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해체' 논란의 본질
[김행의 '여론 속으로']<18> 대선 아닌 총선용 정계개편?
다음 총선은 차기 대통령 취임 2개월 만에 치러진다. 지금대로라면 눈 씻고 찾아봐도 열린우리당 출마자가 붙을 만한 곳이 없다. 호남은 민주당이, 나머지 전 지역은 한나라당이 싹쓸이 할 것이 불 보듯 하기 때문이다.
당장 1백 41명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권 재창출을 생각할 만큼 여유가 없다. 당장 나부터 살아야겠다. 그러자니 급한 대로 호남표부터 찾아야겠다. 아니, 호남쪽 국회의원들은 차라리 제명이라도 당하고 민주당으로 옮기고 싶을 게다. 이런 셈법이니 의석수 12석의 민주당에 끌려 다니는 것이다.
고건 전 국무총리를 넘보는 이유도 간단하다. 그가 대통령이 될 것 같아서가 아니다. 그를 중심으로 ‘다시 헤쳐모여’ 하면 적어도 호남 쪽 국회의원들은 살아날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총선용 구심점이다. 그 다음 그가 야당을 이끌 수 있을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이 말은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반드시 이긴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고건 +민주당 +열린우리당’ =‘도로 민주당’식으로는 정권재창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왜 이 시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DJ의 목포행에 동행했겠는가. DJ가 충무공 이순신의 말을 인용해 “무호남(無湖南), 무국가(無國家)”라고 쓴 정치적 함의는 무엇이겠는가. 뻔 한 것 아닌가. 호남지지층 결집과 민주당 복원이다.
현재 열린우리당의 대다수가 그리는 그림의 대체적인 모양은 ‘고건 +민주당+ 열린우리당’일 것이다.
천정배 의원의 ‘통합신당론’, 정동영 전 의장의 ‘중도개혁세력 대연합’, 김근태 의장의 ‘평화개혁세력 대연합’이나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제 3지대론’ 등. 명칭은 다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도로 민주당’이다. ‘도로 민주당’에 참여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고건 전 총리 정도가 합류하는 것이다.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이 그림을 냉정히 따져보다. 집권 가능성이 있는가. 쉬워보이질 않는다. 일전에 필자가 이미 지적했듯, 고건은 한나라당의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중 누구와 1 대 1로 붙어도 어렵다. 그리고 ‘도로 민주당’ 간판으로는 전국 정당이 될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이었던 ‘천․신․정’ 중 신기남 의원을 뺀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장마저 열린우리당의 간판을 내릴 것을 주장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들 셋은 국민을 위해 갈라섰을까. 천만에. 계산이 다른 것이다. 신기남 의원의 지역구는 서울 강서갑이다. ‘도로 민주당’이 되는 것이 다음 총선에 도움이 될 리 없다.
그러나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장은 입장이 다르다. 이들은 지역구가 호남이다. 정 전의장은 잠시 전주를 채수찬 의원에게 양보했지만, 그 역시 전주에서 재기해야 한다. 게다가 둘 다 호남의 패권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다음 총선 당선도 보장키 어려울 지경이 됐다. 자칫하면 분당의 대역죄를 몽땅 뒤집어 쓸 판이다. 그래서 표현과 명분은 그럴 듯하게 포장했지만 ‘도로 민주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추미애 전 의원이 ‘창당의 실패를 인정한 놀라운 용기’라고 추켜세운 것은 국민들의 수준을 얕잡아 본 것이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치졸한 정치적 계산임을 어떻게 숨기겠는가.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은 정책정당, 전국정당, 개혁정당이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 정당에 제 1당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창당정신이 잘못돼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정치를 못해서 실패했다. 그것을 국민이 나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재집권 능력이 없다고 사망선고를 한 것이다. 결코 ‘도로 민주당’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에선 통렬한 자기반성과 질책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온갖 난무하는 정계개편 시나리오에 도대체 ‘국민’은 없다. 말들은 어찌 그리 잘하는지 평화, 대통합, 실용, 중도개혁 등 좋다는 말은 다 붙여 놨다.
그런데도 ‘민심’은 없다. 그러니 어찌 허황되지 않겠는가.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뱃지밖에 없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정당정치의 근간이 흔들려도 상관없다는 발상이 바로 ‘오픈프라이머리’다.
DJ의 목포행에 동행한 의원들의 아부는 또 무엇인가. 호남이 정치적 볼모인가.
뱃지도 좋고 그보다 더 한 부귀영화를 위한 어떤 정치적 야합을 해도 좋다. 단, 한 가지만 묻자. 나라가 북핵 위기에 빠져있다. 그런데 정계개편 논의와 맞물려 DJ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당수 범여권인사들이 ‘햇볕정책’을 신성불가침한 이데올로기로 추앙하고 있다. 혹시 자신의 낙마를 우려해 핵 위기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열린우리당이 간판을 바꿔달아도 ‘도로 민주당’인 것을 온 국민이 다 안다. 앞으로도 1년 이상 집권기간이 남아 있다. 그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선결 과제는 국가와 국민을 핵과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다. 일점돌파라는 말이 있다. ‘북핵 제재 해법’에 성공하면 떠나간 민심이 돌아올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절대 난공불락의 성이 아니다. 정계개편이라는 조잡한 ‘화장술’에 승부 걸어봤자 실패한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 그대로의 ‘쌩얼’로 승부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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