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직후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는 선전포고를 시작으로, 공천탈락후 출마를 강행한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연대 후보들에게 "마음이 찢어진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특명을 내리는 등 박 전대표는 사실상 벼랑끝 승부를 택했다.
한나라당이 당초 방송사들의 출구 예측조사처럼 170~180석에 달하는 절대압승을 거뒀다면 박 전대표의 정치생명도 끝날 게 불을 보듯 훤했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친박계 인사들을 빼고도 이명박계 중심의 독자적 정국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이명박계에서는 박 전대표를 '해당분자'로 규정한 뒤 그를 고사시키기 위한 대대적 공세에 나설 게 분명했다.
그러나 박 전대표는 역시 '선거의 여신'이었다. 그는 고뇌끝에 특유의 벼랑끝 승부수를 던졌고, 4.9총선 결과 그는 한나라당 안에서 32명, 한나라당밖에 26명 등 도합 58명에 달하는 친박계 당선자를 배출하는 말 그대로 일대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이 과정에 지난해 경선때부터 최근의 공천에 이르기까지 그를 궁지로 몰았던 이재오, 이방호 등 이명박계 거물들을 비롯해 박형준, 정종복, 김희정, 오세경 등 내로라하는 이명박계 핵심측근들이 모두 맥없이 침몰했다. 모두가 '박풍'이란 질풍노도에 낙엽처럼 날아가 버렸다.
박근혜 전대표는 역시 '정치적 승부사'였다. ⓒ연합뉴스 박 전대표는 이제 보수진영내에서 완전한 주도권을 확보하게 됐다. 지금 휘하에 58명의 당선자들을 확보하게 된 그는 '독자적 정당' 규모의 파워를 확보하게 됐으며, 특히 영남권은 한나라당 텃밭이 아닌 '박근혜 텃밭'임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간신히 과반수 이상 의석 확보에 성공했으나, 박 전대표의 협조 없이는 한치도 움직일 수 없는 덫에 걸려 옴쭉달싹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범이명박계로 분류되는 한나라당 당선자들도 박 전대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됐다. 박 전대표와 적대하려 했다가는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을 게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질풍노도 같은 '박풍'이 몰아친 결과, 이제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연대의 한나라당 복귀는 기정사실화됐다. 이들의 복귀 없이는 안정적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의 복당을 저지하겠다던 이재오, 이방호 등이 줄줄이 낙마하고 강재섭 대표도 불출마로 의석을 상실한만큼 향후 박 전대표에 적대할 세력은 정몽준 의원 정도밖에 안남게 됐다.
그러나 '3김시대 이후의 유일한 대중정치인'임을 과시한 박 전대표에게 정몽준 의원이 대립각을 세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재오계, 이방호계 상당수가 정 의원 보호막 뒤에 숨으려 하겠지만, 이미 정치의 무게중심은 박 전대표에게 넘어간 양상이다.
따라서 향후 정국은 박 전대표와 이상득 국회부의장간 '대화 시대'가 예상된다. 이 부의장은 이명박계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박근혜 전대표의 정치적 지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비둘기파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동생인 이명박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운영이다. 이 대통령이 5년후 대선에 다시 출마할 수도 없고, 자신도 차기 대권게임에 관여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차기 대권에 욕심을 두고 박 전대표 고사 작전을 펴온 이재오, 강재섭 등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박 전대표도 이 부의장의 노력을 잘 알고 있기에, 그와의 대화에 긍정적이다. 이 부의장은 이미 한나라당밖 박근혜계의 복당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