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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 국내기업 60곳, 적대적 M&A에 노출

[분석] 재계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 긴장

지난주말 KT&G는 국내기관투자가들의 도움으로 경영권 방어에 어렵게 성공했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얼마나 많은 대기업들이 인수합병(M&A)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가가 재차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숫자가 6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우리나라가 지금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M&A 돌풍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포스코 등 우량기업에 대한 적대적 M&A 움직임

KT&G는 일단 어렵게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주말 주총회에서 아이칸측의 사외이사 1명이 경영진에 선출됨에 따라 KT&G 경영진은 앞으로 본격적인 경영권 간섭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과연 이번 사태는 KT&G만의 문제일까.

아이칸의 적대적 M&A 공세에 홍역을 치루고 있는 KT&G의 담배제조창. ⓒ연합뉴스


증권전문가들은 현재 국제적 규모의 헤지펀드들이 SK(주)와 KT&G에서의 성공 사례를 통해 포스코 등 다른 우량기업들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현대산업개발, 대림산업 등에 대해서도 외국투기자본들이 주식을 대거 매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해당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실제 2000년 완전 민영화를 이룬 포스코는 특정 ‘재벌’ 의 소유가 아니고 외국인 지분이 70%에 달하기 때문에 적은 지분을 소유한 주주의 변화 시도조차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맹점을 안고 있다. 이와 함께 높은 수익력을 지닌 우량회사라는 점에서 오래 전부터 외국인투기자본이 눈독을 들여왔다.

월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의 경우 지난 6일 “포스코가 칼 아이칸의 경영권 위협을 받고있는 KT&G와 유사점이 많아 또다른 적대적 M&A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 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렇듯 최근 외국투기자본이 한국기업들에 부쩍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지난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이 자회사 크레스트를 통해 SK(주)의 주식을 매입했다가 2년만에 매각한 뒤 1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올리는 등 한국시장에 투자해 재미를 본 사례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칼 아이칸의 적대적 M&A 시도가 있은 뒤 KT&G 주가가 2배 가까이 뛰어올라 아이칸은 M&A를 포기하더라도 이미 엄청난 시세차익을 올린 셈이다.

적대적 기업사냥꾼 속속 상륙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주가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상장회사는 전체 상장사의 11%에 달하는 1백9개사에 달한다. 또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외국인은 27개국, 2백67명으로, 현재 상장법인 4백50개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외국인투자가 모두 적대적 M&A세력은 아니다. 상당수는 장기간 투자를 선호하나, 최근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적대적 M&A를 겨냥한 단기성 투기자금들이 속속 상륙하는 분위기다.

KT&G사태에서 칼 아이칸과 보조를 맞추며 연일 공세를 펴고 있는 스틸파트너스는 그동안 일본에서 수 차례 공개매수를 공언하며 막대한 시세차익과 배당을 올려 국제적인 금융시장 교란자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사냥균이 출현하면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하는 등 외국인주주들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기에 이들의 활동을 방관 또는 지지하는 경향성이 짙어지고 있다.

단기성 투기자금과 장기 투자자금 사이에는 점점 경계선이 옅어지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막강한 영향력 발휘하는 투기자본들

일본 프랑스 등 주식문화가 발달한 외국들은 자국의 우량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고 최근에는 각종 법적규제 등을 갈수록 강화하는 추세다.

반면 한국은 기업 투명성을 강화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강제적 권고에 따라 각종 규제를 풀었고 이후 외국투기자본들은 한국시장을 노리고 속속 진출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97년말 외환위기를 겪은 뒤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라 미국식 기업지배구조를 도입, 적대적 M&A에 대한 규제를 대부분 해제했다.

문제는 이런 이유로 인해 해외투기자본들이 적대적 M&A나 투기적 목적으로 시세차익을 올리기 위해 M&A하겠다고 위협하는 수법으로 국내시장을 장악하는 데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스스로 무장해제한 탓에 쓸 수 있는 경영권 방어제도가 거의 없는 데다 최근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 퇴임하는 이사에게 거액의 퇴직금 및 잔여 임기 동안의 보수 등을 지급해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적대적 M&A 방어기법)제도, 초다수결의제(Supermajority voting), 이사시차임기제 등 일부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투기자본들의 적대적 M&A 시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미국에서도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못한 칼 아이칸과 스틸파트너스 등 전문적인 국제기업사냥꾼들이 힘을 합쳐 적대적 M&A 공세를 펼 경우 사실상 경영권을 빼앗기거나 막대한 시세차익만을 안겨주는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주총철 맞아 '황금낙하산' 등 방어수단 마련 급급

지난 2월말부터 시작된 주총철을 맞아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조항의 도입에 나서고 있다.

유사반도체 제조업체인 우석반도체는 지난 10일 주주총회에서 황금낙하산제도를 도입했다. 우석반도체는 정관 변경을 통해 ‘이사가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권 위협세력에 의해 해임되거나 적대적 M&A로 인해 해임되는 경우 퇴직금과는 별도로 20억 원의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방송 및 무선통신기기 제조업체인 케이비테크놀로지도 오는 23일 주총에서 적대적 M&A에 대비한 방어 조항을 신설할 계획이다. 회사측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 인의 지분율이 16.59%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 적대적 M&A로 이사가 해임 또는 퇴임할 경우 대표이사에겐 30억 원 이상, 이사에게는 20억 원 이상의 퇴직 위로금을 주도록 할 방침이다.

지난 2월말 주총을 연 케이아이씨는 이사와 감사의 해임 요건을 대폭 강화한 ‘초다수결의제’ 를 채택했다.

케이아이씨는 이사와 감사의 해임 안의 의결조항을 현행 의결권 보유주식수의 3분의 2와 발행한 주식 수의 3분의 1에서 각각 4분의 3과 과반이 찬성해야 의결이 되도록 정관상 해임요건을 강화했다. 또 동일한 사업연도에 정당한 사유 없이 해임할 수 있는 이사의 수는 직전 사업연도말 재적이사의 4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

현재 대한항공, 한진해운, 삼아알미늄, 오뚜기, 남성, 중외제약, 한국콜마, 한독약품, 한라공조 등이 초다수결의제를 시행하고 있다.

경영권 방어수단 주는 대신 기업은 체질개선 나서야

전문가들은 외국 투기자본이 최근 보이고 있는 적대적 M&A가 국내 기업과 국가 성장 잠재력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장경제의 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기업에 대해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나 제도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영익 대신경제연구소 상무는 “최우수 지배 구조 기업으로 선정됐던 KT&G가 7%도 채 되지 않는 지분을 가진 아이칸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는 등 주식시장이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KT&G처럼 취약한 지배구조를 노린 투기자본의 위협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고 자본시장의 과실을 이들 외국인 투자자본이 아닌 투기자본이 모두 따먹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만 하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지배구조 분산에 주력한 결과 외국의 초단기 투기자본들이 국내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선진국 대다수가 국가 기간산업 등에 대해서는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율적이면서도 건전한 자본시장을 육성하는데 힘을 쏟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도 이달초 ‘해외 투기자본 유입 증가에 따른 적대적 M&A 위협 및 대응방향’이라는 자료를 내고 “국제 투기자본에 의한 M&A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고 선진국들은 다양한 경영권 방어제도를 두는데도 불구하고 M&A가 활발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다양한 방어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의무공개매수제도, 차등의결권 주식, 독약증권(Poisoin Pill: M&A시도가 있을 경우 신주 또는 자사주를 매우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옵션을 기존 주주에게 배당, M&A시도자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제도), 소량주식 보유자 정보제공 요청권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를 계기로 국내 기업들이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방만한 기업경영 행태를 그대로 둔 채 경영권 방어책만을 강화할 경우 M&A 자체가 봉쇄되고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등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어 규제 강화 또는 신설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맹기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센터 부원장은 “미국에서도 1980년대 칼 아이칸 등 M&A세력의 등장으로 인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90년대 호황의 밑바탕이 됐다는 점에서 적대적 M&A에 대한 경영권 보호제도만을 강조하기보다는 기관투자가의 투자비중 확대 등 다양하고 합리적인 투자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부원장은 “외국인의 M&A에 대해 정서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국내외 투자자들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장기적으로 자본시장의 기능을 극대화시켜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홍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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