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궤멸 위기'. 2004년 한나라, 2007년 신당
<뷰스 칼럼> 지금은 신당, 범민주진영이 <참회록>을 쓸 때다
신당에선 "출구가 안보인다"고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몇십석이나 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선 예비주자들도 과연 당선될 수 있을까"라는 탄식도 곳곳에서 들린다. "모두 노무현 때문이다. 친노는 물러나라"는 소리도 공개리에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황상태다.
두 택시기사 이야기
21일 오후, 외부에 일이 있어 오고가던 중 중년 나이를 넘은 연배의 두 택시기사를 만났다.
첫번째 택시기사. "속이 다 후련하다. 국민들이 살기 힘들어 죽겠다고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경제가 잘 나가는 게 뭐가 문제냐고 욱박지르던 그 밉상을 더이상 안봐도 되지 않나. 맨날 자기 주변 측근들이나 챙기고, 국민들이 꾸짖으면 독사처럼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맞대들고, 무능한 주제에 집값이나 폭등시켜 있는자들이나 잘 살게 만들고. 새 정권이 아무리 못해도 노무현 정권만큼 못하겠나."
두번째 택시기사. "노대통령이 끽 소리도 못할 정도로 국민들이 호되게 심판한 건 고소하나, 한편 앞날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한나라당이 모두 싹쓸이하지 않았나. 내년 총선도 보나마나고. 대통령, 의회, 지자체 모두 한나라당 세상이 됐다. 지들 잘난 줄 알고 오만해지지 않을까, 막 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이 된다."
민심의 두 얼굴이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의 궤멸 위기
지금부터 거의 4년전인 2004년 3월 한나라당이 지금 신당 꼴이었다. 한나라당은 그해 3월12일 기세좋게 노대통령을 탄핵시켰다. 탄핵안을 통과시킨 후 최병렬 대표 등 한나라당 의원들 모두가 싱글벙글이었다. 당시 노대통령 인기는 말그대로 밑바닥. 국민이 받아들일 줄 알았다. 그러나 민심은 달랐다. 곧바로 '탄핵역풍'을 맞았다. 탄핵역풍은 말 그대로 노도였다.
4.15 총선은 불과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궤멸 위기에 몰렸다. 지금의 신당 이상의 위기였다. 보수언론들 여론조사조차 열린우리당이 220~230석을 얻을 것으로 나왔다. 한나라당 텃밭이던 영남에서조차 한나라당 의원들이 떨어질 것이란 조사결과가 속속 나왔다.
3월23일 비상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가 됐다. 당 조직 장악력은 홍사덕 후보가 압도적이었으나, 당원들은 여론에서 압도적 우위인 박근혜를 택했다. 박근혜 대표당선자는 "동지 여러분 한나라당은 변해야 한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한나라당을 가장 투명하고 깨끗한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차떼기당' 오명을 씻겠다는 거였다. 그는 곧바로 당 간판을 떼고 찬바람을 맞으며 천막으로 당사를 옮겼고, 살벌한 공천을 단행했다. 거물급들이 줄줄이 밀려났다. 통렬한 참회의 과정이었다.
박 대표는 그후 4월15일까지 전국을 누비며 "제발 개헌저지선만은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아무리 한나라당이 미워도 민주주의를 위해 열린우리당이 2백석이상 차지하지 않도록 국민이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악수를 하두 많이해 손이 퉁퉁 부어 붕대를 감아야 할 지경이었다.
4월15일 밤 개표 결과, 열린우리당 152석, 한나라당 121석이었다. 100석만 넘으면 대성공이라던 한나라당에게 기적같은 결과였다. 한나라당은 이렇게 궤멸을 면했고, 그후 지자체선거, 재보선 등에서 40대 0의 연전연승에 이어 이번에 정권을 탈환하기에 이르렀다.
통렬한 참회밖에 없다
신당의 지금 처지는 2004년 3월의 한나라당보다는 낫다. 당시 한나라당은 총선이 한달밖에 남지 않았었다. 반면에 신당은 내년 4월9일 총선까지 석달반이나 남아있다.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나 지금 비치는 모습은 2004년 한나라당과 다르다. 받은 충격이야 당시 한나라당 못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 비치는 절절함의 농도는 약하다. 기껏 나오는 게 친노 비판이다. 노대통령만의 전위대 역할을 해온 친노야 비판받아 마땅하다. 양심이 있다면 '한국판 자민당 일당독재' 위기를 초래한 역사적 책임을 지고 정계를 떠나야 한다.
그러면 비노-반노는? 국민 눈에는 오십보백보다. 노대통령이 민심과 정면충돌하며 역주행할 때 이들은 친노처럼 '노비어천가'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대신 '침묵'했다. 국민들이 이번 대선때 범여권후보들을 노대통령과 동일시한 근원도 이 때문이다.
어디 이들뿐이랴. 내로라하는 재야 원로들을 비롯해 진보 시민사회단체, 친여언론들도 침묵하고 딴청하기란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권초기부터 아파트값이 폭등하며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때 이들은 어디에 있었나. "원가연동제만 해도 집값을 20~30% 떨어트릴 수 있다"고 아파트값 폭등에 맞장구를 치지 않았던가.
해법은 간단하다. 2004년 한나라당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남탓할 일이 아니다. '내탓'이다. 무조건 국민앞에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우리끼리 똘똘 뭉치자"고 해 될 일이 아니다.
진심으로 국민앞에 참회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비겁했나, 내가 얼마나 권력의 단맛에 도취됐었나, 내가 얼마나 민생을 몰랐나를 참회하고 또 참회해야 한다. 루소가 십수명의 사생아들을 고아원에 버렸다고 참회했듯, 알려지지 않은 자신의 잘못까지 드러내며 처절한 참회록을 써야 한다. 정계은퇴를 할 책임이 있는 인사는 정계를 떠나야 한다. 아니면, 혹독한 제3의 심판자로 공천에서 걸러내야 한다.
앞의 두 택시기사 얘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국민은 정치인들보다 현명하다. 균형감이 있다. 문제는 대충 반성하는 시늉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차갑다는 데 있다. '쇼'에 속을 정도로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빙하처럼 꽁꽁 얼어붙은 민심을 녹일 정도로 치열한 자기반성을 하는가, 못하는가에 신당의 미래는 달려있다. 다른 범여권 정치세력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신당, 그리고 자칭 범민주진영이 참회록을 쓸 때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