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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는 아이들 외면하고 귀족학교 세운다니..."

서울시교육청 국제중학교 인가 논란 가열

“사회양극화의 심화로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마당에 연 천만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학비로 지출할 수 있는 특정계층을 위한 특수교육 학교 설립이 타당한가?”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학교의 설립인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립형 사립고와 특수목적 확대 실시 추진에서 벌어진 ‘교육 공공성’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국제중학교 논란은 지난 3월 대원학원과 영훈학원이 각각 국제중학교 설립인 가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촉발됐다. 이들은 지난 해 가평에서 문을 연 청심국제중학교를 모델로 전체 두 학급씩을 만들어 국어․국사를 제외한 전 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계획이다.

청심중학교는 국내 최초로 전국 단위 신입생을 모집한 국제중학교로 1백20명을 뽑는 올해 신입생 전형에 무려 1천5백명이 지원하면서 또 다른 입시형 사교육이라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시민단체 “일반학교 외면하고 특수교육학교 만드는 게 말이 되나”

특히 이 학교의 1년 학비가 1천만원에 달하고 합격생 대부분이 강남․분당 등 특정지역 출신으로 편중되면서 심화되는 교육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울시 교육청이 두 학원의 국제중학교 설립인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공영택 교육감이 자립형 사립고, 특수목적고 확대 실시를 계속해서 언급하자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헌법상 보장된 의무교육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교육 양극화 촉발 정책”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전교조를 비롯한 61개 교육.노동.학생.시민단체들은 12일 서울 서대문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교육청과 교육위원회의 국제중학교 설립인가 반려를 촉구했다.

전교조를 비롯한 61개 시민사회단체는 12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교육청의 국제중학교 설립인가 반려를 촉구했다.ⓒ최병성


이들은 “국제중학교는 결국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학생의 성장기 전부를 입시지옥으로 만들고 말 것”이라며 “결국 사교육을 제도화시키고 교육 양극화를 부추겨 공교육 체계를 뒤는 귀족중학교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정진화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교육청은 특정수요가 있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공교육의 임무는 일반학교를 아이들이 다닐만한 학교로 만드는 것”이라며 “교육청의 설립 인가를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벌써부터 강남 일부 학원들이 설립인가도 나기 전에 부유층 자녀들을 상대로 국제중학교 입시반을 운영하는 등 과열양상을 보이는 예를 들어 정지부장은 국제중 설립인가 건의 상정 자체를 막아 사전에 논란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차별로 교육양극화 심화”, “글로벌 시대의 국가경쟁력 위해 불가피”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주로 교육평준화를 반대하는 진영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영재교육의 필요성’이다.

교육평준화가 전체 교육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계속 해오고 있는 보수언론들과 일부 단체들은 “매년 해외로 빠져나가는 우수학생의 규모가 증가하고 교육수지 적자규모가 34억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교육 실수요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인재양성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총 이성재 홍보부장은 “학교교육이 과거 30년동안 평준화로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에 교육의 다양화, 다각화 요구가 있어왔다”며 “수요자가 원하는 대로 교육을 제공해줘야한다는 측면에서 국제중학교 설립은 긍정적으로 검토해야한다”고 밝혔다.

이부장은 “다만 교육의 다각화가 일부 계층에게 편중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생길 국제중학교나 특목고, 자사고 등에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식의 고민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도 “교육위원회에서 논의해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경기도의 특목고 신설 붐으로 서울의 우수학생들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현실에서 우리만 교육수요를 외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국제중학교 설립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1일 ‘2005년 서울지역 조기유학생수’를 발표하며 “해외유학을 통해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7001명에 달한다”며 공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국내 영재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학교 설립인가 검토에 반발해 24일째 철야농성과 5일째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최병성


이에 대해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공교육의 활성화는 몇몇 기득권층을 위한 영재학교 설립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교육의 질을 안정적으로 높일 때 가능한 것”이라며 “교육당국의 무능함을 교육 다양화와 사학재단의 귀족학교 설립으로 무마하지 말라”며 반박하고 있다.

전교조 “빈부격차 없이 영재수용할 정부 차원의 프로그램 고민해야”

서울시교육청이 진정 공교육 활성화를 꾀하고자 한다면 사립학원의 국제중학교 설립인가를 반려하고 빈부에 상관없이 뛰어난 인재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부나 정부차원의 효율적인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유경수 전교조 서울지부 교선국장은 “교육부와 정부가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각 지역에 영재교육센터를 만들거나 영재교육 부분만 방과 후 위탁 운영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처럼 사학에 운영권을 맡기게 되면 치솟는 학비로 결국 특정계층의 유학 준비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국장은 “전교조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시민단체들이 이 분야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다”며 “국제중학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을 내팽개치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귀족학교’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영재.대원학원의 설립인가 신청 건에 대한 검토를 끝낸 상황이지만 외부 반발을 고려해 서울시 교육위원회 정례회기가 열리는 다음달 7일 안건을 상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단 전망은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위원의 성향 분포상 통과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4년 임기제의 서울시 교육위원은 총 15명 중 전교조 소속 위원(7명)보다 반대진영의 위원수가 한명 더 많기 때문이다.

실례로 지난 해 논란이 됐던 국제.과학고 설립건도 전교조 소속 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나머지 8명의 찬성으로 통과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전교조 서울지부를 비롯한 62개 시민단체들은 상정자체를 막기 위해 교육위원회 5월 정례회기가 열리는 16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천명이 참여하는 항의집회를 열고 교육청을 압박해나갈 예정이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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