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주부들 "지금은 현찰 쥐고 있을 때"
<뷰스 칼럼> 민간 위기감 급속 확산, '미봉책'으론 못 풀어
"우리 여편네는 요즘도 툭하면 강남에 간다. 친구들이 모두 강남에 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단지 친구들 보고 싶어 가는 게 아닌 것 같다. 강남에 갔다 와야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안다고 말한다. 요즘 어디에 투자하고 어디서 돈을 빼는지, 여편네들이 만나면 그런 얘기들을 하는 모양이다.
강남 모임은 초등학생 학부모 모임이 뿌리인듯 싶다. 우리 여편네 모임도 우리 애가 초등학교 다닐 때 만들어진 모임이라더라. 애들 공부를 어떻게 시킬 것인가에서 시작해 재테크까지 발전하는 양상이다."
실제로 강남의 '우먼파워'는 막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이들 교육에서부터 소비, 그리고 재테크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들이 주식에 관심을 보이면 주가가 뛰고, 아파트에 관심을 보이면 아파트값이 급등하고, 그림에 관심을 보이면 그림값이 움직였다. 자금력과 정보의 결합인 셈이다.
이처럼 간단치 않은 강남에서 최근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한다. 강남이 지역구인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최근 이런 전언을 했다.
"최근 지역구의 한 사우나에서 우연히 옆에 주부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결같이 '지금은 현찰을 쥐고 있을 때'라고 하더라. 지금은 부동산도, 주식도 아니라는 거다. 현찰을 쥐고 있는 게 그나마 가장 안전하다고 거였다. 아니, 있는 사람들까지 이럴 정도니, 이거 지금 경제 돌아가는 분위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라."
그는 자신이 만난 서민들 얘기도 했다.
"얼마 전 택시기사분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 기사분이 요즘 가스값 폭등을 얘기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 공항에서 택시들이 손님들을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는데, 기사들이 모두 가스값 아끼느라 폭염 속에서도 감히 에어콘 켤 생각을 못하고 밖에 나와 땀을 흘리고 있는다는 거다. 그러다가 맨 앞에 서 있는 택시에 손님이 타 떠나면 뒤에 있는 택시들은 시동을 켜 앞으로 이동시키는 게 아니라, 기사들이 차 뒤에서 손으로 밀어 이동시킨다는 거다. 한푼이라도 가스비를 아낄려고 말이다.
그러면서 강만수 장관 욕을 그렇게 하더라. 수출 좀 잘 되게 하겠다고 환율을 끌어올려 물가대란을 일으켜 서민들 살기가 두배, 세배 힘들게 만들었다는 거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강 장관을 감싸고....이런 얘기를 듣는 순간, 정말 고개를 못들겠더라."
이 의원의 전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지금 우리 사회 저변에는 위기감이 심각할 정도로 급속 확산되고 있다. 없는 사람들은 정말 살림살이가 힘들어져 극한고통을 토로하고 있으며, 있는 사람들은 불안감에 몸을 움크리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 절반이상이 "IMF사태때보다 살기 힘들다"고 하는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면서 세간의 불만의 시선은 이명박 정부로 향하고 있다. 다수 국민들도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세계경제가 급랭하는 게 경제불황의 가장 큰 이유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강만수 경제팀의 초반 넉달간 헛발질이 고통을 가중시켰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정치전문가'인 동시에 '경제전문가'이다. IMF사태를 겪어봤기 때문이다. 고환율정책이 자신에게 어떤 피해로 다가오는가를 웬만한 경제전문가들 못지않게 정확히 안다. 이래서 "한국에서 대통령하기는 어느 나라보다 힘들다"는 얘기도 나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경제운영 방향을 "물가 안정"으로 잡았다. 만시지탄이나 다행이다. 아쉬운 건 이 대통령이 "인플레는 히틀러의 양아들"이라거나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나라의 통화가치를 타락시키라"는 레닌의 말 등을 종전에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환율 정책을 통한 물가 불안이 정권, 더 나아가 한 나라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몰랐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1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물가 안정"을 최우선 경제운용 목표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바람직한 방향 설정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유임시킨 강만수 장관은 지금도 곳곳에서 행한 강연에서 자신이 취했던 고환율정책의 정당성을 강변, 국민들을 격노케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강 장관을 유임시킨 '말못할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강 장관을 계속 껴안고 가는 한, 이 대통령은 앞으로 국정운영에 몇배나 큰 시련과 비난여론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강만수 경제팀을 절대불신하기 때문이다. 서민뿐 아니라, 강남 사람들도 절대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뢰의 위기'인 것이다.
'신뢰의 위기'는 강남에서조차 냉소받는 '아파트 경기부양책' 정도를 갖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대통령이 빨리 깨닫기를 기대할 뿐이다. 강만수 경제팀을 앞세워선 위기 돌파를 위한 '고통 분담'은 말도 꺼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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