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의 '와인 파티' 비사와 줄기찬 '대연정'
<뷰스 칼럼> 盧는 왜 '대연정' '외부선장론' '정치협상'을 주장했나
노무현 대통령이 26일 한나라당에 '여야정 정치협상'을 제안했다가 27일 곧바로 퇴짜 맞았다. 청와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재고해 달라"며, 한나라당 일각에서 정치협상 걸림돌로 지적한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즉각 철회했다. 한나라당에 대한 러브콜 성격이 강하다.
국민 반응은 냉담하다. 한나라당에 대한 노대통령의 러브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의 '대연정 제안'에 이어, 이달초의 '거국내각 수용' 발언, 그리고 이번이 벌써 세번째다. 줄기찼다. 노대통령이 정치놀음에 치중하다 보니 부동산대란 등 민생이 망가진 게 아니냐는 게 국민의 차가운 눈길이다.
한나라당으로부터 계속 퇴짜를 맞으면서도 지난 1년반 동안 집요하게 러브콜을 보내는 노 대통령의 속내는 무엇인가.
4월총선후 '와인파티'에서의 박근혜 격찬, 그리고 '대연정'
10.25 재보선 참패 직후 일이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우리는 국민의 완전버림을 받았다"며, 지지층 이탈의 결정적 계기로 지난해 6월 노 대통령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대연정' 제안을 꼽았다. "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별다른 정책 차이가 없다"는 정체성 부정발언과 함께. 대다수 열린당 의원들도 임 의원과 비슷한 진단을 한다. 도대체 노대통령이 왜 뜬금없이 그런 제무덤 파는 생각을 했는지, 도통 미스테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당시 상황에 밝은 한 정부소식통이 알려지지 않은 비사를 전해줬다.
2000년 4월 총선에서 탄핵역풍의 도움으로 과반수 이상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고 노대통령이 대통령직으로 복귀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일이다. 노대통령 주재로 모처럼 이른바 '와인 파티'가 열렸다. '와인 파티'란 노 대통령이 386 측근 등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측근들과 간헐적으로 와인을 곁들여 저녁을 함께 하며 자신의 시국관 등을 밝히는 비공식 모임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권력내에선 누가 와인파티에 초청받는가를 '실세' 여부를 판단하는 한 잣대로 여기고 있기도 하다.
대통령직 복귀후 소집된 모임인 만큼 분위기가 대단히 좋았다 한다. 4월 총선에서도 대승을 거뒀으니 더욱 그러했다. 한 참석자가 노대통령에게 그동안의 심려를 위로하며, 간신히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총선결과를 대단히 안타까와 하는 발언을 했다.
"박근혜 대표가 읍소하며 전국을 휘젓고 다니지만 않았어도 2백석은 충분히 가능했는데 안타깝다. 박 대표 눈물 때문에 50석은 날라갔다."
은근히 박 대표를 비하하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노 대통령 반응이 의외였다. 상당히 정색을 하고 노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잘못된 평가다. 한나라당이 예상밖으로 선전한 것은 박 대표 눈물 때문이 아니라, 박 대표 역량 때문이다. 박 대표는 탄핵 역풍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때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했다. 한나라당 모두가 갈피를 못잡고 허둥지둥할 때 박대표는 중심을 잡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지도력을 발휘, 몰락 직전의 한나라당을 구해냈다. 박 대표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건지...
내가 아는 박 대표의 또다른 장점은 성실하다는 것이다. 내가 같이 의정생활을 해봐서 안다. 박 대표를 결코 폄하해선 안된다. 내가 평가하는 차기대권주자 가운데 1위는 단연 박 대표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전혀 예기치 못한 노대통령의 '속내' 표출이었기 때문이다. 한 참석자가 조심스레 "그러면 박 대표 다음으로 평가하는 대권주자는 누구냐"고 물었다. 노대통령 답은 "2위는 정동영, 3위는 이명박"이었다.
"정동영은 대단히 상황 판단을 잘하고 영리하다. 순발력도 좋다. 여권에선 단연 정동영이 최고다. 3위는 이명박 서울시장이다. 기업을 하던 사람이 정계로 들어와 성공한 전례가 드물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장은 다르다. 잘 적응하고 있다. 한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기 PR(홍보)을 어떻게 할 지 아직 잘 모른다는 점이다."
의미심장한 대권주자평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흐든 뒤인 2005년 6월 노대통령 입에서 누구도 예기치 못한 '대연정' 제안이 나왔다. "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부동산 등 정책에 별다른 차이도 없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한나라당, 아니 보다 구체적으론 박근혜 대표에 대한 노골적 러브콜이었다. 모두가 멍해하고 지지자들은 배신감을 느낄 때 '와인 파티' 참석자들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 대통령은 박 대표 측에도 이같은 자신의 '진정성'을 전달했다. 박 대표는 그러나 요지부동이었다. 2005년 9월5일 청와대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노 대통령은 열심히 대연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동시에 "이 제안을 안 받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박 대표는 그러나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이것이 '대연정'이 나온 막전막후다.
'와인 파티'와 '외부선장론', 그리고 이명박
지난해말 또 '와인파티'가 열렸다. 한 참석자가 박 대표의 대연정 거부를 비판하며 노대통령에게 은근히 '대권주자 평'을 부탁했다. 종전 생각에 변화가 없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박 대표에 대한 노 대통령 평가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1위였다. 그러나 2위가 바뀌었다. 정동영이 후보군에서 탈락했다. 그 자리를 이명박 시장이 치고 올라왔다.
노 대통령이 밝힌 정동영 탈락 이유는 그해 9월19일 베이징 6자회담 직후 행보 때문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어렵게 9.19 베이징 공동선언문을 도출해냈다. 대단히 힘든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의 역할도 컸다. 앞서 6월에 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긍정적 답변을 얻어내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후가 문제였다. 정동영 장관은 9.19 공동성명 도출과정에 자신의 '공'을 강조했다. 이를 차기대권 경쟁의 결정적 교두보로 삼으려는 속내가 분명했다. 노 대통령은 직간접적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정 장관은 나름의 행보를 계속했다. 노 대통령은 분노했고, 이날 와인 파티 석상에서 "지도자 감이 못된다"는 이유로 정동영을 공식 탈락시켰다.
그 자리를 이명박 시장이 대신했다. 노 대통령 표현을 빌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비이락인가. 그후 얼마 뒤인 지난 8월 노 대통령 입에서 '외부선장론'이 나왔다. 김근태 당 의장 등 열린우리당 수뇌부를 불러모은 자리에서였다. 김근태, 정동영, 천정배 등 당내 대권주자들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당연히 세간에선 박원순, 고건, 이명박 등 여러 명의 후보들 이름이 거명됐다. 그러나 '와인 파티' 참석자들은 이명박을 주목했고, 그후 정가에는 이명박을 둘러싸고 여러 풍문이 나돌았다.
盧 "18대 총선에 나도 출마나 해 볼까"
이같은 일련의 '와인 파티' 비사는 노대통령이 이미 오래 전 '정권 재창출'에 뜻을 접은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27일 마침내 폭발한 '김근태-노무현 전쟁', 본질적으론 '당-청 전쟁'의 본질과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노 대통령은 김근태 의장의 최근 네차례 면담 요청을 매몰차게 외면했다. 그 대신 여야정 정치회담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실상의 열린우리당 묵살이고, 한나라당을 향한 '제2 대연정' 제안이다. 앞서 이달초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하자, 즉각 '한나라당 등이 국정운영에 협조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 아래 이를 전폭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한나라당을 당혹케 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의 반노-비노 진영은 지난해부터 노 대통령이 보여온 일관된 대(對)한나라 러브콜의 근원을 노 대통령의 '정체성 부재'에서 찾고 있다. 노 대통령은 언론 문제 등 정치사안에선 한나라당과 극한적 대립각을 세운다. 그러나 부동산문제나 한미FTA 등 민생-경제 현안에선 한나라당과 코드를 같이 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의 정치경제학적 코드, 즉 계급적 코드는 한나라당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한나라 짝사랑'이 퇴임후를 대비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아직 젊다. 정년 퇴직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김두관 전 최고위원은 얼마 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18대 총선에 나도 출마나 해볼까'라고 말해 모두가 웃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정가 일각에 나도는 노 대통령의 퇴임후 국회의원 출마설은 '대통령의 농'이라는 해명이나, 열린우리당의 비노-반노 진영의 반응은 다르다. 언중유골, 퇴임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청와대의 핵심 386들이 18대 총선 출마 지역구를 고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노대통령은 '열린우리당 간판'을 내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마침내 전쟁이 시작됐다. 언젠가는 치러야 할 전쟁이었다. 그 끝이 어떻게 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대통령이 당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반대 경우도 가능하다. 그러나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국민이 차갑게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속 보이는 '정파적 목적'에서 전쟁을 치룬다는 냄새를 풍기는 쪽은 어느 진영이든 궤멸할 것이다. 진정성이 없는 전쟁이란 침몰선 위에서 벌이는 추한 이전투구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국민 반응은 냉담하다. 한나라당에 대한 노대통령의 러브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의 '대연정 제안'에 이어, 이달초의 '거국내각 수용' 발언, 그리고 이번이 벌써 세번째다. 줄기찼다. 노대통령이 정치놀음에 치중하다 보니 부동산대란 등 민생이 망가진 게 아니냐는 게 국민의 차가운 눈길이다.
한나라당으로부터 계속 퇴짜를 맞으면서도 지난 1년반 동안 집요하게 러브콜을 보내는 노 대통령의 속내는 무엇인가.
4월총선후 '와인파티'에서의 박근혜 격찬, 그리고 '대연정'
10.25 재보선 참패 직후 일이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우리는 국민의 완전버림을 받았다"며, 지지층 이탈의 결정적 계기로 지난해 6월 노 대통령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대연정' 제안을 꼽았다. "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별다른 정책 차이가 없다"는 정체성 부정발언과 함께. 대다수 열린당 의원들도 임 의원과 비슷한 진단을 한다. 도대체 노대통령이 왜 뜬금없이 그런 제무덤 파는 생각을 했는지, 도통 미스테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당시 상황에 밝은 한 정부소식통이 알려지지 않은 비사를 전해줬다.
2000년 4월 총선에서 탄핵역풍의 도움으로 과반수 이상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고 노대통령이 대통령직으로 복귀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일이다. 노대통령 주재로 모처럼 이른바 '와인 파티'가 열렸다. '와인 파티'란 노 대통령이 386 측근 등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측근들과 간헐적으로 와인을 곁들여 저녁을 함께 하며 자신의 시국관 등을 밝히는 비공식 모임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권력내에선 누가 와인파티에 초청받는가를 '실세' 여부를 판단하는 한 잣대로 여기고 있기도 하다.
대통령직 복귀후 소집된 모임인 만큼 분위기가 대단히 좋았다 한다. 4월 총선에서도 대승을 거뒀으니 더욱 그러했다. 한 참석자가 노대통령에게 그동안의 심려를 위로하며, 간신히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총선결과를 대단히 안타까와 하는 발언을 했다.
"박근혜 대표가 읍소하며 전국을 휘젓고 다니지만 않았어도 2백석은 충분히 가능했는데 안타깝다. 박 대표 눈물 때문에 50석은 날라갔다."
은근히 박 대표를 비하하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노 대통령 반응이 의외였다. 상당히 정색을 하고 노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잘못된 평가다. 한나라당이 예상밖으로 선전한 것은 박 대표 눈물 때문이 아니라, 박 대표 역량 때문이다. 박 대표는 탄핵 역풍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때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했다. 한나라당 모두가 갈피를 못잡고 허둥지둥할 때 박대표는 중심을 잡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지도력을 발휘, 몰락 직전의 한나라당을 구해냈다. 박 대표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건지...
내가 아는 박 대표의 또다른 장점은 성실하다는 것이다. 내가 같이 의정생활을 해봐서 안다. 박 대표를 결코 폄하해선 안된다. 내가 평가하는 차기대권주자 가운데 1위는 단연 박 대표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전혀 예기치 못한 노대통령의 '속내' 표출이었기 때문이다. 한 참석자가 조심스레 "그러면 박 대표 다음으로 평가하는 대권주자는 누구냐"고 물었다. 노대통령 답은 "2위는 정동영, 3위는 이명박"이었다.
"정동영은 대단히 상황 판단을 잘하고 영리하다. 순발력도 좋다. 여권에선 단연 정동영이 최고다. 3위는 이명박 서울시장이다. 기업을 하던 사람이 정계로 들어와 성공한 전례가 드물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장은 다르다. 잘 적응하고 있다. 한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기 PR(홍보)을 어떻게 할 지 아직 잘 모른다는 점이다."
의미심장한 대권주자평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흐든 뒤인 2005년 6월 노대통령 입에서 누구도 예기치 못한 '대연정' 제안이 나왔다. "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부동산 등 정책에 별다른 차이도 없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한나라당, 아니 보다 구체적으론 박근혜 대표에 대한 노골적 러브콜이었다. 모두가 멍해하고 지지자들은 배신감을 느낄 때 '와인 파티' 참석자들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 대통령은 박 대표 측에도 이같은 자신의 '진정성'을 전달했다. 박 대표는 그러나 요지부동이었다. 2005년 9월5일 청와대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노 대통령은 열심히 대연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동시에 "이 제안을 안 받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박 대표는 그러나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이것이 '대연정'이 나온 막전막후다.
'와인 파티'와 '외부선장론', 그리고 이명박
지난해말 또 '와인파티'가 열렸다. 한 참석자가 박 대표의 대연정 거부를 비판하며 노대통령에게 은근히 '대권주자 평'을 부탁했다. 종전 생각에 변화가 없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박 대표에 대한 노 대통령 평가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1위였다. 그러나 2위가 바뀌었다. 정동영이 후보군에서 탈락했다. 그 자리를 이명박 시장이 치고 올라왔다.
노 대통령이 밝힌 정동영 탈락 이유는 그해 9월19일 베이징 6자회담 직후 행보 때문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어렵게 9.19 베이징 공동선언문을 도출해냈다. 대단히 힘든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의 역할도 컸다. 앞서 6월에 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긍정적 답변을 얻어내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후가 문제였다. 정동영 장관은 9.19 공동성명 도출과정에 자신의 '공'을 강조했다. 이를 차기대권 경쟁의 결정적 교두보로 삼으려는 속내가 분명했다. 노 대통령은 직간접적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정 장관은 나름의 행보를 계속했다. 노 대통령은 분노했고, 이날 와인 파티 석상에서 "지도자 감이 못된다"는 이유로 정동영을 공식 탈락시켰다.
그 자리를 이명박 시장이 대신했다. 노 대통령 표현을 빌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비이락인가. 그후 얼마 뒤인 지난 8월 노 대통령 입에서 '외부선장론'이 나왔다. 김근태 당 의장 등 열린우리당 수뇌부를 불러모은 자리에서였다. 김근태, 정동영, 천정배 등 당내 대권주자들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당연히 세간에선 박원순, 고건, 이명박 등 여러 명의 후보들 이름이 거명됐다. 그러나 '와인 파티' 참석자들은 이명박을 주목했고, 그후 정가에는 이명박을 둘러싸고 여러 풍문이 나돌았다.
盧 "18대 총선에 나도 출마나 해 볼까"
이같은 일련의 '와인 파티' 비사는 노대통령이 이미 오래 전 '정권 재창출'에 뜻을 접은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27일 마침내 폭발한 '김근태-노무현 전쟁', 본질적으론 '당-청 전쟁'의 본질과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노 대통령은 김근태 의장의 최근 네차례 면담 요청을 매몰차게 외면했다. 그 대신 여야정 정치회담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실상의 열린우리당 묵살이고, 한나라당을 향한 '제2 대연정' 제안이다. 앞서 이달초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하자, 즉각 '한나라당 등이 국정운영에 협조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 아래 이를 전폭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한나라당을 당혹케 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의 반노-비노 진영은 지난해부터 노 대통령이 보여온 일관된 대(對)한나라 러브콜의 근원을 노 대통령의 '정체성 부재'에서 찾고 있다. 노 대통령은 언론 문제 등 정치사안에선 한나라당과 극한적 대립각을 세운다. 그러나 부동산문제나 한미FTA 등 민생-경제 현안에선 한나라당과 코드를 같이 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의 정치경제학적 코드, 즉 계급적 코드는 한나라당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한나라 짝사랑'이 퇴임후를 대비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아직 젊다. 정년 퇴직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김두관 전 최고위원은 얼마 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18대 총선에 나도 출마나 해볼까'라고 말해 모두가 웃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정가 일각에 나도는 노 대통령의 퇴임후 국회의원 출마설은 '대통령의 농'이라는 해명이나, 열린우리당의 비노-반노 진영의 반응은 다르다. 언중유골, 퇴임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청와대의 핵심 386들이 18대 총선 출마 지역구를 고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노대통령은 '열린우리당 간판'을 내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마침내 전쟁이 시작됐다. 언젠가는 치러야 할 전쟁이었다. 그 끝이 어떻게 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대통령이 당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반대 경우도 가능하다. 그러나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국민이 차갑게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속 보이는 '정파적 목적'에서 전쟁을 치룬다는 냄새를 풍기는 쪽은 어느 진영이든 궤멸할 것이다. 진정성이 없는 전쟁이란 침몰선 위에서 벌이는 추한 이전투구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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