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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김근태-손학규는 왜 뜨지 않나

[김행의 '여론 속으로'] 승부사적 기질-지역기반 결여가 약점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손학규 한나라당 전 경기지사는 뜨질 않느냐고.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보면 지지율이 늘 2~3%다. 일시적으로 올랐다 해도 ‘잠깐 반짝’하다 만다. 당사자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참 아까운 두 인물', 김근태와 손학규

필자도 두 정치인을 이런 저런 자리에서 잠깐씩 만난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참,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런 필자의 생각은 다른 기자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나 보다.

지난 5월 중순경, 국회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후보 적합도’ 조사를 했더니 여권은 김근태 의장(11.5%), 고건 전 총리(8.5%), 정동영 전 의장(1.5%) 순이었고, 한나라당은 손학규 전 지사(24.6%), 이명박 전 시장(10.8%), 박근혜 전 대표(6.9%) 순이었다. 김근태 의장과 손학규 전지사가 여야 각당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놀랍게도 일반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와는 영 딴판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대중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성’인 것을.

사실 대중성이라는 것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노래를 못해도 춤 솜씨 하나만으로 가요계를 평정한 가수, 연기는 못해도 얼굴만 잘 생기면 인기스타 반열에 오르는 현실. 이를 분별력 없는 대중심리로만 몰아붙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대중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연기자는 연기를 잘해야, 정치인은 정치를 잘해야’라는 상식을 뛰어 넘는 ‘그 무엇’, 즉, ‘something special’이야 말로 대중을 끌어당기는 힘이다.

연예인의 대중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실력과 얼굴, 몸매 뿐 아니라 노력, 분위기, 화술, 기획사의 로비실력, 이미지 관리, 운, 스캔들 등 수 많은 요인들에 대한 총체적인 호감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중은 완벽한 등산가보다 클리프행어를 원한다

한 축구모임에서 파안대소하고 있는 김근태 의장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 ⓒ연합뉴스


그렇다면 정치인은? 왜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고건 전 총리는 뜨는데, 김근태 의장과 손학규 전 지사는 안 뜨나?

대중정치인도 대중연예인과 같아서 실력, 얼굴, 몸매뿐 아니라 분위기에서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종합적인 판정을 받는다. 이른바 ‘상품성’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김 의장과 손 전 지사가 덜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 중에 신화적인 유격수가 있었다. 김재박 선수다. 쏜살같은 타구를 잡아낼 때 그는 갖은 묘기를 보여주었다. 총알처럼 빠져나가는 공을 그는 아슬아슬하게 잡아냈다. 관중은 그 짜릿함에 매료됐다. 김재박 선수의 뒤를 이은 명유격수로 유중일 선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김재박 선수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그의 플레이는 지나치게 완벽했기 때문이다. 김재박 선수 같으면 아슬아슬한 묘기를 부려 잡아낼 타구를 유중일 선수는 미리 미리 타구 방향을 예측해서 교과서 같은 자세로 안전하게 잡아냈다. 플레이는 확실히 더 완벽했다. 그러나 그는 관중에게 짜릿한 맛을 주지 못했다.

대중은 가볍게 바위를 오르는 숙달된 등산가보다 벼랑 끝에 매달렸다가 간신히 살아나는 ‘클리프 행어(cliff hanger)’에 더 찬사를 보낸다. 그래서 유중일 선수보다는 김재박 선수가, 완벽한 등산가보다는 ‘클리프 행어’가 더 많은 인기를 누리며 대중의 기억 속에 깊은 잔상을 남긴다. 김 의장이나 손 전 지사의 경우 역시 벼랑 끝에 내몰릴 정도의 위기를 정면돌파해내는 ‘나이스 플레이’의 짜릿함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들에겐 대중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기대 이익’이 없다

그러나 원인은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 대중이 인기연예인에게 바라는 것은 ‘즐거움’이다. 그러나 유권자가 정치인에 표를 던질 때는 ‘기대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 이 때 ‘이익’을 따지는 평가 기준으로 가장 결정적인 변수가 바로 ‘출신지역’이다. 내 지역 출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내게도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역감정’이다.

보자. 영남(이명박, 박근혜)과 호남출신(고건)의 거물급 정치인들은 출신지역 정치인에 대한 지역민들의 강한 애정과 열망을 바탕으로 20% 정도는 쉽게 기본점수로 먹고 간다. 물론 지역민들이란 해당지역 거주자뿐 아니라 출신지역을 떠나 서울과 경기, 충청지역으로 옮겨와서 사는 유권자들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서울(김근태)과 경기도(손학규 : 시흥) 유권자들에게는 지역연대감이랄 것이 거의 없다. 이것이 바로 김근태 의장과 손학규 전 지사가 고전하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다. 김 의장과 손 전 지사는 처음부터 ‘대중성’을 기대하기 힘든 정치인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정치다.

요는 이 문제가 개인차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떻게 타고난 고향을 바꾸겠는가.

“대한민국이 정체하느냐 도약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가슴속 열정을 모아 정권창출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김 의장의 각오나, “국민의 바다에서 비전을 찾겠다”며 ‘민생 대장정’을 떠난 손 전 지사가 아직 공허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을 받쳐주는 지역기반이 없어서다. 아쉽지만 두 정치인은 한국의 일천한 정치 메커니즘상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의 트랩에 걸려있다.

차라리 '벼랑 끝'에 내몰리는 상황을 기다리는 편이 더 빠를 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들에겐 '승부사적 기질'이 더 요구되는 지 모른다.

김행 여론조사전문가. ⓒ뷰스앤뉴스


김행 / 연재를 시작하며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중앙일보 기자였다. 열심히 일했다. 2002년에는 정몽준 대통령 후보의 대변인을 했다. 최선을 다했다. 나중에 알았다. 국민들이 기자와 정치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나도 그 중 한사람이다. 그래서 기사를 다시 쓴다는 것에 마음이 무겁다. 굳이 위안을 찾자면 지극히 사적인 인연과 우정뿐이다.

왜 기사쓰기가 두려운가. 사람들이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 즉, 무재칠시(無財七施)에 어긋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안시(眼施),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상대를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화안열사시(和顔悅色施),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것, 세 번째는 언사시(言辭施), 공손하고 아름답게 말하는 것이고, 네 번째로 심시(心施),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심시(身施)는 몸으로 하는 모든 보시를 가르키고, 여섯 번째 상좌시(上座施)는 자리를 양보해주는 것, 마지막은 방사시(房舍施)로 하룻밤 내집에서 묵어가게 하는 것이다.

결국 ‘성 안내는 공양이 참다운 공양’이라는 가르침이다. 기사를 쓰다보면 본의 아니게 핏대를 올리기도 하고 많은 이들과 적도 된다. 또한 실제로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연재를 시작하는 지금, 이것도 전생에서 지은 업보인가 싶다.
김행 여론조사전문가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12 13
    기대

    예리한 분석 부탁합니다.
    여론조사는 역시 김행이었다.그만큼 예리한 분석을 한 기자가 없었다.정몽준한테 갓던게 큰 실수였다.그러나 그때문에라도 여론조사 전문가로서 더 많은 것을 배웟을것이다.큰 기대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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