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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시민의식' 어디로 갔나

<현장> '6시간의 쇼, 2시간의 열광' 뒤의 쓰레기천국

심판의 종료 휘슬은 서울시청을 가득 메운 20여만명의 함성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50여만명이 몰려든 서울 도심은 짜릿한 역전승의 성취감을 맛보려는 시민들의 몸짓으로 하나가 됐다.

한국대표팀이 독일 월드컵의 첫 승전보를 짜릿한 2-1 역전승으로 알린 13일과 14일 새벽 서울 도심은 온통 붉은 물결이었다. 시청 앞 서울광장 20만명, 광화문 네거리 18만명, 교보빌딩 앞 6만명, 세종문화회관 앞 6만명 등 50여만명의 시민들은 4년 전 한일 월드컵 당시의 열기를 잊지않고 있었다.

실점 이후 불붙은 시민들의 응원열기

시작은 좋지 않았다. 전반 초반 몸이 덜 풀린 우리 대표팀 수비라인은 토고 공격진에 여러차례 공간을 허용했고 공격전환은 더뎠다. 수비라인에서 미드필더로 나가는 패스는 번번이 차단됐고 공격진으로 한번에 찔러주는 종패스는 대부분 상대 골라인을 넘어갔다.

한국 대표팀이 좀처럼 경기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간혹 아데바요로, 쿠바자 등 토고의 공격진에 찬스를 내주자 시민들은 초조함을 감추고 차분히 경기를 관전했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많은 20만명의 시민이 운집한 서울시청 앞 광장.ⓒ최병성


시민들의 응원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은 토고의 첫 골이 터진 이후부터였다.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실점 이후 오히려 대표팀을 독려하며 다양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성숙한 응원의식이 보답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반을 1-0으로 뒤진 채 전열을 재정비한 대표팀은 후반 9분 이천수의 극적인 동점골, 27분 안정환의 역전골로 전세를 뒤집었고 50만 시민들은 열광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 이후 두 번째 역전승, 월드컵 52년 출전사에 처음 기록한 원정 경기 승리였다.

시민들은 시합 전부터 각종 응원구회를 외치며 대표팀의 필승을 기원했다.ⓒ최병성


2002년의 짜릿한 경험을 다시 경험하다

대표팀이 거둔 극적 역전승에 시민들은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 역전승을 거둔 나라는 히딩크 감독의 호주팀과 우리대표팀뿐이어서, 흥분은 더 했다. 흡사 4년 전 폴란드를 꺽고 첫 승을 올린 그날의 감격을 재현하듯 시민들은 도심 곳곳을 활보하며 다시 ‘대한민국’을 외쳤다.

폭죽은 쉴 새 없이 터졌고 승리를 자축하는 카퍼레이드 행렬도 끊이지 않았다. 오후 1시부터 서울 도심 곳곳에 몰려든 시민들에게 이날은 한국 축구의 새장을 연 2002년의 그날이었다.

2002년과 2006년, 달라진 혹은 실종된 것들

그러나 이날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한국 축구와 다시 서울 도심을 붉게 물들인 거리 응원의 열기는 2002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달라진 풍광이 눈에 띄었다.

지난 2002년 전 세계 언론에게 경이로운 경험을 안겨줬던 자발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거리응원과 시합이 끝난 후 광장을 말끔히 청소했던 '시민의식'이 실종된 것.

이날 서울 도심의 거리응원은 철저히 대기업과 방송국에 의해 통제됐다. 특히 시청 앞 광장은 방송국이 미리 구성해놓은 일정표에 시민들은 그대로 따라야하는 상황이 하루 종일 계속됐다.

서울시청의 거리응원 운영권을 갖고 있는 SKT 컨소시엄이 내걸은 대형 풍선 태극기.ⓒ최병성


오후 5시부터 시청 앞 잔디광장에 자리를 잡은 시민들은 쉴새없이 이어지는 가수들의 공연에 방청객으로 앉아있어야 했고 15만명 이상이 몰려든 오후 8시 이후에는 주최 측이 동원한 용역직원들에 의해 출입을 통제 당해야 했다.

이에 따라 "경찰도 아닌 직원들이 왜 광장의 출입을 통제하냐"는 시민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고 일부 시민은 용역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광장 출입을 둘러싼 주최측과 시민들의 시비는 경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고 결국 경찰이 나서 중재를 하는 상황이 종종 연출되는 등 이날 시청 앞 광장은 연예기획사의 ‘쇼케이스’를 연상케 했다.

시합이 끝난 이후 서울 도심 곳곳에 방치된 각종 쓰레기더미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날 광화문 네거리를 비롯해 서울시청 앞 8차선은 거대한 ‘쓰레기장’이었다.

새벽부터 대부분의 인도에 자리를 잡은 수백개의 좌판이 음식물과 각종 응원도구를 판매했지만 따로 쓰레기통을 마련하지 않았고 시민들도 쓰레기를 방치해 거리뿐만 아니라 지하철역으로 통하는 지하보도까지 쓰레기더미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02년 열광적인 응원과 일사불란한 질서의식, 응원장소를 말끔히 치우고 집으로 돌아갔던 성숙한 시민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민들이 방치한 쓰레기는 고스란히 100여명의 환경미화원의 몫으로 남겨졌다.ⓒ최병성


결국 시민들이 남겨놓은 쓰레기는 서울시 중구 소속 환경미화원 1백여명의 몫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응원 내내 붉은 물결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환경미화원들은 시민들이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있던 그때 차량 통제가 풀린 광화문 네거리 일대 8차선을 넘나들며 쓰레기를 치우느라 진땀을 흘려야했다. 간혹 시민들의 차는 이들을 지그재그로 피해가며 승리의 경적을 울렸고 그때마다 환경미화원들은 급히 쓰레기를 도로변으로 재빨리 밀어내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난 2002년에도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다는 정모씨(54)는 “이 정도 양이면 아마 밤을 꼬박 새야 겨우 끝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아쉽기는 하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나마 우리가 이겨서 다행”이라고 멋쩍게 웃어보였다.

이들 환경미화원은 밤새워 14일 출근시간까지 쓰레기를 쓸어냈으나, 서울시청앞, 청계천광장 등에는 아직도 다 치위지 못한 쓰레기가 널려진 상태다. 서울시청 건너편 덕수궁 골목 등에도 쓰레기는 넘쳐, 인근 빌딩 경비아저씨들까지 나서 청소를 하는 상황이다.

이날 한국 대표팀은 16강 진출을 위한 첫 관문을 통과했지만 아직 토고와는 수준이 다른 세계 톱클래스의 프랑스, 스위스와의 시합이 남아있다. 우리 국민들에게도 아직은 2차전과 3차전이 남아있다. 2002년의 뜨거웠던 열기와 감동을 재현하면서, 나아가 몇 가지 잊어버린 기억들을 되살릴 필요가 있을 듯하다. 당시 국민을 감동시키고 세계를 감동시켰던 것은 우리의 높은 '시민의식'이었기 때문이다.

광화문.세종로 거리는 시민들이 버린 각종 쓰레기로 가득했다.ⓒ최병성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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