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주택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을 ‘어용단체’로 규정해 파문이 일고 있다.
김형오 "열린당, 어용단체까지 동원해 가지고..."
김 원내대표는 7일 저녁 YTN ‘뉴스를 말하다’에 출연,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국회 파행 책임을 둘러싼 공방을 벌였다.
그는 자신이 한나라당 건교위원들을 어렵게 설득해 주택법을 건교위에서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은 사학법을 전혀 처리해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던 중 “2월 6일 (주택법 개정안을) 급작스럽게 제출해놓고 통과 안시킨다고 무슨 ‘어용단체’까지 (열린우리당이) 동원해 가지고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또 본회의장이 2시에 열리는데 전 의원들하고 무슨 보좌진들이 국회 계단 앞에까지 나와서 정치 쇼를 하고..."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의 ‘어용단체 발언’에 장영달 원내대표는 즉각 “김형오 원내대표께서 (열린우리당이) ‘어용단체를 한나라당에 보냈다’, 이 부분은 사과를 하셔야 할 것 같다”며 “우리들은 어느 단체가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해당 단체는 대단히 분개할 것 같다”고 경고했다.
김 원내대표는 그러나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지 않았다.
주택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주장하며 한나라당을 비판한 시민단체들을 '어용단체'로 규정한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아내모는 盧대통령을 '부동산 5적 1호'로 규정한 단체
김 원내대표가 이 날 ‘어용단체’로 규정한 문제의 단체는 ‘아파트값 거품내리기 모임’(아내모) 등 34개 시민사회단체.
아내모를 비롯한 참여연대, 주거복지연대 등 34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지난 달 26일,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주택법 개정안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각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2월 임시국회에서 주택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은 이날 “엄중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대다수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일부 건설족의 이익만을 노골적으로 보호하려는 ‘반 민생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주택법을 하루 속히 개정해 부동산 시장 안정의 단초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김남근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도 “한나라당은 지난 연말 반값아파트 공급을 꺼내들어 집값 안정을 약속하더니 이후 법안처리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며 “국민 90%가 지지하는 원가공개를 반대하고 건설업자들만을 대변하며 국민들을 속이는 이유가 뭐냐”고 질타했다.
한나라당은 평소 참여연대 등을 부드러운 표현으로는 '친노단체', 그러나 내심으론 '어용단체'로 규정해왔다. 김 원내대표가 무심결에 "어용단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런 한나라당내 분위기를 반영한 것에 다름아니다.
문제는 그러나 이날 집회참석단체들 중 상당수는 '반노단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노무현정권의 대표실정인 아파트값 폭등이 지난 4년 진행됐을 때 다수 시민사회단체들은 침묵,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이날 집회에 참석했던 참여연대만 해도 정권초기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대신, 정부의 아파트 연동제를 주장했었다. 그러나 '아내모' 등 일부 단체들은 달랐다. 이들은 그동안 일관되게 노무현 정권의 아파트값 폭등을 질타해왔고, 아내모는 지난해 수차례 가두집회를 벌일 때 노대통령을 '부동산 5적' 중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 결과 아내모 등은 아파트값 폭등 저지운동에 관한 한 시민단체중 대표성을 갖고 있으며, 참여연대 등은 뒤늦게 이에 동참한 모양새다.
때문에 김 원내대표의 '어용단체' 발언은 팩트 자체가 잘못된 결정적 실언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정권탈환을 적극 지지하는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만 시민단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나머지는 모두 적으로 치부하고, 김 원내대표가 무심결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듯 '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평소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중도세력으로까지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 실언은 한나라당이 여전히 시민단체들을 '정권 탈환의 도구'로만 여기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한나라당은 아직 바뀌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