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금리 올려도 집값 오르는 경우 많다고?
[기고]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집값 폭등의 원흉은 초저금리
기준금리 동결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이주열 한은총재는 “금리를 인상해도 집값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니 이 무슨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지난 3년간의 집값 폭등은 일명 “갭 투자”와 “빚내서 집사기” 열풍의 결과다. “갭 투자”란 1%대의 은행금리에 만족하지 못한 예금주들이 부동산 투자로 전환한 결과이고, “대출받아 집사기” 역시 금리부담이 거의 없는 수준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통화정책 수장의 입에서 이처럼 무책임한 발언이 나오자 대다수 국민은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나아가 이런 사람을 연임시킨 청와대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주열 총재의 발언은 짐작컨대 2000년대 중반 미국 서브프라임 투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 모르겠다. 당시 미연방준비원원회는 기준금리를 무려 17번이나 연속해서 인상했다. 금리인상이 상당 기간 지속될 때까지도 집값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금리를 4.25%p나 인상하자 마침내 서브프라임 투기의 거품이 꺼졌고, 집값은 하락했다. 집값이 하락할 때까지 금리를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낳은 결실이었다. 우리 금융통화위원들의 면면을 볼 때 이 정도 의지를 기대하는 것은 썩은 나무에서 새순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빚내서 집사라” 정책의 일등공신인 금통위
금통위가 열리기 전날 이주열총재가 “금리결정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발언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정부와 여당 일부에서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에 대한 응답일 것이다. 얼마 전 이낙연총리가 “금리인상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여기저기서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던 것과 궤를 같이 하는 발언이다.
“한은 독립성”이란 말을 듣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양승태 대법원’이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법부의 독립성이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져야 할 성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 성역에서 박근혜 시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모든 국민의 눈앞에서 낱낱이 밝혀지는 중이다. 대법원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이익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당시 집권세력의 그것과 일치했기에 사법농단에 자발적으로 가담했을 것이다. 그런 판사들을 국민은 “부역자”란 이름으로 불렀다. 이정미 정의당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농단에 가담한 판사들을 “탄핵”하자고 국회와 국민에게 호소했다.
금리를 결정하는 7명의 금융통화위원의 면면을 보면 그런 주장에 공감이 간다. 한은부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중 5명이 박근혜 시절 임명되었다. 그들은 박근혜정부가 저지른 경제분야 과오 중 가장 문제가 심각한 “빚내서 집사라” 정책에 적극 부응했다.
금통위는 박근혜정부에서만 금리를 6번 인하하여 기준금리를 1.25%까지 낮췄다. 금리가 사상최저에 장기간 머물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자 투기꾼과 실수요자들이 거침없이 대출 받아 주택투자에 가세했고, 집값은 폭등했다. 마치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에서 일어난 서브프라임 투기를 보는 듯했다. 집값이 폭등하자 문재인 정부 출범후 2017년 11월 단 한번 금리를 0.25%포인트 올렸으나, 1.5%의 기준금리는 여전히 투기에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러므로 “빚내서 집사라” 정책에 책임을 묻는다면, 그 비난의 화살은 가장 먼저 금통위를 겨냥하는 것이 마땅하다.
경기부양을 위해 양극화 심화를 선택한 금통위
초저금리는 한국경제에 수많은 문제를 떠안겼다. 한국경제의 최대 위험요소인 가계부채의 급증을 초래했고, 부동산 폭등으로 우리 사회 최악의 문제인 부의 불평등을 더 악화시켰다. 불로소득인 임대소득과 시세차익을 추구하는 곳으로 자본이 몰리면서 경제의 효율성은 저하되었고, 노동자들은 일할 의욕을 상실했다. 한마디로 국가경제야 망가지든 말든 오로지 부동산만 부양하면 된다는 극도로 비정상적 정책의 일등공신이 금통위원들이었다.
물론 그들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물가는 낮은 수준이고, 경기는 침체되었다”가 그들이 두고두고 써먹는 초저금리의 명분이다. 한국은행은 금통위의 금리동결에 때맞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7%로 낮췄다. 얼마 전에는 KDI의 김현욱 경제전망실장이 물가와 금융상황을 보면 금리를 인상할 때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금통위에 힘을 실어줬다. 금리결정에서 고려할 요소는 오직 물가와 경기밖에 없다는 경직된 논리로 자산가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주류학자와 연구원들이 얼마나 견고한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실감한다. 다수 전문가들이 “시한폭탄”이라고 경고하는 가계부채 문제나 우리 사회의 가장 치명적 질병인 양극화는 가볍게 무시된다.
이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해보자. 한국경제에서 경기부양과 양극화 해소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인가? 전문가는 물론 국민 열 중 아홉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양극화 해소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집값 폭등이 부의 양극화를 극도로 악화시켰다는 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경기부양을 핑계로 금리인상을 미루는 것은 소수 자산가의 이익을 위해 국가적으로 시급한 과제를 희생하는 어리석고도 계급편향적 행위다.
저금리는 물론 이보다 더한 양적완화를 실행해도 경기회복에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 IMF 등 국제기관과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내린 결론이다. 풀린 돈은 생산이나 소비로 흐르지 않고 자산가격만 부풀린다는 것이 한결같은 결론이다. 만약 저금리가 경기를 살리는 데 효과가 있다면, 지난 3년 8개월간 1%대 금리를 유지하였으니 경기가 살아나도 오래 전에 살아났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경기침체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한국경제 저성장의 원인이 금리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이 만든 수요부족이기 때문이다.
‘저금리가 경기를 부양한다’는 죽은 이론
‘저금리가 경기를 부양한다’는 논리가 한국경제의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허구임을 밝히는 데는 복잡한 이론이 필요치 않다. 한국은행 홈페이지에서 ‘통화정책 효과의 파급’를 클릭하면 소위 ‘금리의 경제효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금리를 인하하면 기업투자의 증가, 가계소비의 증가 그리고 소위 ‘부의 효과(Wealth Effect)’라는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 경기가 부양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현금이 넘치는 데도 투자를 하지 않는 현실에서 금리를 더 낮춘다고 투자를 늘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가계가 저축은 바닥이고 대출은 과다한 상태에서 금리를 낮춘다고 대출을 더 받아서 소비를 늘릴까? 초등학생도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그러므로 ‘통화정책 효과의 파급’ 중 앞의 두 가지 경로는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한다고 해도 그 효과는 미약하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증가한다는 ‘부의 효과’뿐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대부분의 가계가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을 때나 그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가계의 절반 이상이 무주택자인 우리 현실에서는 주택가격이 급등하면 다주택자의 소비 증가 효과보다 전월세 부담 급증으로 무주택자들의 소비 감소 효과가 더 클 것이므로 부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금리는 생산과 소비라는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부동산 등 자산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다. 지난 3년간 집값 폭등을 야기한 것은 투기열풍이었는데, 거기에 연료를 공급한 것은 사상최저 수준의 금리였다. 그러므로 집값 폭등으로 잠 못 이루는 무주택 서민들의 운명이 금통위원의 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올릴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통화정책 효과’가 우리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죽은 이론인데도 말이다.
금통위원과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지켜져야 할 원칙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원칙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가 국민 전체, 특히 경제적 약자인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금통위가 서민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소수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류학자들 위주로 구성된 상태에서 “독립성”을 고집한다면, 국민의 눈에는 '양승태 대법원'의 데자뷰로 비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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