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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눈물'은 클린트 이스투우드 따라하기

[김동석의 뉴욕통신] 오바마와 유권자와 '공감능력' 놓고 경쟁

사흘 동안 사랑하고 평생을 그리워한 중년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인 소설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는 서부의 총잡이 단골역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메가폰을 잡고 동시에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로 더욱더 유명하다. 정서적으로 고등학교 남학생들 정도가 열광하는 마초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멜로영화에 출연하여 이례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고정 이미지를 벗어나는 데에 성공했다. 근엄하고 우직한 마초배우가 감성에 기초하는 로맨스영화에서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부 마카로니 웨스턴과 같은 액션영화 속에서 악당들을 처치하는 총잡이역보다 오히려 멜로물에서의 연기로 인기를 즐겼고, 이후 그의 연기는 배우와 감독으로서 비약적인 도약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작들을 영화팬들에게 선보였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참관하고 필자는 바로 이 매디슨카운티 다리를 찾아가 보았다. 시민들이 영화에서만이 아니고 바로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욕구도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변신한 영화의 배경에 주목해서 드모인시에서 30분 가량 떨어진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를 보는 것이 이번 대선을 관전하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공화당 지도부에서 활약해온 밥 돌은 전형적인 마초맨 정치인이다. 그는 개인의 감정이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지도자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호소조의 연설문을 완강하게 거부해서 참모들을 늘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 연설 때에도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중에 부상당한 팔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고통을 내색하지 않고 건강한 사람들처럼 마이크를 잡아 주변을 숙연케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밥 돌의 이러한 강인함은 냉전 시대의 지도자상에는 강점으로 작용할지 몰라도 21세기 정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1996년 클린턴과 맞붙은 대통령 선거 운동 중에 밥 돌이 유세를 다닌 지역에서는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당시를 회고하는 공화당의 전략가들은 밥 돌의 가장 큰 패배 원인을 대중들과 감성적인 친화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공화당 정치인 중에 그래도 가장 부드럽다고 평가받는 로널드 레이건도 대통령 재임시 정신병자 힝클리의 총격으로 암살의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난 직후에 "피하는 것을 잊어 버렸다"고 말하여 남성적인 유머와 함께 자신의 마초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1972년 워싱턴 정치권에서 승승장구하던 민주당 상원의원 에드먼드 머스키 의원은 자기 부인의 어려운 처지를 동정해 눈물을 흘리다가 유약한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자리를 내놓게 된 예도 '지도자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는 정치인의 행동양식을 거론할 때 거론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역사는 감정을 통제하는 남성적 사고가 지배해 왔다. 더구나 정치 지도자에겐 더욱 그러했다. 클린턴이 대통령에 출마해서 "나는 당신의 고통을 이해합니다(I feel your pain)"라고 연설했을 때, 언론은 그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조롱했었다. 1992년 뉴햄프셔 민주당 프라이머리 직전에 클린턴은 어느 여인이 음식과 약값으로 지불할 돈이 없다고 호소하며 울움을 터뜨리자, 그는 그 여인을 감싸 안으며 같이 눈물을 지었다.

힐러리 클린턴(왼쪽) 후보와 바락 오바마 후보 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패했던 힐러리가 유권자들과 소통하기를 통해 다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7월 열린 행사에서 힐러리가 오바마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 위키피디아

당시 클린턴 후보는 제니퍼 플라워스라는 여인과의 섹스 스캔들, 그리고 베트남전 참전 병역기피 문제가 겹쳐서 곤란을 겪고 있는 중이어서, 클린턴이 정말로 그 여인의 처지를 동정해서 눈물을 흘렸는지 아니면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서 멍석 깔아 놓은 김에 울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그의 눈물은 국민들에게 고통공감 능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그래서 국민에게 가장 친근한 정치인으로 다가 가서 당선되었고, 재선에까지 성공하여 그러한 강점으로 아직도 국민으로부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절제된 듯 보이면서도 자유롭게 감성을 발산하고 유권자와 가장 가깝게 교감하는 바락 오바마는 부끄러움이 엿보이는 자신감이 매력이다. 그것이 베이비붐 이후의 세대에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오바마 태풍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강한 바람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분명한 것은 4년전 하워드 딘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아이오와의 당원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큰 격차를 벌리면서 힐러리를 능가했다. 아이오와 승리의 여파로 힐러리가 앞서 있던 뉴햄프셔 지지율이 나흘만에 거의 10% 이상 오바마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일격을 당한 힐러리 측이 당황한 표정을 지은 가운데 백전노장인 남편 빌 클린턴은 뉴햄프셔의 승리를 자신했다. 바락 오바마가 자신의 방법을 쓰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바로 "공감능력" 이었다.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던 힐러리는 이후 빌 클린턴의 조언에 따라 팔을 걷어붙이면서 전투의지를 드러냈고, 유권자들과의 소통에 나섰다. 뉴햄프셔를 이긴 "힐러리의 눈물"은 바로 이것을 직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 김홍국 기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4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한국어 정치광고를 할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높임에 따라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미국 정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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