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盧가 '개헌 국민투표'에 앞서 해야할 일들

<기고> '개혁으로서의 개헌'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임기말 승부수를 던졌다. 예상대로 '개헌' 문제다.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총선 시기를 일치시키는 '원포인트 개헌'이 골자다. 전두환 군부와 싸워 쟁취한 '1987년 5년 단임제'의 시대적 역할이 끝났으니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4년 연임제가 꼭 대통령 레임덕을 막고 '소신 통치'를 가능케 하는 제도는 아니다. 대통령 임기가 4년으로 줄어들면 대통령이 집권 2년째부터 다음 선거를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대선-총선 시기를 꼭 일치시켜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미국도 대선-총선시기를 2년 단위로 어긋나게 하고 있다. 총선은 또다른 의미에서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순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더 큰 문제는 지금 정치권과 상당수 여론이 노대통령 제안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정치권에선 노대통령 제안을 최대한으론 '정권 재창출', 최소한으론 '퇴임후 안전장치 마련'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과연 노대통령의 개헌 제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정치권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대통령이 결행해야 할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대표의 긴급기고를 통해 생각해본다.<편집자주>


개혁으로서의 개헌

지난 2000년 12월 국내 한 주간지의 전문가그룹 여론조사에 따르면, 헌법학자들이나 행정학자들, 그리고 정치학자들의 91%가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답했었다. 이들 중 46%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32%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 전문가들은 13%에 불과했다.

한국사회는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계기로 이미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로 진입했다. 그러나 정작 민주주의의 작동규칙이어야 할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20년 전 민주화 초기단계에 권위주의의 유산과 민주화의 결실을 혼합하여 빚어낸 ‘과도기적 대통령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규칙과 게임의 괴리’, 이것이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을 기대할 수 없게 하는 한국정치의 현주소이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현행 대통령제에서 권위주의적 요소들을 탈각시키고 온전한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개헌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개헌주체인 정치권에서는 “혹시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 아니냐”는 여론과 특히 그러한 여론을 조장하는 일부 反개헌론자들을 의식해 간헐적인 목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대선경쟁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개헌 마지노선은 연내까지이다. 지금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개헌이 공론화되어야 한다.

1. 한국 개헌사와 ‘개헌 콤플렉스’

1948년 헌법제정 이후 1987년 제9차 개헌에 이르기까지 우리 헌법은 평균 4.5년에 한번 꼴로 개정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개헌의 빈도만이 아니라, 4.19혁명 직후의 제3차, 제4차 개헌과 6월 항쟁 직후의 제9차 개헌을 제외하고는 그간의 모든 개헌이 집권자의 입맛에 따라 부당한 절차를 통해 조작되었다는데 있다.

제헌헌법은 대통령제를 주장한 이승만 계열과 의원내각제를 주장한 한민당 계열의 정치적 타협에 의해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기형적 대통령제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 와중의 실정으로 국회에서 재선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두 차례나 제출하였으나 모두 부결되고 말았다. 이에 권위주의 집권세력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일부 야당의원을 구속하는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킨 가운데 공고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개헌을 단행했는데, 이것이 소위 ‘발췌개헌’으로 불리는 1952년 제1차 개헌이었다.

1954년 제2차 개헌(‘4사5입 개헌’) 역시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연장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집권세력은 대통령 중임을 1차로 제한한 규정을 초대대통령에 한해 철폐할 것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상정하였으나, 의결정족수 135.333석에 0.333석이 미달하는 135표를 얻어 부결되었다. 그러자 이틀 후 집권세력은 “국민주권을 산술로 농락하는” 해괴한 ‘4사5입론’을 적용, 의결정족수를 135표로 수정하여 개헌을 선포하였다.

1962년 제5차 개헌(‘국민투표 개헌’)은 대통령의 3선을 금지하는 규정을 담고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민투표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아니라 5.16 쿠데타로 탄생한 초헌법기관인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발의, 공포되었다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정당성을 상실한 개헌이었다. 나아가 박정희대통령은 1969년 3선 개헌 금지조항을 철폐할 것을 골자로 하는 제6차 개헌(‘3선 개헌’)을 단행함으로써 스스로 마련한 제5차 개헌의 합리적 요소마저 제거하고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결사적인 반대에 봉착한 여당은 야당이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일요일 새벽 2시경에 매수된 야당의원들의 동의로 국회별관에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한국 헌정사상 최악의 개헌은 역시 1972년 제7차 개헌(‘유신개헌’)이었다. 박정희대통령은 스스로 헌법을 정지시키고 국회를 해산하는 한편, 국무회의에서 자신이 제안한 개헌안을 통과시킨 후 국민투표로 확정함으로써 사실상 정권교체가 불가능한 유신헌법을 등장시켰다. 유신헌법의 골자는 대통령직선제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선제로 바꾸고,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1/3을 추천하며, 사법부 인사권까지 장악하는 ‘절대대통령제’였다.

1980년 제8차 개헌(‘단임제개헌’) 역시 유신개헌에 못지않은 비민주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국민의 대통령직선제 요구를 무시하고 7년 단임의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마련, 국민투표로 확정지었다. 국회는 이미 해산되어 있었으며, 개헌안은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자의적 기구에 의해 발의되었다는 점에서 그 불법성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통과된 제5차 개헌이나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유신개헌에 못지않았다.

이러한 수십 년에 걸친 헌법 개악사(改惡史)는 우리 국민들에게 일종의 ‘개헌 콤플렉스’를 형성시켰다. 87년 이후 20년이상의 민주화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콤플렉스는 아직 근원적으로 치유되지 않고 있으며, “개헌은 곧 정치적 음모”라는 거의 조건반사적인 반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은 수호의 대상일 뿐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며, 부당한 개헌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라 정당한 개헌요구를 통해 자신들의 주권을 능동적으로 확장시키는 것 또한 주권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물론 헌법은 민주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에 잦은 개헌은 국가의 민주적 정통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그러나 헌법은 영원한 진리의 체계가 아니라 국민주권의 시대적 표현이며, 항상 시대변화에 따라 진화해 나가야 하는 개방적 규범체계일 따름이다. 여기에 개혁으로서의 개헌의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9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담화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2.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제도개혁

헌팅턴은 70년대 중반이후 전 세계를 휩쓴 ‘제3의 민주화물결’(the third wave of democracy)을 ‘위로부터의 민주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그리고 ‘타협에 의한 민주화’로 유형화한 바 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과정은 바로 이 ‘타협에 의한 민주화’의 전형이었다.

한국 시민사회는 6월 항쟁을 통해 자신의 거대한 힘을 폭발시키면서 민주화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힘은 권위주의정치세력의 청산을 동반하는 정치사회의 빅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민주화의 결실을 제도화하는 개헌과정(87년 제9차 개헌)은 시민사회와 개혁적 정치세력 간의 민주주의연대가 아니라 권위주의정치세력을 포함한 여야 제도정치권의 타협에 의해 주도되었다.

물론 권위주의가 오랫동안 뿌리내렸던 곳에서 민주주의가 평화적으로 착근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민주주의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 간의 타협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타협에 의한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권위주의의 흔적을 남긴다.” 제9차 개헌의 산물인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한국 대통령제를 온전한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의 유산과 민주화의 결실이 혼합된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의 과도기적 대통령제로 한계지어 버렸던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는 네 차례에 걸친 평화적 정권교체와 특히 97년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함으로써, 10여년에 걸친 ‘민주주의로의 이행’(transition to the democracy)을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민주주의의 공고화’(consolidation of democracy) 단계로 진입했다. 한국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이상 ‘권위주의로의 역전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안정적 작동을 보장할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마련하는 것이다. 요컨대 제도개혁은 정치인교체와 더불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국정치의 양대 개혁과제이다.

한국정치가 대면하고 있는 제도개혁의 과제는 정당민주화와 의회중심정치의 착근, 선거제도의 선진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권력구조의 민주화로 압축된다.

첫째, 정당민주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상의하달 일변도의 의사결정구조가 다원화되어 ‘아래로부터 위로’(bottom-up), 그리고 좌우 수평적 의사소통구조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의회중심정치를 위해서는 또한 국회의장의 중립성과 권한을 강화하여 여야간의 당리당략적 대립이 의회운영과정에 투영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행 국회의원 선거법은 엄격한 사전선거운동 규정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의정활동 명목으로 사전선거운동을 벌일 수 있는 현역의원과 그렇지 못한 초선의원간의 격차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는 개혁적 초선의원들의 의회진출을 가로막아 우리 정치판을 보수화하는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규정의 대폭적인 완화가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제도개혁의 본령은 현 대통령제의 권위주의적 요소들을 탈각시키고 온전한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권력구조의 민주화에 있으며, 이는 개헌을 필요로 한다. 현행 5년 단임제는 87년 제9차 개헌 당시 집권 민정당의 6년 단임제안과 통일민주당의 4년 중임 제안 간의 절충이었으며, 대선을 앞두고 ‘1노 3김’ 모두가 집권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낙선할 경우 재도전이 수월하도록 만든 즉흥적 흥정의 산물이었다.

3. ‘대통령제 민주주의’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개헌

전 세계적으로 ‘대통령제 민주주의’(presidential democracy)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21개국 정도이며, 그나마 온전한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나라는 아마도 미국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대통령제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단점에 대한 논의들은 주로 대통령의 민주적 책임성과 국정운영의 안정성 문제로 귀결된다. 첫째 민주적 책임성의 문제는 무엇보다 ‘과반수미만 대통령’이라는 현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원래 대통령제는 행정부의 수반이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간접선거로 선출되는 의원내각제에 비해 민주적 책임성이 높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7년 이후 우리나라의 대선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후보자가 3명 이상인 경우 50%미만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민주적 리더십을 결여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결선투표제는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이다. 즉 과반수 이상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에 대해 결선투표를 실시함으로써 과반수미만 대통령의 등장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결선투표는 지역주의투표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정부통령제와 같은 또 다른 제도적 보완책과 함께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민주적 책임성의 또 다른 문제는 국무총리의 위상과 관련되어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순수대통령제가 아니라 대통령제에 국무총리라는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결합시킨 혼합대통령제이다. 다만 총리인선이 국회의 동의를 거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대통령제로 분류되고 있을 따름이다. 만일 총리가 국회에서 선출된다면, 프랑스처럼 이원집정부 준대통령제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현행 국무총리제의 문제점은 바로 국민의 직접선거도 국회에서의 간접선거도 아닌 대통령의 지명에 의해 선출된다는데 있다. 즉 행정권 행사에 있어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국무총리를 대통령의 방탄조끼로 내세움으로써 ‘대통령 무책임제’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프랑스처럼 총리를 의회에서 선출하는 이원집정부 준대통령제로 가든지, 아니면 국무총리제를 없애고 여타 대통령제 나라들처럼 정부통령제로 가는 방식이다.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총리든 부통령이든 실질적인 권력을 분배받음으로써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대통령 1인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된 ‘과대권력 집중국가’이며, 이로 인해 청와대중심정치가 의회정치의 착근을 방해하고 있다. 정부통령제의 도입은 이러한 과도한 권력집중을 분산시키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국정운영의 안정성 문제는 5년 단임제의 폐해이다. 대통령제는 원래 행정부수반의 임기를 헌법으로 보장하기 때문에, 정치적 상황에 따라 내각수반이 자주 교체되는 의원내각제에 비해 국정운영의 안정성이 높은 제도이다. 그러나 현행 5년 단임제 하에서는 대통령의 조기레임덕을 피할 수 없으며, 국정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은 분열된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정치적 통합(political integration), 경제적 업적(economic performance), 그리고 남북통합(national reunion)을 동시에 달성해야할 막중한 과제를 부여받고 있으며, 이러한 과제들은 올바른 리더십에 의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추진을 요구한다. 예컨대,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경제기적은 18년 철권통치기간 동안의 일관된 경제개발정책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으며, 현재 미국의 장기호황 역시 클린턴 대통령의 8년 연임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의 민감성을 감안한다면, 정권교체에 따른 이질적 대북정책의 교차는 곧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5년 단임제는 대통령직에 부적격한 자에게는 너무 긴 기간이지만 대통령직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자에게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대통령제 신생민주주의 나라들 중에서 대통령의 중임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필리핀과 멕시코 등 대부분 권위주의로의 역전가능성이 높은 나라들이며,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이 전무한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중임을 금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단임제는 정권재창출을 희구하는 정당정치의 속성상 중립적 국정운영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고, 정치적 줄서기를 촉진시키며 단기간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는 과도한 업적주의를 부추긴다. 또한 의회와 행정부가 융합되는 의원내각제와는 달리 대통령제 하에서 의회와 행정부의 교착가능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는 하지만, 5년 주기의 대통령선거와 4년 주기의 국회의원 선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의회와 행정부의 교착가능성은 증대한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현행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

이상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현행 과도기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치유하고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개헌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그런데 현재 전문가들조차도 4년 중임제 개헌에 대해서는 모두가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정부통령제 개헌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통령제 개헌이 요구되는 이유는 앞서 지적한 민주적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 성별간 정치적 격차를 줄이고 한국의 ‘참석민주주의’를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정부통령제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투표성향을 완화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예컨대, 차기대선에서 영남출신 대통령후보와 호남출신 부통령후보 그리고 호남출신 대통령후보와 영남출신 부통령후보가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영호남간 교차투표가 발생할 가능성은 현재보다 상당히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주의가 문제로 되는 것은 지역주민간의 정서적 갈등 때문이 아니라, 지역주의 투표구도가 그대로 정당체계에 투영되어 여야간 타협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통령제 개헌은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완화시켜 한국 정당정치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계기임에 틀림없다. 미국대선에서도 같은 지역출신의 대통령후보와 부통령후보가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선거제도를 통해 지역간 갈등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둘째, 정부통령제는 계층간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기제이기도 하다. 물론 계급투표가 일반화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소득이 투표결정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사회의 계층간 갈등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거제도가 계층간 균열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계층간 갈등은 선거를 통해 제도화되는 것이 아니라 계층간의 직접적인 이해관계 충돌로 나타나게 되며, 그만큼 사회적 불안정의 요소가 증대하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개혁의 과제는 주로 군소정당의 원내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차원에서 논의되겠지만, 정부통령제 역시 이러한 계층간 갈등 해결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정부통령제는 아니지만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과 총리가 각기 우파와 좌파를 대변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이루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셋째, 정부통령제는 성별간, 세대간 정치적 격차와 정치무관심을 완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제이다. 예컨대, 5-60대 대통령후보와 3-40대 부통령후보가 러닝메이트로 나오거나 남성대통령후보와 여성부통령후보 혹은 여성대통령후보와 남성부통령후보가 러닝메이트로 나올 경우 여성층과 청년층의 정치적 관심도와 선거참여율은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60%가 2-30대 젊은 유권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여성과 청년층은 아직 자신을 대변하는 정치지도자를 가져본 경험이 없으며, 이것이 이들의 정치무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금 전 세계 정치무대에서 3-40대 청장년지도자와 여성지도자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추세이며, 21세기 우리의 민족시간은 이러한 세계의 정치시간을 따라잡아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다. 여성의 연성정치(soft politics)로 남성중심의 경성정치(hard politics)가 낳는 폐해를 시정하고 한국정치를 젊게 하지 않는 이상 21세기 한국정치의 희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통령제 도입 시 현행 40세로 되어 있는 입후보 자격연령 하한선을 38세정도로 완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민주주의나라들의 사례를 참조한다면, 연령제한을 35세정도로까지 낮춰야 하겠지만, 한국 초재선들의 현 정치연령을 감안할 경우에 38세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정부통령 입후보 자격연령이 35세로 되어 있고, 영국은 아예 수상의 입후보 자격연령기준을 두고 있지 않다. 예컨대, 영국 보수당의 윌리엄 헤이그는 36세에 당수가 되었고, 자유민주당의 찰스 케네디는 39세에 당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통령제 개헌이 이러한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성별간 격차를 완화시키는 정도는 대통령과 부통령간 권력배분의 수준에 달려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통령에게 보다 많은 권력을 할당할수록 그의 지역적, 계층적, 세대적, 성적 대표성이 증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무런 권력도 주어지지 않는 형식적인 부통령제를 도입하게 된다면, “정계개편을 위한 개헌”이라는 비판 속에서 현재의 지역주의적 투표성향과 정치무관심증이 오히려 증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 유고시 권력을 승계하는 수준의 상징적 부통령제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부통령제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의 경우 부통령은 상원의장직을 겸직하며, 특히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차기 대권후보 1순위로 인정받는다. 지난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소위 ‘리버만 효과’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미국 부통령의 실질적 권력 공유에 기반한 것이다.

4. 노대통령이 국민투표 전에 해야 할 일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주창은 많은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취지에는 공감이 간다. 특히 민주화 2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공동체의 최고 규범인 헌법 개정을 제창한 것은 여러 가지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20년 만에 찾아오는 개헌의 기회를 여야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당장 문제가 되는 쪽은 야당일 것이다.

집권의 문턱에 다가섰다고 생각한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개헌 의지를 과연 순순한 의도로 받아들일 것인지가 최대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노대통령의 임기 말 개헌 주장은 국민적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한 개인의 정략의 수준을 넘어 국가의 구조틀을 새롭게 재 개조한다는 측면에서 해석하고 이해한다면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한번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임기제를 대통령선거와 맞추는 것도 국정운영의 합리성과 효율성 그리고 비용 절감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 대한민국의 헌법 개정이 정략적 정권연장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온 역사적 점철을 또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되며 정치적 복선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노대통령이 우선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정치적 중립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아울러 거국중립내각도 구성해 여야 정치세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노 대통령이 개헌 전선을 구축, 연말 1대1 여야 대결구도를 만들고 열린우리당의 기사회생을 도모하며 아울러 자신이 공천권을 행사해 퇴임후 안전기반을 구축하려 한다는 정치권의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내세운 '중-대선거구제 도입' 같은 개헌 논의도 배제해야 한다. 이런 곁다리 주장이 삽입된다면 친노세력을 차기총선에서 재당선시켜 퇴임후 안전장치를 도모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증폭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노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더라도 지난해부터 언급해온 '조기 하야'하는 일이 없이, 헌법이 정한 임기 마지막날까지 철저히 헌정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대국민 다짐도 해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개헌을 제안하는 것은 어떤 정략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것이나 결코 어떤 정략적인 의도도 없다"고 단언했다. 노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싶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즉각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는 등, 자신의 말에 부응하는 행동부터 단행해야 할 것이다.

필자 소개

장성민 대표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던 장성민씨는 현재 평화방송 시사프로그램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를 진행하는 동시에,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한반도문제 전문가이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대표

댓글이 5 개 있습니다.

  • 18 29
    젊은 인재

    이 사람 전공이 뭐야 북핵? 헌법?
    디제이처럼 전공은 전분야?

  • 27 15
    전문가

    내공이 간단치 않쿤
    내공이 빡빡하십니다.
    오늘 알았습니다.
    말죽거리 아저씨가 아님을 확인해?씁니다.
    지켜 보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참고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 16 28
    공존

    이제 제정신 돌아 왔군
    야, 필자 제정신이네.
    노무현 반대만 하는가 했는데.
    동감이 있네여

  • 20 25
    멋진 넘

    이 사람의 지적 수준 정말 놀랍다.
    정말 대단하이
    지식 끝은 어디뇨
    장성민 정말 존경허이

  • 24 18
    21세기 프로젝트

    대체로 공감한다
    다만 개헌안 부결시 하야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어차피 개헌 투표 결과가 나올 즈음에는 노 무현 대통령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만일 이명박 전 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 중임제라면 이 전 시장이 중임에 도전할 즈음이면 이 전 시장 그 때 나이가 얼마가 되나?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