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문제는 절대로 장애가 안 될 것"이라던 정부 호언과는 반대로 결국 쌀문제 때문에 남북장관급회담이 아무런 결론도 못내고 결렬됐다.
북한의 이같은 냉랭한 대응으로 정부가 추진해온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도 희박해지며 국내정계에도 일파만파의 후폭풍이 몰아닥칠 전망이다.
공동보도문 막판 도출
통일부 김남식 대변인은 1일 "더 이상의 (남북간)접촉은 없고 종결회의로 들어갈 것"이라며 "현재 종결회의 시간을 정하기 위해 얘기하고 있다"며 지난달 29일부터 나흘간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진행된 제21차 남북정상급회담의 결렬을 선언했다.
양측은 그러나 막판에 공동보도문 도출에 성공했다.
공동보도문은 그러나 "회담에서 쌍방은 지난 20차례의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이룩된 성과와 교훈을 평가하고 앞으로 남북관계를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부합되게 보다 높은 단계에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회담에서 쌍방은 남북관계 발전과 관련해 제기되는 원칙적이며 실천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제기하고 진지하게 협의하였다. 쌍방은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따라 한반도 평화와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문제들을 더 연구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추상적 내용에 그쳤다.
그러나 실제 협상에서는 북측은 우리측이 요구한 남북철도 개통 등에 대해서도 당초 약속했던 40만톤의 쌀 지원을 먼저 하지 않는 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는 오늘 오전 9시 마지막 수석대표접촉을 열었으나 끝까지 쌀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북측 대표단은 애초 이날 오후 3시50분 인천공항을 떠나 평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31일 오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 만찬에서 남측 수석대표 이재정 통일부장관과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만찬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양측은 쌀 문제로 등을 돌려야 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남한 불신 극심, 남북정상회담 물 건너가나
남북이 장관급회담에서 공동보도문을 내지 못한 것은 2001년 11월 제 6차회담과 지난해 제19차 회담에 이어 세번째로, 향후 남북관계의 경색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강력 대응은 우리 정부의 쌀 지원 제공 보류가 미국측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미국은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북한이 2.13합의를 이행하기 이전에 대북에 대한 쌀 등 인도적 지원을 중단할 것을 압박해왔고, 결국 정부를 이 요구를 수용했다.
따라서 북한의 이번 회담 결렬은 단순히 쌀 지원 차원을 넘어선 노무현 정부에 대한 극한 불신의 표출로 받아들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대북송금 특검 때부터 노 정부에 대한 불신을 표출했으며, 그후 우리측의 여러차례 대북 접촉에도 기존 입장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앞으로 남한 대신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당면한 문제를 풀어간다는 '남한 왕따전략'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불신 표출은 노 대통령이 퇴임전 희망했던 남북정상회담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졌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범여권의 대선전략에도 적잖은 차질을 가져오는 등 연말대선에도 적잖은 후폭풍을 몰고올 전망이다. 이해찬 전총리 등 범여권후보들은 그동안 줄줄이 방북, 남북정상회담후를 대비한 포석을 해왔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관계 악화는 범여권 대통합 헤게모니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 대통령간의 역학관계에도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 전대통령을 비롯해 천정배-정동영-김근태 등 범여권후보들은 정부의 쌀 지원 보류를 맹성토해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급랭으로 친노진영이 궁지에 몰리며, 범여권 통합의 헤게모니가 동교동 측으로 넘어갈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이달 예정된 방미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자이툰부대의 파병 연장에 동의할 경우 역풍은 더욱 거세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