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내서 소비하라” 약발 다했다!
[기고] 가계부채 포화 상태...헬리콥터로 돈 뿌린들
시중 부동자금이 천조원을 넘었는데도 소비는 외려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앞에 두고 위 명제가 “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행위다.
일반인들도 그럴 듯하게 여기는 이 명제가 왜 거짓인지에 대해서는 “시중의 돈이 내 돈은 아니기 때문이다”는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놓았다.
“헬리콥터로 돈을 투하하면 수요가 증가한다”는 주류경제학의 논리
위 명제의 출처였던 <맨큐의 경제학>은 이 명제 앞에 참으로 기이한 전제를 깔아놓고 있다.
“사람들이 헬리콥터에서 투하된 돈을 주워서 이제 자신들이 원하는 금액보다 많은 돈을 가졌다”라는 전제를 제시하고, 그 전제 하에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다”고 기술한다.
헬리콥터로 뿌린 돈은 줍는 사람이 임자다. 그 돈을 주운 사람들은 “내 돈”이 많아지므로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늘린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말 그대로 돈을 “헬리콥터에서 투하”하지 않더라도,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어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그런 일말이다.
시중에 넘쳐나는 돈은 거의 대부분 부채에 의해 생긴 돈들이지 “내 돈”이 아니다. 사람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많이 받을수록 통화량이 더 많이 증가하는데,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통화창출”이라고 부른다. 부채가 증가하면 할수록 통화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 통화량이 증가했다는 전제 하에서 성립하는 “통화량이 증가하면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다”라는 명제를, 대출이라는 부채를 늘려서 통화량이 증가한 현실에서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황당한 일도 없을 것이다.
“빚내서 소비하라”는 금통위원과 경제학자들
그러므로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올바른 질문이 된다.
“금리를 인하하여 부채증가를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통화량이 증가하면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는가?”
언뜻 생각하기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인 것처럼 보인다. 금리란 대출의 비용이다. 비용이 낮아지면 사람들이 대출을 더 받아서 소비를 늘릴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학자들이 “금리가 하락하면 수요가 증가하고 금리가 상승하면 수요가 감소한다”는 주장을 펼 때도 상당부분 이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리를 근거로 금리인상에 반대하는 금통위원과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빚내서 소비하라”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런 생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금리를 사상최저로 낮춘 것이 수년이 넘었는데도 소비지출은 증가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단적인 예를 보자. 최경환은 부총리 자리에 앉자마자 금리를 급격히 인하했다. 2014년 8월 2.5%였던 기준금리는 불과 10개월 만인 2015년 6월에는 1.5%로 급락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경제성장률은 급등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경제통계시스템에서 확인해보면 2014년과 2015년 민간소비지출은 각각 1.7%와 2.2% 증가에 그쳐 바닥을 맴돌았다. 경제성장률 역시 각각 3.3%와 2.8%로 여전히 침체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혹자는 이런 반론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금리를 크게 낮추었기에 그 정도라도 경제가 성장한 것이지, 만약 금리를 사상최저로 인하하지 않았더라면 경기침체는 더 심각했을 것이다.”
이 또한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2014년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진정되는 시기였고 이렇다 할 위기 징후도 없었다. 그런데도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경기침체가 지속된 것은 주류경제학의 논리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빚 내서 소비하라” 약발 다했다
현실이 이론과 다르게 전개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떤 경제주체든 부채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설사 국가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부채란 갚아야 하는 돈이므로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상환압력이 커지고, 또 빌려주는 쪽에서 더 이상 빌려주길 거부한다.
부채수준이 어느 정도 되어야 그런 상황이 오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그런 수준에 매우 근접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한국의 가계부채가 위험한 수준이라는 경고를 보낸 것은 실로 오래 전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목소리만 들어보자.
국제금융협회(IIF)는 1월 15일 ‘글로벌 부채 모니터’에서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96.9%로 신흥국 평균인 37.5%는 물론 글로벌 평균 59.6%보다 훨씬 높다고 경고했다. 분석대상 34개 신흥국과 선진국들 중 가장 높았다.
1월 21일자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분석은 더 구체적이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부채비율이 이미 높은 상태에서 그 비율이 계속 증가하는 것인데, 한국, 호주, 캐나다가 그런 상황이다”고 진단했다. 나아가 이 국가들은 “향후 급격한 GDP성장 둔화와 금융위기 리스크가 상당히 증가한다”고 경고했다.
부채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나아가 부도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위 두 연구기관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한국이 그런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늘린 부채가 쌓이고 쌓여 경기를 침체시키는 상황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금융위기가 과연 올지, 온다면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으나, 그럴 위험이 상당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아무리 낮춘들 가계가 빚을 더 내서 소비를 늘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빚 내서 소비하라”의 약발이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것이다.
“금융위기 리스크”를 키운 책임을 물어야
“빚내서 소비하라”의 부작용은 그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빚내서 소비하는 것은 마치 봉급쟁이가 가불을 내는 것과 같다. 가불을 낼 때는 소비가 증가하고 가계경제가 활기를 띠지만, 그 가불을 갚아야 할 시점에서는 소비가 더 줄고 가계경제는 침체된다.
한국경제가 그런 상황에 직면했다고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단기적 대응책을 장기간 사용한 결과 경기침체가 더 심해지는 부작용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채가 과다하게 증가하면 가계경제는 물론 국가경제마저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과다한 부채가 국가경제를 부도로 내몰았던 1997년 외환위기와 선진국 가계의 과다한 부채가 불러온 글로벌 금융위기의 참상을 가슴 졸이며 지켜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제전문가들 입에서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이다”란 말이 나온 지가 오래되었다. 그 이후에도 가계부채는 빠른 속도로 증가를 지속했다. 한국이 “금융위기 리스크가 상당히 증가한” 상태라고 위 두 연구기관은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그런데도 위기를 키운 책임을 물어야 할 당사자들은 여전히 “가계가 빚 내서 소비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초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금리인상에 반대한다.
주류경제학의 거짓 프레임을 깨야 ‘집값 급락’ 온다
“기준금리 인상은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독약이 될 수 있다.” 어느 신문 기사의 내용이다. “독약”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쓸 정도로 금리인상을 강하게 반대한다. 그 이유는 이미 짐작하듯 “한국경제가 본격적인 경기 하강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이 오랜 기간 심어놓은 프레임이 얼마나 견고한지 실감케 한다. 그러나 그 프레임은 “거짓” 논리 위에 세워진 것이다. 초저금리가 10년 넘게 지속되고, 그 결과 시중 부동자금이 1100조원이 넘었는데도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현실은 그 프레임이 거짓임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이 거짓 프레임이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언론의 목소리를 지원군 삼아 금통위원들은 금리인상을 거부한다.
그 프레임을 깨야만 금리인상이 빨리 실행되고, 집없는 서민과 청년들의 고통을 해소할 수준의 집값하락을 앞당길 수 있다.
<송기균경제연구소 (blog.daum.net/kig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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