렀다”며 “다양한 차별 사유를 인정하고 인력을 확충할 때까지 다시 싸울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홀로 이동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들을 돕는 활동보조서비스 제도는 장애인차별철폐 결의대회에서 빠지지 않고 내걸리는 요구안이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고 있는 활동보조서비스는 1급 장애인에게만 월90시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활동보조서비스가 절실한 2, 3급 장애인에 대해서는 가구소득기준으로 월 2~4만원을 자부담케 하고 있다. 사실상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은 70% 이상의 중증장애인들이 사회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후 4시 28분께 서울시청 앞에서 '비리 시설재단 척결'을 요구하며 한달 가까이 노숙농성을 진행하던 중증장애인 23명이 기습적으로 강변북로를 점거했다.ⓒ최병성 기자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이 슈퍼맨이 되라고 강요”

최광은 한국사회당 대표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슈퍼맨이 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알아서 밖에 나오라는 것이 이 정부의 장애인 정책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날 단연 장애인계의 가장 강도 높은 요구안은 비리 사회복지시설의 민주화와 탈시설 권리 쟁취였다. 시설생활인 주식비 횡령, 장애수당 갈취, 강제노역 등 인권침해가 끊임없이 적발됐지만 5년째 제자리 걸음만 계속하는 성람재단, 장애인 인권침해의 백화점이라고 불리우는 석암재단 비리에 대한 중증장애인들의 절규는 강변북로 기습 점거로 이어졌다.

중증장애인 23명, ‘시설비리 척결’ 외치며 강변북로 기습 점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가 이어지던 오후 4시 28분께 23명의 중증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를 끌고 원효대교 북단 강변북로에 진입, 기습 가두 행진을 벌였다.

석암, 성람재단 비리 척결을 요구하며 지난 3월 25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노숙농성에 들어간 ‘공동투쟁단’ 소속 장애인들이었다. 이들은 경찰이 뒤늦게 달려온 30여분간 강변북로에서 자유로 방향으로 3백미터 가량 행진하며 “비리 사회복지법인 석암, 성람재단의 법인설립 허가를 취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경찰의 봉쇄를 피해 강변북로 4차선을 넘나들며 달려오는 차량과 아찔한 장면을 연출한 끝에 멈춰섰고 이후 오후 7시 30분까지 2시간을 넘게 1차선 행진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시설과 골방에서 장애인들이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죽어가도 정부는 외면하기에 급급했다”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회에 아무것도 알리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리며 살 수밖에 없다”고 절규했다.

초여름 날씨에 행락객들 차량으로 가득하던 강변북로는 오후 내내 차들이 꼼짝도 못하는 장사진을 이뤄야 했다.

강변북로를 점거하고 가두행진을 벌이던 중증장애인들은 30분만에 경찰에게 에워싸여 2시간 넘는 대치를 계속했다.ⓒ최병성 기자

“이제 사회와 정부가 우리의 주장을 들어달라”

앞서 세종문회회관 집회에서도 석암재단 베데스다 요양원 중증장애인 11명이 집단삭발식을 거행했다.

한규선 석암재단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 대표는 “울지 않으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며 “우리는 탈시설 권리 보장을 위해 1년 동안 당연한 요구를 하며 싸웠지만 사회와 정부는 들어주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의 주장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집회는 광화문 서울시의회 앞 1차선을 점거하고 서울시청 앞까지 평화 행진을 요구하며 대치를 계속하다 오후 8시께 정리집회를 갖는 것으로 마무리됐고 강변북로를 점거한 중증장애인들도 광화문 집회가 마무리되자 자진해산했다.

동료 중증장애인들의 삭발을 보며 오열하는 한규선 석암재단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최병성 기자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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