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잔여임기 1년3개월을 채우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극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이 '자진 하야'를 촉구하는 등 야권에서 본격적으로 하야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시점에 나온 발언이어서, 일파만파의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盧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안 됐으면"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전날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전격 철회한 데 대한 심경을 밝히는 과정에 이같은 심경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우선 전효숙 지명철회와 관련, "한마디 하겠다. 국회에서 표결을 거부하고 표결을 방해하는 것은 명백히 헌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다. 부당한 횡포다"라고 한나라당을 비난한 뒤, "그런데 어제 대통령이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했다. 굴복한 거다. 현실적으로 상황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대통령이 굴복했다"고 깊은 좌절감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제 대통령 인사권이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고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러면서도 "어렵더라도 해야겠지요"라고 잔여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후 발언을 통해 현재 본인이 느끼고 있는 극한적 위기감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우선 열린우리당의 총공세를 의식한 듯, "현재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2가지 뿐"이라며 "만일 당적을 포기해야 되는 상황까지 몰리면 임기 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4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급적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그 길 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해 유사시 당적 이탈 가능성을 강력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잔여임기와 관련, "임기 동안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자면 이런저런 타협과 굴복이 필요하면 해야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계속 잔여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도 "다만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말해, 잔여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盧, '심리공황'에 빠져들었나

노 대통령 발언은 대통령 스스로 '자의에 의하지 않은 하야'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일파만파의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초부터 여러 차례 '하야' 가능성을 언급해 국민들의 강한 반발을 산 전례가 있다. 취임 첫해에는 "대통령 노릇 힘들어 못해 먹겠다"는 발언을 해 "국민 노릇 해먹기는 더 힘들다"는 강한 국민적 반발을 초래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그후에도 여러 차례 같은 뉴앙스의 발언을 해 과연 대통령이 기분대로 중간에 그만 둘 수 있는 자리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국민적 의혹을 자초했고, 이는 지지율 하락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앞의 여러 발언때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일파만파의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던진 여야정 정치협상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열린우리당은 노대통령에게 "정치에서 손을 떼라"는 최후통첩을 했다.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같은 경우는 "자진 하야"를 촉구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노 대통령 지지율은 한자리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 등을 지시했으나 경제관료들은 보이콧을 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청와대 비서관들의 비리 연루 의혹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완전 고립무원이다.

이에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노 대통령이 '심리공황적 상태'에 빠져든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국정의 중심축이 밑둥째 흔들리고 있는 중차대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