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정말 '분당 결심' 굳혔나
<기고> 李대통령의 "박근혜, 내말 오해" 발언에 담긴 함의는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오전 한나라당 신임 당직자들과의 청와대 조찬 회동에서 현 여권 내분 상황과 관련, "박 전 대표가 내 말을 잘못 이해하고 한 이야기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나라당 대변인이 전했다.
바로 전날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의 강도높은 박 전 대표 비난 성명이 온 나라에 평지풍파를 불러 일으킨 상황에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전날의 이 홍보수석의 박 전 대표 비난 발언이 과연 이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도 없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홍보수석 발언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박 전 대표의 '잘못 이해'를 현 사태가 발생한 원인의 전부로 돌렸다.
이동관 홍보수석과 이명박 대통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온 박 전 대표 비판 발언은, 한마디로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는 더 이상 논쟁하고 싶지도 않고 상대하고 싶지도 않다는 깊은 불쾌감의 표출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시중에서 얘기되는 한나라당 분당 사태보다도 박 전 대표에 대한 불쾌감이 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신임 당직자들 앞에서 “당내 화합과 단결”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 대통령 스스로 이날 얘기했듯 '박 전 대표의 잘못 이해'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제스처라도 취했어야 했다.
뭔가 덕담 한 마디라도 던졌어야 했다는 말이다. 예컨대 “박 전 대표는 우리 당의 차기유력 대선후보”라고 하든가, 아니면 이동관 수석에 대해 한 마디 주의를 주든가, 형식적일지라도 어떤 성의있는 제스처를 표시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를 향해 그 어떤 성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집밖의 강도' 발언에 대해 되로 받고 말로 되받아치기 식으로 나온 박 전 대표의 '집안의 강도' 발언이 여권 내분을 더욱 확산시키는 촉매가 됐지만, 이번 사태의 보다 근본적 원인은 다른 데 있어 보인다. 그것은 바로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을 밀겠다”는 발언이다.
청와대는 지자체장들을 향한 말이라고 했으나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바로 이 말에 강한 불신감과 함께 지난 대선상황이 오버랩 됐을 수 있다. 무슨 얘기인가? 사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 볼 때 지난번 경선과 대선은, 밥상 다 차려놓으니까 이명박 당시 후보가 숟가락 하나 들고와 차려놓은 밥상을 독차지한 경우로 비쳤을 거다. 다 죽어가는 당을 어렵게 살려놓고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비판여론도 꽤 높아 이제 대권에 거의 다가 왔다고 느끼는 순간 불청객 이명박 후보가 집안에 들어와 차려놓은 밥상을 독차지했으니...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 되려는가'라고 박 전 대표로선 고민했을 법도 하다. 이제야말로 대권이 확실하다고 자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또 다시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을 밀겠다"며 지난 경선과 대선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을 하니, 박 전 대표가 곧바로 이 대통령의 강도 발언을 곧바로 맞받아친 건 아닐까.
더 나아가 이날 이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당이 중심이 돼서 결론을 내렸으면 좋겠다. 개인적 생각이 달라도 당에서 정해지면 따라가야 민주주의다. 마음이 안 맞아도 토론을 해서 결론이 나면 따라가야 한다”며 세종시 당론 변경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박 전 대표를 압박하는듯한 발언까지 덧붙였다.
정몽준 대표가 이날 모임에서 ‘ 박 전 대표를 한번 만나는 게 어떻겠느냐’고 대통령에게 건의하자, 이 대통령은 '편리할 때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원론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두 사람 사이가 언제쯤 편리해져서 만날 수 있을지...만날 생각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다 보니, 이제 남은 것은 두 사람의 결별 시기와 분당의 형태가 아니냐로 보인다. 국민들도 이제는 두 사람 사이를 알 만큼 다 알기 때문에 국민 여론이 분당에 그리 특별한 변수가 되지는 못할 성 싶다.
분당의 시기는 아마도 지방선거 직후가 되지 않을까.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예상했듯 지방선거가 끝나면 당내 중심이 급속도로 차기권력인 박 전 대표에게로 이동하면서, 겨우 임기를 절반 마친 이 대통령은 앉아서 레임덕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나 친이 직계로선 그런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현재의 답보 상태를 타파하길 원할 것이다. 그건 이제 분당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 권력을 쥐고 있는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많다. 그러나 세종시 카드만큼 위력적인 것도 없다. 남북 정상회담? 이것은 상대가 있는 카드다. 더욱이 그 상대는 북한의 김정일이다. G20 정상회의 서울 개최? 이것은 포장만큼 속 내용이 우리에게 큰 이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이 대통령과 친이직계가 정말 유사시 분당까지 각오한 것이 맞다면, 세종시 수정카드를 갖고 박 전 대표를 겨냥해 설이 끝나면 보다 거칠게 몰아붙일 것이다. 박 전 대표와 친박계도 여기에 절대 밀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는? 최근 보수언론들이 펄펄 뛰면서 하루바삐 세종시 문제를 털라고 이 대통령을 압박하는 것도 분당이 몰고 올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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