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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없는 열린우리당의 비극

[김행의 '여론 속으로']<24> 반노-친노 서로 "나가라"는 속내

여권에 뚜렷한 대권주자가 없다. 그러다보니 유독 이번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개편과 관련한 온갖 시나리오들이 등장하고 있다. 당장 열린우리당이 급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마치고 10일 밤 귀국했다. 그의 귀국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번 주가 열린우리당의 내분사태에 최대의 고비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른바 결별이냐 봉합이냐를 두고 치열한 내부투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때의 盧의 선택이 궁금해서다.

친노진영인 참여정치실천연대와 노사모 회원 등은 현 지도부의 퇴진과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구성을 거듭 주장했다. 특히 친노진영은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추진 중인 소속의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친노진영이 세 과시에 들어간 것이다.

반면 통합신당파의 움직임도 속도를 더하고 있다. 비대위는 14~15일 소속의원 전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후, 18일쯤 조사결과를 의원총회에 보고한다는 계획이다. 통합신당을 지지하는 의원이 많은 만큼 ‘대세론’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진로에 직접 개입할 것임은 분명하다. 비록 지지율이 10%도 못되는 대통령이지만 말이다. 그의 입장은 뻔하다. 친노진영을 중심으로 당을 지키겠다는 쪽일 게다.

결국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하나는 친노진영이 당을 지키고, 정동영계, 김근태계, 통합신당파들이 당을 떠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노대통령이 탈당하고 친노직계도 동반탈당하는 경우다. 방법론이 어떻든 결국 각자 제 갈 길 가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시나리오에 치명적 약점이 있다. 우선 첫 번째 시나리오를 보자. 정동영, 김근태나 고건을 염두에 둔 통합신당파 등이 당내 일정 세력으로 존재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이 분당을 감행하려면 확실한 구심점, 즉 당수감이 있어야 한다.

당수감은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창당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자금력과, 그를 따라 나갈 경우 2008년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계파 의원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동영, 김근태, 고건은 그럴 실력이 없다. 기십 억 내지 기백 억이 소요되는 창당자금을 마련키도 어렵고, 계파 의원들이 그들을 따라 나간다 한들 2008년 총선에서 붙는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혹 정동영이 나간다 해도 그의 계파 정치인 중 선뜻 따라 나설 정치인이 없을 것이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12월에 창당한다는 고건 신당이 아직도 지지부진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어떤가. 노무현과 친노직계 의원이 탈당하면 잘해야 원내교섭단체 정도는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노무현당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지고 만다. 이는 곧 정치적 ‘왕따’를 의미한다. 친노직계라 한들 누가 정치적 미아가 되길 원하겠는가. 계파의원들이 움직이기 어려운 속내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은 생각보다 쉽게 쪼개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각자 딴방을 쓰면서도 이런 저런 궁색함 때문에 이혼은 할 수 없는, ‘법적으로만 부부’ 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열린당 정기전당대회을 앞두고 열린 당의장, 최고위원 후보초청 합동연설회에 참석했을 당시의 김근태, 정동영. 김행씨는 2008년 총선에서의 당선이 보장되는 않는 한 두 사람이 탈당할 경우 쫓아나갈 의원은 실제로 얼마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연합뉴스


과거 3김 시절, 우리 국민은 숱한 합종연횡과 정치적 이합집산을 봐왔다. 3김은 하루만에도 정당을 만들어 내는 솜씨를 보였다. 3김에게는 적게는 수백만 명에서 많게는 천만 명에 가까운 유권자를 움직일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힘의 바탕은 확실한 정치적·지역적 지지기반이었다. 새로운 당을 급조해도 줄잡아 수 십 명의 지역구 &#8228; 전국구 국회의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보장이 있었다. 따라서 당연히 천문학적인 정치자금도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언론계에도 3김을 따르는 계파 기자까지 존재했다. 이 시절의 정계개편은 ‘3김 마음먹기’에 달렸었다.

그러나 지금 3김시대는 끝났다. 정동영, 김근태, 고건은 3김과는 그 수준과 처지가 영 다르다.

물론 한나라당의 이명박과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이들 중 누구라고 한들, 수가 틀려서 탈당을 감행한다고 하더라도 선뜻 이들을 따라나설 어리석은 정치인은 거의 없다.

차라리 노무현은 이들보다 한 수 위다. 그가 비록 식물대통령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임기 말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현직 대통령이고, 숫자가 줄었다고는 하나 골수팬을 갖고 있는 특이한 정치인이다. “정치권 386이 노무현만큼 지지받을 수 있나?”는 안희정씨의 일갈은 어이없기는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작금에 우리가 정계개편 시나리오에 대해 너무 많은 공상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3김 시대의 유물이 아닐까. 3김시대 유물의 실체는 정계개편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동영 전 의장이 말을 슬슬 바꾸기 시작했다. “신당논의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순발력 있는 기자적 감각과 훈련 때문이었을까. 정계개편의 어려움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그가 노무현과 김근태 사이에서,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곡예를 시작했다.
김행 여론조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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