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국민과의 '세금전쟁' 시작인가
<뷰스칼럼> "역사는 간접세 저항이 더 무서웠다 말한다"
한국은행 사람들이 금리인상의 어려움을 말할 때 흔히 쓰는 비유다. 마찬가지 비유가 세금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한번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리기란 세금 올리는 것보다 힘들다."
YS차남 김현철씨가 사석에서 쓴 비유다. 그는 '대통령 지지율'에 방점을 찍고 한 말이나, 뒤집어 보면 세금 올리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때문에 경제관료들은 세금 인상을 '세금전쟁'이라 부른다. 엄청난 조세저항에 직면하기 탓이다. 지금 그 '세금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시작된 '세금전쟁'
22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주목할만한 토론회가 열렸다. 우리나라의 국가재정이 현재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토론회가 기획재정부 주도로 열렸다는 점이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고영선 KDI 사회개발연구부장은 "세제개편으로 인한 국세수입 감소규모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총 98조9천억원에 달해 상당한 노력 없이는 2013년까지 균형재정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재정균형을 조속히 회복하지 못하면 과거 선진국과 같이 재정적자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충격적 발표를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후 단행한 각종 세금 감면으로 이명박 정부 재임기간중 100조원 가까운 세수 펑크가 나게 됐다는 얘기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에게 도통 도움이 될 리 없는 토론회를 왜 기획재정부가 개최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펑크난 세금을 더 거둬들이기 위해서다.
실제로 이날 회의에 토론자로 참석한 기획재정부의 김낙회 조세기획관은 세수 펑크 대책으로 "경기 상황을 봐가면서 에너지 다(多)소비품목 등에 대해 제한적인 세율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대형 가전제품에 개별소비세(특소세)를 부과하고,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가전제품(1~5등급 중 4~5등급)에도 개별소비세를 매기겠다는 의미다. 재정부는 이밖에 술, 담배에도 몸에 해롭다는 이유로 세율 인상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외형적으로 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한 꺼풀만 들쳐보면 순서가 뒤엉켜 엉망이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가전제품은 상대적으로 값이 싸다. 서민들이 쓰는 제품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세금을 더 때리면 서민들만 그만큼 죽어날 판이다.
술, 담배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과거에도 언제나 세금을 올릴 때 내건 대외명분은 '국민건강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국민걱정이 되면 정부가 담배사업부터 포기해야 마땅하다. 언제나 본질은 세금이었다.
부가가치세 '만지작만지작'
정부가 정말 손대고 싶어하는 건 부가가치세다. 정부는 2007년에 부가가치세로만 41조원을 거둬들였다. 여러 세목 중 가장 세수규모가 크다.
연초에 재정부로부터 연구용역을 맡은 한국재정학회가 부가세 인상론을 편 사실이 알려져 최근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재정부는 즉각 부가세 인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긴급진화를 했다. 집권여당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다.
하지만 부가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부가세 면제대상 대폭 축소 등 비과세 감면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장 부가세 세율을 올리지는 않겠지만, 감면대상부터 대폭 줄여나가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동안 부가세 면제 혜택을 받아온 이들이 주로 농어민, 중소기업 등이었다는 점에서 실제로 이를 강행하려할 경우 거센 저항은 불을 보듯 훤하다.
문제는 정부가 불과 몇달전까지만 해도 호텔, 골프장 등 호화업종에까지 부과세 감면 혜택을 남발했었다는 점이다. 한 예로 정부는 지난 3월 부가세 감면대상에서 제외하려던 호텔, 골프장, 예식장, 대규모 전문식당, 휴양시설 부속식당 등에 대해 향후 2년간 감면혜택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500만원까지만 세액공제를 해주기로 했던 방침도 철회됐다.
이처럼 호화업종에 대해선 부가세 감면혜택을 2년 추가 연장해준 정부가 농어민, 중소기업 등 극한상황에 몰린 국민에겐 부가세 감면을 없애려 하니, '부자감세'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간접세 인상은 조세저항이 적다?
경제관료들은 언제나 직접세인 법인세나 소득세 인상에 미온적이었다. 이유는 "조세저항이 너무 거세서..."였다.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메이저 언론까지 동원해 융단폭격을 가하니 버틸 재간이 없다는 의미다.
때문에 이들은 간접세인 부가세 인상에 눈독을 들인다. 앞서 재정부 용역을 받은 한국재정학회의 보고서도 부가세 인상을 권유하면서 그 이유를 "상대적으로 조세저항이 적어서..."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말한다. 언제나 간접세 저항이 더 무서웠다. 한번 폭발하면 그 누구도 걷잡을 수 없었다. 조선시대 등에 숱하게 목격됐고, 박정희 정권 말기에도 목격됐다.
정부보다 민심에 가까운 한나라당은 간접세 인상 시도에 펄쩍 뛰며 반대하고 있다. 그랬다간 가뜩이나 암운이 드리워진 향후 선거에서 궤멸할 게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개리에 세수 펑크에 대한 대안은 못내놓고 있다. 몰라서가 아니다. 사석에선 "날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4대강 살리기 등 토목공사를 대폭 축소하고, 내년부터 단행할 2차 법인세-소득세 감면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개리엔 못하고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용기가 없는 것이다. 이래서 '고장난 경보기' 소리를 듣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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