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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게릴라 거리응원 실종됐다"

<독일월드컵> “거리응원? 대규모 거리공연 아닌가요?”

2006 독일 월드컵 대한민국과 토고와의 1차전이 있는 13일, 서울 광화문 일대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거리응원전도 출격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거리응원의 감동을 이번에도 기대하기란 다소 힘들어 보인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진행하는 거리응원 특유의 ‘자율성’이 반감됐다는 것이 이번 2006 독일 월드컵 거리응원전을 찾은 시민들의 지적이다. 특히 대기업과 각 언론사들이 저마다 거리응원 장소를 따로 섭외, 통제하는 바람에 ‘게릴라 거리응원’의 참맛을 떨어뜨렸다는 시민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예전에는 붉은 옷만 입어도 모두 ‘붉은악마’였는데...”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거리응원전 행사를 공동기획한 주최측은 이 날 거리응원을 위해 3백여명의 경호원을 투입했다. 특히 이들은 잔디 밭 내부에 인위적 통로를 설치해 시민들의 이동을 다소 통제했다 ⓒ김동현


한국-토고 전 거리응원을 위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홍모(남, 24세)씨는, 세종문화회관 앞 거리응원 행사를 진행하는 관계자들과 작은 실랑이를 벌였다. 이 날 오전 10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 자리를 깔고 앉은 홍씨는, 오후 2시 30분부터 세종문화회관 앞 거리응원을 공동주관한 KTF, 현대자동차, <조선일보> 관계자들로부터 통로 확보를 이유로 다른 곳에 앉아줄 것을 요구받았다.

이에 홍씨를 비롯한 시민들은 “왜 우리가 먼저 와 있었는데 옆으로 옮겨 앉아야 되냐”며 항의했고, 행사관계자들 또한 “원활한 행사진행과 응원질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라며 거듭 통제에 따라 줄 것을 요구했다.

홍씨는 “2002년에는 경찰들이 차량만 통제할 뿐 거리응원 시민들은 통제하지 않았다”면서 “이번처럼 주최측이 일일이 ‘몇 줄로 앉아라’, ‘이 곳은 앉지마라’ 하지는 않았다”며 행사주최측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홍씨는 “예전에는 붉은 옷만 입어도 모두 ‘붉은악마’였는데 이번 2006 거리응원에서는 거리에 경호원이 넘쳐나고 응원의 순수성이 무너졌다”며 “통제하는 거리응원을 거리응원으로 볼 수 있냐”고 되물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거리응원 행사를 공동주관한 주최측은 거리통로 확보를 위해 자리를 옮겨줄것을 요구해, 이에 불만을 나타내던 시민들과 작은 마찰을 겪었다 ⓒ김동현


세종문화회관 앞은 거리응원 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방송장비와 방송관계자 등 인도변에 자리잡은 응원단과 함께 북새통을 이뤘다. 공동주관사측은 이번 거리응원 안전을 위해 경호원 1백여명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공동주관사측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MBC(문화방송) 월드컵 특집방송을 이 곳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한 뒤,7시부터 9시까지는 인기 가수들이 나오는 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한국-토고전 30분전부터 본격적인 ‘붉은악마’ 주도의 거리응원전을 펼칠 예정이나, 하프타임을 이용해 또다시 인기가수의 공연물을 끼어넣는 등 시민들의 자발적 거리응원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공연기획을 다수 기획했다.

이 날 시청 앞 거리응원에는 행사주최측이 동원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부쩍 눈에 띠어 자발적 거리응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김동현


“이 곳으로는 출입이 불가능” 시청 앞 과잉통제

한편 시청 앞 서울광장 역시 행사 주관사 측의 인위적 통제가 많아 시민들의 자발적인 거리응원을 무색케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SKT), 한국방송(KBS), 서울방송(SBS),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등 시청 앞 거리응원을 공동주관하고 있는 SKT컨소시엄은 이 날 오전부터 카메라 리허설을 준비하는 등 행사준비로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이 날 시청 앞 거리응원에 동원된 사설경비업체 경호요원만 3백여명. 이들은 서울광장 한복판에 위치한 무대주변 경호, 잔디 밭 안 경호, 외곽경호 등 총 3파트로 나뉘어 경호업무를 맡고있다.

이 날 아이들과 함께 시청 앞 거리응원을 찾은 한모(여, 38세)씨는 “왜 거리응원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냐”며 “거리응원이 아니라 무슨 큰 거리행사에 온 것 같다”며 불편해 했다.한씨의 지적처럼 무대주변과 외곽지역 경호를 맡은 경호원들 중 일부는 검은색 정장차림으로 경호에 나섰고, 잔디 밭 광장 안에는 하얀색 셔츠 차림의 경호원들이 각 통로마다 지키고 서 있었다.

잔디 밭 광장 안에서 질서담당을 맡고있던 한 경호요원은 "아무래도 카메라에 잡히고 하니 외곽과는 다르게 하얀색 옷을 입게 됐다"고 귀뜸했다.

행사측 관계자는 “많은 시민들이 이 곳을 찾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속출할 수 있어 부득이하게 최소한의 질서유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잔디 밭 안에서까지 통로마다 경호원들이 배치돼 시민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것을 두고 이곳저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행사측이 인위적으로 설정해 둔 잔디밭 광장 통로에 들어서려던 김모(남, 27세)씨는 “이 곳으로는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경호원의 통제를 받고 황당해 했다. 김씨는 경호원의 통제에 따르면서도 “자기들 맘대로 잔디 밭 안에 장막을 처 놓고 여기는 못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경우”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해당 경호원들은 잔디 밭 내에 설치된 통로는 비표를 단 행사측관계자들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라고 밝혔다. 또 해당 통로는 응원전이 본격화되는 저녁 늦게 철거할 예정이나 그 이전 공연 시간까지는 원만한 행사진행을 위해 부득이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인위적 리허설도 짜증

한편 방송3사가 주도하는 이번 거리응원은 자연스러운 거리응원보다는 방송용으로 각색된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서울시청 앞 거리응원을 주관하고 있는 KBS와 SBS는 2시간 단위로 할당된 자사의 생방송을 위해 수백명의 스텝을 동원해 리허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방송사들로부터 고용된 아르바이트생들과 공연기획사 관계자들은 미리짜놓은 동작에 맞춰 태극기와 붉은 색 리본을 흔들어 보이며 대본연습을 진행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SKT컨소시엄에 참여하지 못한 MBC 또한 상암월드컵 경기장과 세종문화회관 앞 생방송을 진행하기 위해 이 날 오전부터 방송 리허설에 들어가는 등 그 어느때보다 월드컵 특수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이 날 거리응원 행사에서는 행사주최측이 동원한 진행요원들이 시민들에게 응원구호와 응원동작을 미리 알려주며 호응을 요구하는 등 거리응원에는 걸맞지 않는 인위적 색채가 강한 모습들을 자주 연출해 눈살을 찌푸리게했다 ⓒ김동현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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