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내가 아는 가장 유능한 관료, 김진표"
[盧정권의 부동산 망국사] <2> 잘못 끼운 첫 단추
노 대통령의 잘못 끼운 첫 단추, ‘김종인에서 김진표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당연히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향후 주택공급 및 입주 물량, 차기 정부의 주택 안정의지 등을 감안할 때 내년 이후 집값은 5% 안팎에서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의 반응은 더욱 예민했다. 노 후보 당선직후 강남권과 과천지역의 집값이 급락 조짐을 보였다. 노 후보 당선에 따라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정부 청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과천 지역의 경우 아파트 값이 대선 이후 수천만원 하락했고, 강남권에도 노 당선자가 향후 강력한 부동산 안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건축 아파트 매물이 쌓이고 가격도 내림세를 보였다.
아파트 거품 소멸 분위기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후 초대 경제부총리로 ‘김종인 기용’을 적극 검토하면서 더욱 뚜렷해질 조짐을 보였다. 김종인 전 경제수석은 앞서도 소개했듯 1990년 재벌들이 보유하고 있던 4천5백만평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매토록 해, 그후 10년간 부동산 투기의 싹을 잘랐던 인물. 그가 참여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가 되면 부동산경기 부양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을 게 명약관화했다.
애초에 노무현 당선자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경제부총리로 영입하고자 했으나 정 총장이 이를 고사하며 대신 거시-미시 경제 모두에 통달한 김종인 전 수석을 강력 천거함으로써 노 당선자는 김 전수석과 두 차례 직접 만나 장시간 얘기를 나눈 뒤 사실상 기용을 결심한 상태였다. 노 후보는 당시 “김 전수석이 가르치려 하는 스타일”이라며 탐탁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정운찬 총장 등 많은 경제전문가들의 적극 추천으로 그의 기용을 최종적으로 결심했다. 네티즌 등 일반국민 여론도 ‘김종인 기용’ 움직임에 강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재계는 달랐다. 1987년 노태우 후보 당선직후 김종인씨의 경제부총리 기용을 저지했던 재계 등 건설족이 가만 손을 놓고 있을 리 만무했다. 이때부터 재계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경제일간신문을 비롯해 기존 언론 일각에서 ‘김종인 불가론(不可論)’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재계 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있는 현재 상황에서 재계가 기피하는 김종인 같은 ‘강성인사’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때 맞춰 노무현 당선자 캠프의 실세들 일각에서도 ‘김종인 불가론’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군사통치시절의 구여권인사를 참여정부에 기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집권후 경기회복에 주력해야 하는데 재계와 불편한 김종인은 적임자가 아니다”라는 식의 반론이 그것이었다. 일부 측근인사들은 노무현 당선자에게 직접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는 후문도 흘러나왔다.
본디 인사라는 게 내정이 됐다고 하더라도 막판에 말이 많아지면 뒤틀리는 법이다. 결국 사실상 내정 상태였던 김종인 전 수석이 막판에 재정경제부 출신의 김진표 당시 국무조정실장으로 전격 교체됐다.
김진표 실장은 재경부에서 잔뼈가 굵은 세제통. 동시에 김종인 전 수석과는 대조적으로 ‘재계 친화적 인물’로 알려진 인물이었고, 경복고 동기인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을 비롯한 구여권 인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 실장은 노무현 당선자가 공개석상에서 “내가 아는 두 명의 가장 유능한 관료 중 한명”으로 꼽힐 정도로 노 당선자의 신임이 절대적이었다. 노 당선자가 이렇듯 김진표 실장을 절대 신뢰하게 된 데에는 대통령선거기간 동안 김 실장이 던진 ‘승부수’ 때문으로 알려진다. 김 실장은 대선기간중 장관급인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일찌감치 노무현 후보에게 자신의 관운을 맡기는 승부수를 던졌고, 대선기간 동안 음양으로 적잖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대통령선거 전날 정몽준의 급작스런 ‘노무현지지 철회’ 선언으로 노무현 후보조차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낙담하고 있던 투표일 당일, 노 후보에게 불리한 낮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후 들어 ‘젊은층의 투표율 급증, 노년층의 낮은 투표율’을 근거로 이날 투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노무현 당선’을 가장 먼저 확신해 노 캠프에 이를 알림으로써 절대적 신뢰를 확보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으나 버스는 이미 떠나간 뒤였다.
김진표 메시지, “걱정마라, 부동산 규제는 없다”
‘김종인에서 김진표로의 대반전’은 바짝 긴장하고 있던 재계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었다. “우려와는 달리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결코 반(反)재벌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판단이 재계에 확산됐다. 실제로 취임직후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펼친 일련의 정책은 재계의 판단에 어긋나지 않았다.
조세통을 자처하는 김 부총리가 던진 취임 일성은 기업의 ‘법인세 인하’였다.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인세 인하는 대선기간중 노무현 후보가 강력반대해온 ‘이회창 공약’ 중 하나였고, 김진표 부총리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대했던 사안이었다. 당시 노 후보는 이회창 후보의 법인세 인하 공약에 대해 “법인세를 2%포인트 인하할 경우 1조5천억원의 세수가 줄어드는데 그중 1조2천억원의 감면혜택은 대기업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3천억원만 소기업이 혜택을 받게 될 뿐”이라고 반대했었다.
김진표 부총리의 법인세 인하 방침은 당초 노대통령의 승인을 얻었으나 “공약 위반”이라는 비난여론이 일자 장기과제로 보류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법인세 파동이 던진 경제적 파장은 컸다. 부동산 시장에 김진표 경제팀이 추진할 재벌친화적 경제정책의 방향을 읽히면서 그후 사상최악의 아파트값 폭등 사태가 재연되는 데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는 대부분 경제관료가 그러하듯 ‘성장론자’다. 일단 경제 파이부터 키워야 분배문제 등도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이다. 문제는 이들 성장론자의 경제 파이 키우는 방식이 경제에 독약인 부동산거품 양산 등도 개의치 않는다는 데 있다. “약간의 거품은 오히려 경제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게 이들 성장론자의 주장이었다.
김 부총리는 실제로 부총리에 취임하자마자 박승 한국은행 총재와 손잡고 경제심리 회생을 명분으로 금리 인하를 추진하는 등 아파트 경기부양을 노골적으로 추진했다. 김진표 경제팀의 금리 인하 추진은 참여정부 출범후 공약과는 정반대로 아파트값이 재폭등하는 데 따른 민심 이반에 놀란 여당인 민주당의 반대로 백지화했으나, 이런 일련의 과정이 건설족에게 던진 분명한 메시지는 “참여정부에게는 폭등하는 아파트값을 잡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김진표 경제팀은 금리 인하 같은 우회적 부동산경기 부양책 차원을 넘어서 골프장 경기부양책 등 직접적 부동산경기 부양책도 동시에 추진했다. 김 부총리 취임직후 재정경제부는 하반기부터 현재 임야면적의 3%로 제한돼 있는 골프장 허가면적을 5%로 상향조정, 당시 완공돼 영업중이거나 공사중인 전국 1백30여개의 골프장외에 골프수요가 큰 수도권에서만 최소한 40여개의 골프장 신축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재경부가 내세운 골프규제 완화 근거는 18홀짜리 골프장 하나를 새로 만들 경우 발생하는 8백억~1천억원의 신규건설투자와 50억~90억원의 세수확대였다. 40개의 골프장이 신설된다 할 때 3조2천억~4조원의 신규투자 효과와 연간 2천억~3천6백억원의 세수증대가 기대된다는 주장이었다.
재경부는 이밖에 스키장에 대해서도 전체부지가 슬로프 면적의 2백배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폐지, 스키장 건설 및 확장을 대폭 허용키로 했다. 골프장, 스키장 등 이른바 수요가 공급을 앞서고 있는 '레저산업의 투자촉진'을 통해 경기부양을 도모하겠다는 계산이었다.
김진표 경제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용섭 당시 국세청장이 부패 척결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접대비 상한제’ 도입과 관련, “다른 접대비는 몰라도 최소한 골프접대비만은 예외로 해야 한다“는 등의 브레이크를 거는 등,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분명히 했다.
무엇보다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부동산 경기부양 의지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은 당시 아파트값 폭등의 견인차였던 타워팰리스 등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한 노골적 ‘감싸기’였다. 재경부는 노무현 후보 당선직후인 2003년 연초까자만 해도 경제운용방안을 발표하면서 “강남 부동산 급등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해 분양권 전매 제한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취임하자 재경부는 곧바로 "분양권 전매제한 조치 등 강력한 투기억제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말로는 “아파트 투기를 잡겠다”면서도 정작 아파트값 폭등의 진원지인 주상복합아파트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는 식이었다.
김진표 경제팀이 부동산 시장에 던진 메시지를 한 마디로 “걱정마라. 내 사전에 부동산 규제란 없다”였다.
불붙은 아파트값 재폭등, 국민들 “김진표 갈아치워라”
시장의 후각은 더없이 동물적이다. 김진표 경제팀이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곧바로 아파트값 폭등으로 나타났다.
김진표 경제팀 등장후 급등세로 반전된 아파트값은 노무현정부 출범 두달 뒤인 2003년 4월 서울시내 아파트의 평당 평균가격이 1천만원을 돌파하면서 수직상승을 거듭했다.
아파트 전문포탈 <부동산 114>의 정례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내 아파트 평당가격은 4월11일 1천만4천원으로 마침내 1천만원을 돌파했다. 이는 아파트값 폭등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2000년말 평당가격이 6백68만원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불과 2년여 사이에 아파트값이 얼마나 급등했는가를 실감해 했다.
아파트값 폭등을 주도한 곳은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인방’으로, 특히 이들의 평당가는 강남구(1천7백82만원), 서초구(1천5백76만원), 송파구(1천4백78만원) 순으로 조사돼 평당 분양가 2천만원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예고했다.
당시 더욱 주목해야 했던 대목은 아파트투기가 일부 상류층 차원을 벗어나 ‘대중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증거가 뚜렷이 목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4월29일 도곡동 주공 1차 아파트가 서울 강남 대치동에 모델하우스를 오픈했다. 오픈이래 마감일인 6일까지 1주일새 모여든 인파는 3만여명. 지하철 3호선 도곡역에서 도보 5분거리에 있는 등 여러 호조건 때문이기도 하나 이곳에 하루 평균 4천명씩 3만여 인파가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뤘다는 사실은 아파트 투기가 범국민적 차원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신호였다.
특히 이곳의 분양가는 26평형이 평당 1천6백만원, 33평형이 1천8백만원, 43평형이 1천8백10만원으로 다른 강남지역보다 훨씬 높았음에도 모델하우스는 북새통을 이뤄, 평당 2천만원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섰음을 보여줬다. 전해말 평당 3천만원을 돌파한 파워팰리스의 후폭풍이 일반 신규아파트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행의 한 간부는 필자에게 "강남 아파트 평당가격이 2천만원에 육박하고 있다는 얘기는 강남에 사는 우리나라 상류층에 들어가기 위한 '스페셜 피(special fee)'가 평당 2천만원이 됐다는 의미"라며 "이렇게 크게 벌어진 계층간 간극을 앞으로 무슨 수로 메울 수 있을지 암담할뿐"이라고 우려했으나, 한은에게 금리인상 등 근원적 대책을 내놓을 배짱은 없었다.
공인중개사 이태용씨 같은 경우는 “사람들의 묘한 특성이 로또복권에 당첨되거나 주식으로 떼돈을 벌었을 때는 주위에 떠벌리지 않으나 아파트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주위에 숨김없이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 주부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다른 주부들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하면서 너도나도 투기에 동참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부동산투기의 가공스런 전염력을 전하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아파트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아파트값을 잡겠다고 국세청을 동원한 세무조사 계획이나, 재건축 허가 엄격화 등의 상투적 대책을 내놓았으나 시장의 반응은 “당신네 속내를 뻔히 아는데 왜 이러시냐”는 식이었다. 당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 시장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부여권이 득표전략 차원에서 강도 높은 아파트값 억제책을 쓰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며 "역대 선거 때마다 반복됐던 현상인 만큼 최소한 시장에서는 내년 총선 때까지는 아파트값이 계속해 오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정치논리’를 경제를 운영하던 역대 정권이나 참여정부가 다를 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취임직후 노골적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펴면서 아파트값 폭등을 재연시킨 김진표 경제팀에 대한 비판여론이 급등한 것은 당연했다.
한 예로 <문화일보>가 노무현 정부 출범 90일을 맞아 2003년 5월 경제계, 학계, 시민단체, 경제연구소, 국회 해당 상임위 입법보좌진, 해당 부처 출입기자 등 전문가 6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20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현재의 업무평점 및 미래 업무기대치 모두에서 최하위 바로 위인 19위를 차지했고, 건설정책인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의 최종찬 장관은 그 다음인 18위를 차지해 김진표 경제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앞으로 일을 잘 할 것 같냐’는 미래 업무기대치가 이처럼 낮다는 것은 앞으로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얘기로, 즉각 경질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취임 1백일을 맞아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세간의 비판여론에 대해 인사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김 부총리에 대한 ‘절대 신임’으로 맞대응했다. 노 대통령은 “한번 쓴 각료는 최소한 2년간 같이 가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 39~47쪽)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당연히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향후 주택공급 및 입주 물량, 차기 정부의 주택 안정의지 등을 감안할 때 내년 이후 집값은 5% 안팎에서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의 반응은 더욱 예민했다. 노 후보 당선직후 강남권과 과천지역의 집값이 급락 조짐을 보였다. 노 후보 당선에 따라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정부 청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과천 지역의 경우 아파트 값이 대선 이후 수천만원 하락했고, 강남권에도 노 당선자가 향후 강력한 부동산 안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건축 아파트 매물이 쌓이고 가격도 내림세를 보였다.
아파트 거품 소멸 분위기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후 초대 경제부총리로 ‘김종인 기용’을 적극 검토하면서 더욱 뚜렷해질 조짐을 보였다. 김종인 전 경제수석은 앞서도 소개했듯 1990년 재벌들이 보유하고 있던 4천5백만평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매토록 해, 그후 10년간 부동산 투기의 싹을 잘랐던 인물. 그가 참여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가 되면 부동산경기 부양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을 게 명약관화했다.
애초에 노무현 당선자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경제부총리로 영입하고자 했으나 정 총장이 이를 고사하며 대신 거시-미시 경제 모두에 통달한 김종인 전 수석을 강력 천거함으로써 노 당선자는 김 전수석과 두 차례 직접 만나 장시간 얘기를 나눈 뒤 사실상 기용을 결심한 상태였다. 노 후보는 당시 “김 전수석이 가르치려 하는 스타일”이라며 탐탁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정운찬 총장 등 많은 경제전문가들의 적극 추천으로 그의 기용을 최종적으로 결심했다. 네티즌 등 일반국민 여론도 ‘김종인 기용’ 움직임에 강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재계는 달랐다. 1987년 노태우 후보 당선직후 김종인씨의 경제부총리 기용을 저지했던 재계 등 건설족이 가만 손을 놓고 있을 리 만무했다. 이때부터 재계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경제일간신문을 비롯해 기존 언론 일각에서 ‘김종인 불가론(不可論)’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재계 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있는 현재 상황에서 재계가 기피하는 김종인 같은 ‘강성인사’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때 맞춰 노무현 당선자 캠프의 실세들 일각에서도 ‘김종인 불가론’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군사통치시절의 구여권인사를 참여정부에 기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집권후 경기회복에 주력해야 하는데 재계와 불편한 김종인은 적임자가 아니다”라는 식의 반론이 그것이었다. 일부 측근인사들은 노무현 당선자에게 직접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는 후문도 흘러나왔다.
본디 인사라는 게 내정이 됐다고 하더라도 막판에 말이 많아지면 뒤틀리는 법이다. 결국 사실상 내정 상태였던 김종인 전 수석이 막판에 재정경제부 출신의 김진표 당시 국무조정실장으로 전격 교체됐다.
김진표 실장은 재경부에서 잔뼈가 굵은 세제통. 동시에 김종인 전 수석과는 대조적으로 ‘재계 친화적 인물’로 알려진 인물이었고, 경복고 동기인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을 비롯한 구여권 인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 실장은 노무현 당선자가 공개석상에서 “내가 아는 두 명의 가장 유능한 관료 중 한명”으로 꼽힐 정도로 노 당선자의 신임이 절대적이었다. 노 당선자가 이렇듯 김진표 실장을 절대 신뢰하게 된 데에는 대통령선거기간 동안 김 실장이 던진 ‘승부수’ 때문으로 알려진다. 김 실장은 대선기간중 장관급인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일찌감치 노무현 후보에게 자신의 관운을 맡기는 승부수를 던졌고, 대선기간 동안 음양으로 적잖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대통령선거 전날 정몽준의 급작스런 ‘노무현지지 철회’ 선언으로 노무현 후보조차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낙담하고 있던 투표일 당일, 노 후보에게 불리한 낮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후 들어 ‘젊은층의 투표율 급증, 노년층의 낮은 투표율’을 근거로 이날 투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노무현 당선’을 가장 먼저 확신해 노 캠프에 이를 알림으로써 절대적 신뢰를 확보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으나 버스는 이미 떠나간 뒤였다.
김진표 메시지, “걱정마라, 부동산 규제는 없다”
‘김종인에서 김진표로의 대반전’은 바짝 긴장하고 있던 재계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었다. “우려와는 달리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결코 반(反)재벌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판단이 재계에 확산됐다. 실제로 취임직후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펼친 일련의 정책은 재계의 판단에 어긋나지 않았다.
조세통을 자처하는 김 부총리가 던진 취임 일성은 기업의 ‘법인세 인하’였다.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인세 인하는 대선기간중 노무현 후보가 강력반대해온 ‘이회창 공약’ 중 하나였고, 김진표 부총리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대했던 사안이었다. 당시 노 후보는 이회창 후보의 법인세 인하 공약에 대해 “법인세를 2%포인트 인하할 경우 1조5천억원의 세수가 줄어드는데 그중 1조2천억원의 감면혜택은 대기업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3천억원만 소기업이 혜택을 받게 될 뿐”이라고 반대했었다.
김진표 부총리의 법인세 인하 방침은 당초 노대통령의 승인을 얻었으나 “공약 위반”이라는 비난여론이 일자 장기과제로 보류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법인세 파동이 던진 경제적 파장은 컸다. 부동산 시장에 김진표 경제팀이 추진할 재벌친화적 경제정책의 방향을 읽히면서 그후 사상최악의 아파트값 폭등 사태가 재연되는 데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는 대부분 경제관료가 그러하듯 ‘성장론자’다. 일단 경제 파이부터 키워야 분배문제 등도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이다. 문제는 이들 성장론자의 경제 파이 키우는 방식이 경제에 독약인 부동산거품 양산 등도 개의치 않는다는 데 있다. “약간의 거품은 오히려 경제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게 이들 성장론자의 주장이었다.
김 부총리는 실제로 부총리에 취임하자마자 박승 한국은행 총재와 손잡고 경제심리 회생을 명분으로 금리 인하를 추진하는 등 아파트 경기부양을 노골적으로 추진했다. 김진표 경제팀의 금리 인하 추진은 참여정부 출범후 공약과는 정반대로 아파트값이 재폭등하는 데 따른 민심 이반에 놀란 여당인 민주당의 반대로 백지화했으나, 이런 일련의 과정이 건설족에게 던진 분명한 메시지는 “참여정부에게는 폭등하는 아파트값을 잡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김진표 경제팀은 금리 인하 같은 우회적 부동산경기 부양책 차원을 넘어서 골프장 경기부양책 등 직접적 부동산경기 부양책도 동시에 추진했다. 김 부총리 취임직후 재정경제부는 하반기부터 현재 임야면적의 3%로 제한돼 있는 골프장 허가면적을 5%로 상향조정, 당시 완공돼 영업중이거나 공사중인 전국 1백30여개의 골프장외에 골프수요가 큰 수도권에서만 최소한 40여개의 골프장 신축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재경부가 내세운 골프규제 완화 근거는 18홀짜리 골프장 하나를 새로 만들 경우 발생하는 8백억~1천억원의 신규건설투자와 50억~90억원의 세수확대였다. 40개의 골프장이 신설된다 할 때 3조2천억~4조원의 신규투자 효과와 연간 2천억~3천6백억원의 세수증대가 기대된다는 주장이었다.
재경부는 이밖에 스키장에 대해서도 전체부지가 슬로프 면적의 2백배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폐지, 스키장 건설 및 확장을 대폭 허용키로 했다. 골프장, 스키장 등 이른바 수요가 공급을 앞서고 있는 '레저산업의 투자촉진'을 통해 경기부양을 도모하겠다는 계산이었다.
김진표 경제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용섭 당시 국세청장이 부패 척결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접대비 상한제’ 도입과 관련, “다른 접대비는 몰라도 최소한 골프접대비만은 예외로 해야 한다“는 등의 브레이크를 거는 등,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분명히 했다.
무엇보다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부동산 경기부양 의지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은 당시 아파트값 폭등의 견인차였던 타워팰리스 등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한 노골적 ‘감싸기’였다. 재경부는 노무현 후보 당선직후인 2003년 연초까자만 해도 경제운용방안을 발표하면서 “강남 부동산 급등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해 분양권 전매 제한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취임하자 재경부는 곧바로 "분양권 전매제한 조치 등 강력한 투기억제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말로는 “아파트 투기를 잡겠다”면서도 정작 아파트값 폭등의 진원지인 주상복합아파트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는 식이었다.
김진표 경제팀이 부동산 시장에 던진 메시지를 한 마디로 “걱정마라. 내 사전에 부동산 규제란 없다”였다.
불붙은 아파트값 재폭등, 국민들 “김진표 갈아치워라”
시장의 후각은 더없이 동물적이다. 김진표 경제팀이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곧바로 아파트값 폭등으로 나타났다.
김진표 경제팀 등장후 급등세로 반전된 아파트값은 노무현정부 출범 두달 뒤인 2003년 4월 서울시내 아파트의 평당 평균가격이 1천만원을 돌파하면서 수직상승을 거듭했다.
아파트 전문포탈 <부동산 114>의 정례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내 아파트 평당가격은 4월11일 1천만4천원으로 마침내 1천만원을 돌파했다. 이는 아파트값 폭등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2000년말 평당가격이 6백68만원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불과 2년여 사이에 아파트값이 얼마나 급등했는가를 실감해 했다.
아파트값 폭등을 주도한 곳은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인방’으로, 특히 이들의 평당가는 강남구(1천7백82만원), 서초구(1천5백76만원), 송파구(1천4백78만원) 순으로 조사돼 평당 분양가 2천만원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예고했다.
당시 더욱 주목해야 했던 대목은 아파트투기가 일부 상류층 차원을 벗어나 ‘대중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증거가 뚜렷이 목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4월29일 도곡동 주공 1차 아파트가 서울 강남 대치동에 모델하우스를 오픈했다. 오픈이래 마감일인 6일까지 1주일새 모여든 인파는 3만여명. 지하철 3호선 도곡역에서 도보 5분거리에 있는 등 여러 호조건 때문이기도 하나 이곳에 하루 평균 4천명씩 3만여 인파가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뤘다는 사실은 아파트 투기가 범국민적 차원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신호였다.
특히 이곳의 분양가는 26평형이 평당 1천6백만원, 33평형이 1천8백만원, 43평형이 1천8백10만원으로 다른 강남지역보다 훨씬 높았음에도 모델하우스는 북새통을 이뤄, 평당 2천만원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섰음을 보여줬다. 전해말 평당 3천만원을 돌파한 파워팰리스의 후폭풍이 일반 신규아파트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행의 한 간부는 필자에게 "강남 아파트 평당가격이 2천만원에 육박하고 있다는 얘기는 강남에 사는 우리나라 상류층에 들어가기 위한 '스페셜 피(special fee)'가 평당 2천만원이 됐다는 의미"라며 "이렇게 크게 벌어진 계층간 간극을 앞으로 무슨 수로 메울 수 있을지 암담할뿐"이라고 우려했으나, 한은에게 금리인상 등 근원적 대책을 내놓을 배짱은 없었다.
공인중개사 이태용씨 같은 경우는 “사람들의 묘한 특성이 로또복권에 당첨되거나 주식으로 떼돈을 벌었을 때는 주위에 떠벌리지 않으나 아파트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주위에 숨김없이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 주부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다른 주부들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하면서 너도나도 투기에 동참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부동산투기의 가공스런 전염력을 전하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아파트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아파트값을 잡겠다고 국세청을 동원한 세무조사 계획이나, 재건축 허가 엄격화 등의 상투적 대책을 내놓았으나 시장의 반응은 “당신네 속내를 뻔히 아는데 왜 이러시냐”는 식이었다. 당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 시장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부여권이 득표전략 차원에서 강도 높은 아파트값 억제책을 쓰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며 "역대 선거 때마다 반복됐던 현상인 만큼 최소한 시장에서는 내년 총선 때까지는 아파트값이 계속해 오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정치논리’를 경제를 운영하던 역대 정권이나 참여정부가 다를 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취임직후 노골적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펴면서 아파트값 폭등을 재연시킨 김진표 경제팀에 대한 비판여론이 급등한 것은 당연했다.
한 예로 <문화일보>가 노무현 정부 출범 90일을 맞아 2003년 5월 경제계, 학계, 시민단체, 경제연구소, 국회 해당 상임위 입법보좌진, 해당 부처 출입기자 등 전문가 6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20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현재의 업무평점 및 미래 업무기대치 모두에서 최하위 바로 위인 19위를 차지했고, 건설정책인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의 최종찬 장관은 그 다음인 18위를 차지해 김진표 경제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앞으로 일을 잘 할 것 같냐’는 미래 업무기대치가 이처럼 낮다는 것은 앞으로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얘기로, 즉각 경질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취임 1백일을 맞아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세간의 비판여론에 대해 인사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김 부총리에 대한 ‘절대 신임’으로 맞대응했다. 노 대통령은 “한번 쓴 각료는 최소한 2년간 같이 가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 39~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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