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은 지글지글, 윗목은 빙하지대"
<뷰스칼럼> "부자는 더 부자로, 서민도 부자로 만들겠다"더니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최근 사석에서 털어놓은 푸념이다.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여당내에서도 얼마나 큰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는 "한푼이라도 재정을 아껴야 할 판에 너무 엉뚱한 곳에 돈을 펑펑 쓰고 있다"고 개탄했다.
급속 악화되는 재정...그러나 '선거철'
이처럼 요즘 뜻있는 여권인사들은 속으로 걱정이 많다. 그중 하나가 '재정 악화' 걱정이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발발후 우리나라는 경기부양을 위해 정말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쏟아부었다. 규모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세번째다. 그러다 보니 상반기 경제가 다른나라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인 반면, 재정 건전성은 급속 악화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재정적자가 최소 50조원에 달할 판이다.
문제는 내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데 있다. 요즘 상류층은 유동성 장세로 주식도 뛰고 집값도 뛰니 살만해졌다. 하지만 서민은 그게 아니다. 하루하루 살기가 죽을 맛이다. 환란직후 유행했던 말처럼 "아랫목은 지글지글 끓고 있으나, 윗목은 빙하지대"다. 서민 지원금을 끊었다간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판이다.
더욱이 내년은 정권의 사활이 걸린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 곧바로 '레임덕'이다. 그 후에 치러질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의 떼초상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표'를 의식해서라도 내년에도 경기부양은 불가피하다는 게 한나라당의 '정무적 판단'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방미 기간중 유사한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16일 한미정상회담 전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모든 나라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다 중단하면 경기회복의 동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가이트너 장관은 이에 "미국 정부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2년 기간을 정해 재정지출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감세와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 규모가 2009년과 2010년이 거의 같다"며 "한꺼번에 지출했다가 브레이크를 잡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의 질문은 내년에도 경기부양용 재정집행이 불가피하지 않겠냐는 인식의 표출로 읽힌다.
'묘책' 찾는 정부...그러나 부담은 서민층에게만
문제는 내년에도 올해처럼 천문학적 재정적자를 냈다간 한국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재정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지면서, 대외신인도 하락 등 각종 후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란 점이다.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최근 내년도 '세수 확충', '지출 축소' 묘안을 짜내느라 부심하는 눈치다.
기획재정부가 연초에 한국재정학회에 '부가가치세' 연구용역을 준 것도 이같은 부심의 산물로 보인다. 이 사실을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자 재정부는 "야권의 부가세 인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한 거지, 부가세 인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으나, "부자감세에 따른 세수 감소를 서민에게 떠넘기려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부가세 인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한나라당 판단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폭동을 자초할 일 있냐"며 실현가능성을 일축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부가세 인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재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세금특혜 줄이기'다. 20조원의 세금특혜를 없애겠다는 것. 문제는 세금특혜를 줄일 대상이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이라는 데 있다. 법인세나 소득세 인하 백지화는 검토조차 하지 않으면서 취약계층의 세금특혜만 없애려 하는 셈이다. 이 또한 거센 저항이 뒤따를 조치다.
계속되는 '언희'...계속 아랫목은 끓고 윗목은 빙하지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16일 '부자당'이란 비판에 대해 "서민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당"이란 의미라고 주장했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언희(言戱), 즉 말장난으로 들린다.
지난 대선때 이명박 후보진영의 최대 빅히트 캐치프레이즈는 "부자는 더 부자로 만들고, 서민도 부자로 만들겠다"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정부 들어 상위 20%와 하위 20%간 빈부격차는 더 커지고, 지니계수도 악화되고 있다.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은 급증하고 있고 자영업자는 사상최대의 도산행렬을 계속하고 있으며 중산층도 붕괴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의 유동성 장세에 따른 '자산거품' 재연은 치명적으로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아랫목은 지글지글 끓고 있으나, 윗목은 빙하지대"인 망국현상이 재연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이명박 정부 들어 빈부격차가 완화됐다"고 주장한다. 요즘 자산거품으로 다시 부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상류층보다, 서민층의 부가 더 급증할 때에만 가능한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있다.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인 이유는 겸허하게 민심을 들으란 의미다. 하지만 귀가 둘인 이유를,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리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하는 집단도 있는듯 싶다. 이래서 국민들이 '소통 부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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