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지 못한 장병 8명 가족...절망속 오열
"춥고 깜깜한 곳에서 지금 뭐하고 있을지"
군 당국이 15일 인양된 천안함 함미에서 36구의 시신을 수습, 수색작업을 일단락지으면서 아직 찾지 못한 장병 가족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찾지 못한 실종 장병 8명의 가족은 16일 "시신이라도 온전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들, 남편이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배탄지 두달만에.." 박성균 하사 = 온종일 TV만 뚫어져라 봤지만 손자 소식이 들리지 않자 박 하사의 할아버지 주병(75)씨와 할머니 장지기(72)씨는 긴 한숨만 내쉬었다.
아직 손자가 무사히 귀환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노부부는 답답한 마음에 담배만 연거푸 피워 매우 수척해 있었다.
장씨는 "금방이라도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할머니!'하고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은데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박 하사는 지난해 7월 입대했으며 배를 탄 지 2개월만에 사고를 당했다.
경남 창원시 남양동 박 하사의 반지하 방에는 이름표가 붙은 전투복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주인을 기다리며 반듯하게 벽에 걸려 있었다.
장씨는 이름표와 전투복을 매만지며 "착한 내 새끼..이제 안아볼 수도 없게 됐네"라며 울먹였다.
박 하사의 동생은 형과 함께 쓰던 컴퓨터 바탕 화면에 환하게 웃는 형의 얼굴 사진 3장을 띄워 놓고 형의 생환을 기도했다.
◇"얼굴이라도 자주 볼걸.." 이창기 원사 = 이 원사의 형은 바쁘다는 핑계로 동생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씨는 "몇 달 전 가족끼리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다"며 "지금은 동생의 모습이나 기억을 떠올리기에도 너무 긴장되고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며 혹시 시신도 찾지 못할까 불안해했다.
이 원사의 또 다른 형은 "동생이 직업 군인이 된다고 했을 때 불안정한 바다를 직장으로 삼는 게 걱정스러웠다"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말릴걸.."이라고 때늦은 후회를 했다.
이 원사의 영향으로 해군 부사관을 꿈꾸던 조카는 이 사고 이후 해군 지원 시험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내 동생 삼킨 바다.." 최한권 상사 = 최 상사의 생사가 불투명해지면서 하루종일 마음을 졸이던 가족의 마음고생도 더해지고 있다.
최 상사의 누나는 "동생이 있을 저 바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해 참으로 야속하고 무섭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밥 먹어가며 냉정해야 하는 내가 참 싫다"고 비통해했다.
최 상사의 집이 있는 인천 남동구 만수동의 아파트는 적막하기만 하다.
이 아파트는 전체 2천220세대 가운데 약 20%인 450세대가 해군 가족으로 이뤄져 있어 주민들로선 천안함 침몰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박모(60.여)씨는 "해군 상사인 내 아들도 6개월 전만 해도 배에서 군 생활을 했다"면서 "해군이라면 다 내 자식 같은데, 실종자들은 춥고 깜깜한 곳에서 지금 뭐 하고 있을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제2연평해전 영웅' 박경수 중사 = 박 중사의 부인 박미선(30)씨는 남편의 시신이 끝내 발견되지 않은 채 1차 수색작업이 종료됐지만, 여전히 남편의 귀환을 의심하지 않았다.
박 중사는 지난 2002년 6월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당시 하사) 당시 총탄을 맞아 부상했지만 부상 사실도 모른 채 전투에 임했던 `참 군인'이기 때문이다.
또 2004년 혼인신고를 해 초등학교 1학년생인 딸을 뒀지만, 결혼식을 못 올려 결혼 10주년인 올해에는 꼭 웨딩드레스를 입혀주겠다던 남편이었다.
박 중사의 부대 동료는 "그런 경험(제2연평해전)을 하면 보통 제대하거나 다시 배를 타지 않는데 박 중사는 선배들과 가족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두려움을 극복했다"며 "늘 웃는 표정의 `분위기메이커'였다"고 전했다.
◇"100일 휴가 나온지 보름만에.." 정태준 이병 = 아들이 입대한 지 석달만에 당한 사고에 정 이병의 부모는 참담한 심경이다.
정 이병 아버지는 "100일 휴가를 나와 석달간 꼬박 모은 월급을 주고 가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집이 어려워 해주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해줬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정 이병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지난해 어머니(44)가 가슴에 종양이 생겨 큰 수술을 받아 전세금 일부를 수술비로 사용하게 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자 입대를 결심했다.
정 이병 가족을 인근에서 지켜본 주민은 "태준이가 참 착실하고 부지런했다"며 "지난해 큰 수술을 겪는 등 집안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일마저 터지니 부모들의 심정이 말이 아니더라"고 말했다.
정 이병의 큰어머니는 "태준이 부모가 지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며 "얼른 나와야 할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 고(故) 심영빈 하사 후배 장진선 하사 = 장 하사는 앞서 시신으로 발견된 심 하사와 고등학교 동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 하사의 모교인 동해 광희고 교직원과 학생들은 이날 오전부터 시작된 인양작업을 TV 화면으로 초조하게 지켜봤다.
장 하사의 고3 담임을 지낸 박동호(49) 교사는 "고교 3년 선후배 사이인 심 하사와 장 하사 모두 생환하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학교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라며 "학창시설 장 하사는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명랑한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평택2함대사령부에 머물고 있는 장 하사의 아버지는 "지금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 위해 정기적금" 박보람 하사 = 박 하사는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정기적금을 부어 왔으며 이달 만기가 되면 수술비로 드릴 예정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동료들은 "박 하사가 항상 어머니를 걱정하는 효자였다"며 "복무 중에도 항상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 선후배, 동료의 신망이 두터웠다"고 입을 모았다.
◇`육상근무 거절' 강태민 일병 = 강 일병은 함정근무 기간이 6개월이 지나 육상부대로 전출할 수 있었는데도 계속 배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강 일병의 가족은 "태민이가 `가족적인 천안함이 좋다'며 계속 배를 탄다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가족은 "태민이가 대학에서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할 정도로 배를 좋아했다"면서 "배가 좋아서 아직 안 나오는 거니.."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찾지 못한 실종 장병 8명의 가족은 16일 "시신이라도 온전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들, 남편이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배탄지 두달만에.." 박성균 하사 = 온종일 TV만 뚫어져라 봤지만 손자 소식이 들리지 않자 박 하사의 할아버지 주병(75)씨와 할머니 장지기(72)씨는 긴 한숨만 내쉬었다.
아직 손자가 무사히 귀환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노부부는 답답한 마음에 담배만 연거푸 피워 매우 수척해 있었다.
장씨는 "금방이라도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할머니!'하고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은데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박 하사는 지난해 7월 입대했으며 배를 탄 지 2개월만에 사고를 당했다.
경남 창원시 남양동 박 하사의 반지하 방에는 이름표가 붙은 전투복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주인을 기다리며 반듯하게 벽에 걸려 있었다.
장씨는 이름표와 전투복을 매만지며 "착한 내 새끼..이제 안아볼 수도 없게 됐네"라며 울먹였다.
박 하사의 동생은 형과 함께 쓰던 컴퓨터 바탕 화면에 환하게 웃는 형의 얼굴 사진 3장을 띄워 놓고 형의 생환을 기도했다.
◇"얼굴이라도 자주 볼걸.." 이창기 원사 = 이 원사의 형은 바쁘다는 핑계로 동생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씨는 "몇 달 전 가족끼리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다"며 "지금은 동생의 모습이나 기억을 떠올리기에도 너무 긴장되고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며 혹시 시신도 찾지 못할까 불안해했다.
이 원사의 또 다른 형은 "동생이 직업 군인이 된다고 했을 때 불안정한 바다를 직장으로 삼는 게 걱정스러웠다"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말릴걸.."이라고 때늦은 후회를 했다.
이 원사의 영향으로 해군 부사관을 꿈꾸던 조카는 이 사고 이후 해군 지원 시험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내 동생 삼킨 바다.." 최한권 상사 = 최 상사의 생사가 불투명해지면서 하루종일 마음을 졸이던 가족의 마음고생도 더해지고 있다.
최 상사의 누나는 "동생이 있을 저 바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해 참으로 야속하고 무섭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밥 먹어가며 냉정해야 하는 내가 참 싫다"고 비통해했다.
최 상사의 집이 있는 인천 남동구 만수동의 아파트는 적막하기만 하다.
이 아파트는 전체 2천220세대 가운데 약 20%인 450세대가 해군 가족으로 이뤄져 있어 주민들로선 천안함 침몰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박모(60.여)씨는 "해군 상사인 내 아들도 6개월 전만 해도 배에서 군 생활을 했다"면서 "해군이라면 다 내 자식 같은데, 실종자들은 춥고 깜깜한 곳에서 지금 뭐 하고 있을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제2연평해전 영웅' 박경수 중사 = 박 중사의 부인 박미선(30)씨는 남편의 시신이 끝내 발견되지 않은 채 1차 수색작업이 종료됐지만, 여전히 남편의 귀환을 의심하지 않았다.
박 중사는 지난 2002년 6월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당시 하사) 당시 총탄을 맞아 부상했지만 부상 사실도 모른 채 전투에 임했던 `참 군인'이기 때문이다.
또 2004년 혼인신고를 해 초등학교 1학년생인 딸을 뒀지만, 결혼식을 못 올려 결혼 10주년인 올해에는 꼭 웨딩드레스를 입혀주겠다던 남편이었다.
박 중사의 부대 동료는 "그런 경험(제2연평해전)을 하면 보통 제대하거나 다시 배를 타지 않는데 박 중사는 선배들과 가족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두려움을 극복했다"며 "늘 웃는 표정의 `분위기메이커'였다"고 전했다.
◇"100일 휴가 나온지 보름만에.." 정태준 이병 = 아들이 입대한 지 석달만에 당한 사고에 정 이병의 부모는 참담한 심경이다.
정 이병 아버지는 "100일 휴가를 나와 석달간 꼬박 모은 월급을 주고 가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집이 어려워 해주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해줬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정 이병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지난해 어머니(44)가 가슴에 종양이 생겨 큰 수술을 받아 전세금 일부를 수술비로 사용하게 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자 입대를 결심했다.
정 이병 가족을 인근에서 지켜본 주민은 "태준이가 참 착실하고 부지런했다"며 "지난해 큰 수술을 겪는 등 집안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일마저 터지니 부모들의 심정이 말이 아니더라"고 말했다.
정 이병의 큰어머니는 "태준이 부모가 지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며 "얼른 나와야 할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 고(故) 심영빈 하사 후배 장진선 하사 = 장 하사는 앞서 시신으로 발견된 심 하사와 고등학교 동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 하사의 모교인 동해 광희고 교직원과 학생들은 이날 오전부터 시작된 인양작업을 TV 화면으로 초조하게 지켜봤다.
장 하사의 고3 담임을 지낸 박동호(49) 교사는 "고교 3년 선후배 사이인 심 하사와 장 하사 모두 생환하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학교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라며 "학창시설 장 하사는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명랑한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평택2함대사령부에 머물고 있는 장 하사의 아버지는 "지금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 위해 정기적금" 박보람 하사 = 박 하사는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정기적금을 부어 왔으며 이달 만기가 되면 수술비로 드릴 예정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동료들은 "박 하사가 항상 어머니를 걱정하는 효자였다"며 "복무 중에도 항상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 선후배, 동료의 신망이 두터웠다"고 입을 모았다.
◇`육상근무 거절' 강태민 일병 = 강 일병은 함정근무 기간이 6개월이 지나 육상부대로 전출할 수 있었는데도 계속 배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강 일병의 가족은 "태민이가 `가족적인 천안함이 좋다'며 계속 배를 탄다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가족은 "태민이가 대학에서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할 정도로 배를 좋아했다"면서 "배가 좋아서 아직 안 나오는 거니.."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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