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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선, '1968년 선거' 재판 되나

[김동석의 뉴욕통신] 전쟁-민주당 분열 등 68년 판박이

1968년 4월4일 지구촌의 인류는 금세기 가장 걸출한 지도자를 잃어 버렸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테네시주 멤피스시에서 탈옥수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전 세계인의 인권과 양심의 상징으로 그 빛이 막 발산되기 시작하는 순간에 거대한 음모의 총탄이 그의 가슴에 박혀 버렸다.

킹 목사의 비폭력 방식의 정 반대의 입장에서 같은 목적을 위해 과격하게 싸웠던 말콤 엑스는 그가 암살되기 직전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고 "나는 검둥이들이 인간이 되는 이 길목에서 죽음의 위협에 직접 맞서게 되었다. 어떤 입장에서 흑인문제를 바라보든 그러한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은 언제나 죽음의 위협과 마주한다. 비폭력적인 킹 목사나 폭력적인 저나 같은 운명에 직면해 있다"라고 예언한 바 있다.

음모는 말콤에 비해서 훨씬 온건한 킹 목사를 택했다고 했지만 킹 목사의 정의를 향한 순결한 투쟁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말콤의 그것과 차이가 없었다. 킹 목사 역시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예감했다. 흑인청소부 파업투쟁을 지원하러 멤피스시로 내려가면서 킹 목사는 사도행전을 예로 들며 측근들에게 "인종차별에 대항한 검둥이 형제자매의 투쟁을 위해 고난 받을 각오 없이 어떻게 기독교적인 삶을 살수가 있는가? 이제 그 고난은 우리에게 죽음을 의미한다"라고 설교했다. 4월4일 아침시간, 멤피스시 어느 한 허름한 모텔 이층 발코니에 잠시 나갔다가 탈옥수의 총탄에 쓰러졌다.

1965년 투표권법을 통과시키기까지 10여년이상 흑인민권운동을 이끌어 왔던 킹 목사는 진정한 평등을 위해서는 빈곤의 문제와 평화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빈곤으로 인하여 흑인청년들이 월남전으로 내몰렸고 원인도 모르는 전쟁에서 무더기로 죽어가는 상황을 외면할 방도가 없었다. 월남전에 관한 킹 목사의 관심을 차단하려는 백인 권력층의 음모와 협박이 더 이상 먹혀들 수가 없었다.

몽고메리 부엌에서 다듬어지고 올버니, 버밍햄, 세인트 오거스틴을 거치면서, 그리고 백인인종주의자들에 대항한 셀마 등의 투쟁장소에서 단련된 킹 목사의 정의를 향한 열망은 신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의 외침으로 변했다. 평등권을 향한 킹 목사의 시선이 월남전반대에 집중 되었다. 월남전을 통해서 정치적 기득권을 계산하던 백악관과 중앙정보국(CIA)이 초긴장 상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킹 목사가 반전세력과 결합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권력이 단 1분도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1968년은 대통령선거의 해였다. 부통령이었던 험프리는 민주당 후보를 꿈꾸었다. 당시 험프리 부통령은 반전의 기치를 높이든 젊은 당원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었다. 이들로 인해 로버트 케네디와 매카시를 후보경선에 뛰어들게 만들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험프리는 현직인 존슨 대통령의 지지 없이는 후보가 될 수가 없었다.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전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일종의 과대망상증 환자 같은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민주당은 반전과 확전의 입장으로 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에 4월4일 반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킹 목사가 총격을 받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곧바로 흑인사회가 분노와 비탄 속에서 폭발했다. 미국내 수십 개 도시에서 난동이 벌어지면서 평화로운 지역이 난투극으로 변했다. 그로부터 꼭 두 달 뒤, 중요한 의미를 지닌 캘리포니아 예비선거에서 승리에 한껏 들떠있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었다.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킹 목사에 이어서 케네디의 애도기간이 또 다시 이어지자 민주당 분위기는 어지러워졌고, 민주당원들은 오합지졸이 되어 버렸다.

민주당내 예비경선 진행이 더 이상 어려워지게 되자 험프리(대통령측) 후보는 당내 중간 보스들과 협상을 벌여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투표로 후보를 뽑기로 결정했다. 유권자 다수가 월남전에 반대했음에도 월남전을 고집하는 존슨 대통령이 험프리를 후보로 지명하게 되자, 민주당내 반전주의자인 젊은 세대들이 격렬하게 항의시위를 감행했다. 그것이 '시카고 피의 전당대회'이다.

민주당이 이러한 홍역을 치르는 동안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은 백악관을 향한 치밀한 선거 전략을 수립했다. 반전을 주장하지 않고서는 국민투표에서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전쟁과 관련해 가장 강력한 매파인 닉슨은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는 전쟁논란을 피해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쟁에 대한 찬반의 극심한 논란중에서 침묵은 보기 좋은 중도이고 통합이었다. 닉슨은 민주당이 싸움을 격렬하게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유리하게 되는 형국을 숨죽이며 즐기게 되었다. 인기가 바닥임에도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 성공기'인 셈이다. 닉슨의 그 유명한 선거전략인 "분열시켜 정복한다"가 바로 이것이다.

전쟁 반대, 민주당 분열, 변화와 통합, 그리고 가장 큰 이슈가 "빈곤"인 2008년 대통령 선거가 바로 40년전 대선인 1968년의 짝퉁이다.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미국내 여론의 반목과 갈등, 자칫 8월 전당대회까지 이어질 민주당 두 후보간의 치열한 경합과 존 맥케인 후보가 착실한 본선 준비에 나선 공화당의 상황은 당시와 판박이꼴이다. 또 미국경제의 침체 및 양극화의 심화로 인한 미국내 빈곤 이슈의 대두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변화와 통합, 희망과 안정 등 미국사회의 변화를 둘러싼 대결 양상도 마치 40년전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상황이다.

지난 4일 킹 목사 사망 40주기를 맞아 버락 오바마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킹 목사의 이미지와 헌신적인 활동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애썼고, 이같은 정국변화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려는 공화당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사회변화와 시민사회의 작동방식을 들여다보면 그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거나 점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올해 선거를 한층 흥미롭게 감상할 수가 있겠다.

2008년 미국대선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했던 1968년 대선과 흡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동석 소장은 "전쟁 반대, 민주당 분열, 변화와 통합, 그리고 가장 큰 이슈가 "빈곤"인 2008년 대통령 선거가 바로 40년전 대선인 1968년의 짝퉁"이라고 밝혔다. 1963년 워싱턴에서 열린 민권운동행진에서 연설하고 있는 킹 목사. ⓒ 위키피디아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이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댓글이 3 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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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통해서 억울해서 올립니다
    공권력 비리로 성적표 위조 당하고 간첩 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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