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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백세주', 소주전쟁에 몰락 위기

정몽헌회장 찾아갔던 국순당, 백세주 신화에 안주하다 위기 자초

지난 2000년 세칭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이 최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일이다. 재계 일각에 "부도 위기에 몰린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국순당 오너를 찾아가 고개를 숙이고 현금 지원을 부탁했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국순당이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알짜기업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풍문이 나돌 정도로 당시 국순당 위세는 대단했다. 1992년 첫 출시한 약주 '백세주'가 폭발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백세주는 1998년 1천만병 돌파를 기록하는 경이적인 신기록을 기록하며 전통주 시장의 70% 이상을 독식했다. 특히 소주와 백세주를 타 마시는 '오십세주' 전략이 히트하면서, 순한 술을 선호하던 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정몽헌도 찾아갔던 국순당이....

이렇듯 막강한 위세를 과시하던 백세주로 유명한 국순당이 지금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30일 증시에서 국순당 주가는 또 하락해 6천2백8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5년5개월래 최저치이며, 지난 1년간 최고가 1만8천4백50원에 비해선 3분의 1 토막난 가격이다.

이렇듯 국순당 주가가 초토화된 것은 나날이 악화되는 매출액과 영업이익 때문이다. 주말 직전인 지난 27일 국순당은 3.4분기(7~9월) 매출액이 전년동기보다 27.1% 줄어든 2백47억원, 영업이익은 무려 67.6%나 급락한 18억원, 순이익 역시 62.1% 급락한 17억원을 기록했다는 잠정치를 공시했다.

국순당은 공시자료를 통해 이같은 매출액 악화 원인으로 "소주시장을 포함한 주류시장내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매출이 하락했다"고 꼽았고, 순익 감소 원인으로는 "매출원가율(45.4%) 상승과 광고선전비/판매활동비 등의 마케팅비용률(매출대비 19.0%)의 증가로 이익이 감소하였다"고 밝혔다. 국순당은 이어 2.4분기에는 영업이익이 적자였다고 3.4분기에 흑자로 전환된 것과 관련해선, "마케팅비용 감소로 인해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되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말해, 두산의 '처음처럼'과 진로의 '참이슬'이 벌이고 있는 소주시장 헤게모니를 둘러싼 '순한 소주 전쟁'의 파편을 백세주가 맞으면서 매출과 영업이익 격감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금 소주시장의 헤게모니 전쟁을 치열하다. 두산은 도수 20%짜리 순한소주 '처음처럼'을 무기로 3.4분기 서울 소주시장 점유율 20% 돌파에 성공했고, 진로는 이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두산은 연말까지 시장점유율을 30%로 끌어올린 뒤 내년에는 1위 등극마저 노린다는 야심한 공격계획을 세워놓고 있고, 이에 맞서 진로는 도수 19.8%의 순한소주 신제품 ‘참이슬 fresh’로 대반격을 가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두 소주 회사가 기업의 사활을 걸고 '순한 소주 전쟁'을 벌이자 가뜩이나 브랜드 인지도도 하락 와중에 있던 '순한 술' 시장을 독식하고 있던 백세주가 직격탄을 맞고 급속히 쇠락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위기에는 백세주 이래 14년간 새로운 빅히트주를 못내고 있는 국순당의 안이했던 경영전략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잘 나갈 때 위기를 대비하지 않고 백세주를 대신할 빅히트 신제품 개발보다 요식업 진출 확대 등의 외도를 한 경영이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국순당 주가는 백세주 출시후 10년째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며 "정치권의 권불십년(權不十年) 법칙이 경영계에도 적용된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백세주 ⓒ국순당


증권업계, 국순당의 미봉책에 차가운 반응

당연히 30일 개장한 증시에는 애널리스트의 부정적 전망이 쏟아졌다.

현대증권은 이날 국순당에 대해 "최근 소주시장의 경쟁심화와 백세주의 인지도 하락, 국순당의 미진한 신제품 효과 등으로 매출이 급감했고 앞으로도 당분간 실적부진세가 이어질 전망"이라며 "아예 국순당을 커버리지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투자 검토대상에서조차 제외한다는 사실상의 사망선고인 셈이다.

대신증권도 "'제2의 백세주'가 없는 한 성장성과 수익성의 부재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백세주가 전체 국순당 매출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백세주의 고전으로 국순당의 회생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인 것이다. 또한 국순당이 2.4분기 순이익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판매광고비를 줄인 것이 매출액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진 대목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근원적 대책 없이 미봉책으로 '숫자'만을 개선시키려는 경영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과연 위기의 국순당이 새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회심의 카드를 선보일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지난 2년간 남들이 모두 '순한 술 전쟁'에 치중하고 있을 때 고급소비자들을 상대로 한 '입소문 전략'을 구사해 도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가고 있는 '화요'가 국순당에게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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