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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원가 공개를 막아온 '공공의 적'들

경제관료들-거수기 여당-대다수 언론,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마침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약속했다. 2년3개월만의 백기항복이다. 건설교통부 등 관계부처는 서둘러 후속대책을 마련에 착수했고, 열린우리당은 "원가 공개는 원래 우리당의 총선 공약이었다"며 대환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에 극력반대하는 사설까지 쓴 <중앙일보> 등 극소수 신문을 제외하곤 대다수 언론도 대체로 환영 또는 양비론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각 집단들의 반응을 보면 노 대통령이 분양원가 공개를 막아온 '주범'처럼 보인다. 물론 "열배 남는 장사도 있는 법"이란 궤변을 펴온 국정 최고책임자인 노 대통령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연 노대통령만 책임자일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참여정권 출범이래 3년간 반의 역사를 훑어보면, 분양원가 공개를 막아온 '공공의 적'들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다.

경제관료의 덫에 걸린 노무현

아파트값 폭등은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1년말부터 시작됐다. 당연히 2002년 대선때 노무현 후보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아파트 투기를 반드시 뿌리뽑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공급부족이 아파트값 폭등의 근원이라는 건설족 주장에 대해서도 "보급률 자체는 무의미하다. 철저한 투기규제를 통해 투기 가수요를 잠재우면 체감 주택난을 해소할 수 있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서민-중산층은 노후보 말을 믿었고 그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노대통령은 그러나 취임후 정반대 행보를 시작했다. 우선 재경부 출신의 김진표를 초대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으로 뽑았다. 이유는 "내가 아는 가장 유능한 관료 두명 중 한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 부총리가 취임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박승 한국은행 총재를 통한 '금리 인하'였다. 삼성경제연구소 등 민간연구소들까지 반대한 금리인하였다. 당장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정치적 목적에 기초한 경기부양책이었다. 김 부총리는 동시에 "분양권 전매제한 조치 등 강력한 투기억제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노골적인 부동산 경기부양책이었다. 당연히 아파트값이 재차 폭등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국민들 사이에서 '김진표 경질' 요구와 함게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봇물터졌다. 각 기관 여론조사결과 80~90%가 분양원가 공개에 찬성이었다.

분양원가 공개 요구를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던 김진표 초대 경제부총리 겸 현 열린우리당 의원. ⓒ연합뉴스


이때 재경부, 건교부, 청와대의 경제관료들이 분양원가 불가를 외치며 반격에 나섰다.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분양원가 공개 요구에 대해 "젊은 네티즌을 중심으로 좀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 것 같은데, 정부 입장에서는 더 강력한 것은 사회주의적인 것밖에 되지 않는다"(2003.10.30)며 분양원가 공개 요구를 '빨갱이' 주장인양 매도했다. 김 부총리는 그후에도 "10.29 부동산대책 발표때도 분양가 규제 문제를 검토했지만, 분양원가 공개로 인해 오히려 수급이 불안정해지고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2004.2.6)고 말했다.

김진표 뒤를 이어 2004년 2월 경제부총리가 된 이헌재도 취임 기자회견에서 "주택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교역재"라며 "교역재인 상품의 원가를 공개하라는 것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헌재 뒤를 이어 경제부총리가 된 한덕수도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그 다음에 분양가가 높으니까 내리라는 압력이 제기될 게 분명한 만큼, 분양원가 공개를 할 수 없다"(2005.6.15)고 말했다.

재경부 출신의 조윤제 대통령 경제보좌관도 2003년 10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아파트값이 갑자기 떨어져도 문제"라고 말해, 분양원가 공개로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데 대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초대 건교부장관인 최종찬을 비롯한 역대 건교부장관은 아예 건설업계 대변인 역할을 자임한 만큼 굳이 그들의 발언론을 인용할 가치조차 없다. 한마디로 노대통령은 '믿었던 관료들'의 덫에 걸렸던 셈이다.

친노세력의 주도로 '거수기'로 전락한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은 탄핵 역풍의 결과 2004년 4.15총선에서 의석 절반을 넘는 152석을 차지한 거대여당이 됐다. 열린당은 총선과정에 분양원가 공개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아파트값 폭등에 대한 국민 불신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총선후 대다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아파트 원가공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총석직후인 4월28일 열린우리당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87%가 분양원가 공개에 찬성했다.

그러나 얼마 뒤 재경부-건교부 등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기류가 급변했다. 초대 재경원장이던 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6월1일 정부와의 당정협의후 "원가연동제를 도입하면 공공택지와 표준건축비가 공개되는 셈이기 때문에 분양원가 공개가 필요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공약 백지화를 선언했다.

안병엽 제3정위원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분양원가 공개의 목적은 주택가격의 안정인데 원가연동제가 도입되면 건설업계에 실익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원가연동제만 도입되도 분양가가 30%가량 인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양원가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유시민 현 보건복지부장관 겸 열린우리당 의원. ⓒ연합뉴스


그로부터 며칠 뒤인 6월9일 노무현대통령의 그 유명한 장사꾼 발언이 나왔다. 노 대통령은 이날 민주노동당 당선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한 만찬석상에서 "아파트 분양원가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고, 결국 벌고 못벌고 하는 것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며 "열린우리당은 내 생각을 모르고, 또 내가 정책에 참여하지 않으니까 원가공개를 공약했는데 다시 상의하자"며 열린우리당에게 공약 포기를 요구했다.

노 대통령 발언후 열린우리당은 당황했다. 여론의 분노가 심상치 않을 정도로 폭발하는 등 후폭풍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노대통령의 친위부대인 친노의원들이 바람잡이에 나섰다.

유시민 의원(현 보건복지부장관)은 9월15일 한 인터넷신문과 인터뷰에서 "원가공개는 개혁이고, 원가연동제는 반개혁이라는 식의 논란은 집값 안정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며 "원가에는 건축비뿐 아니라 홍보비용이나 마케팅 비용도 포함되기 때문에 파악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분양원가를 공개할 경우 원가를 얼마로 산정할 것인지, 업계가 공개한 원가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을 놓고 또다른 논란에 휘말리는 부작용이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임종석 의원도 9월13일 TV프로그램에 출연, "분양원가 공개와 원가연동제가 방향이 다르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오십보냐 칠십보"라며 "원가연동제로도 20~30% 정도 아파트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단 한명 김근태 의원이 직접 보도자료를 내며 분양원가 공개를 강력주장하며 "공공주택 분양가 문제와 같은 중요한 문제들은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고 했으나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결국 7월15 의원총회에서 열린우리당 152명의 의원들은 노대통령 거수기가 되기를 선택했다.

이날 의총때 경남도지사 출신의 김혁규 의원은 "기업하는 사람들이 원가를 공개한다는 것은 시장경제 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원가상한제를 시행하면서 부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점검해야 한다"고 원가공개에 적극 반대입장을 밝혔다.

경제학박사 출신의 채수찬 의원 역시 "자장면 가격만 알고 품질만 알면 되지, 면이 얼만지 양념이 얼마인지 안다고 자장면 가격이 낮춰지겠느냐"는 그 유명한 '자장면론'을 펴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건설업체 광고주 대변한 언론들, <한겨레>도 마찬가지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한 노대통령의 '6.9 발언'에 대다수 언론은 극찬을 보냈다. 특히 <조중동>은 한 목소리로 노대통령을 격찬했다. 이라크파병 때의 격찬에 이은 두번째 격찬이었다.

<조선일보>는 11일 '아파트 원가공개 여부, 대통령 말이 옳다'는 사설로, <중앙일보>는 '노 대통령 정책현안 정리 잘했다'는 사설로, <동아일보> 역시 '대통령도 개혁 아니라는 원가공개'라는 사설을 통해 노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다른 마이너언론들은 어떠했을까. 유감스럽게도 <경향신문>을 제외한 나머지 신문들도 메이저와 오십보백보였다.

한 예로 노대통령 발언직전 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당정협의에서 분양원가 공약을 파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겨레신문>조차 분양원가가 열린우리당 공약이었음을 알리지 않고 "원가연동제를 도입하면 공공택지에 짓는 국민주택 이하 아파트의 분양값을 10~30% 정도 낮추는 효과를 낼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고 건설족 주장을 그대로 전했다. 당시 건설광고가 신문사들의 최대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단 한곳 <경향신문>만이 "이는 열린우리당의 17대 총선 공약을 포기하는 것이어서 개혁후퇴 논란과 무주택 서민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예상된다"며 만평을 통해 총선후 분양원가 공약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희희낙락하고 잇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그렸다.

참여연대마저도...

시민단체들은 어떠했나. 참여정권 이래 집요하게 분양원가 공개 등 아파트값 폭등 문제에 집착한 단체는 경실련이었다. 그후 토지정의 등이 만들어지면서 가세했으나, 참여정권 출범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최대 시민파워집단으로 꼽히던 참여연대는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했다.

참여연대는 노대통령 6.9발언으로 난리가 난 며칠 뒤인 6월15일 <인터넷참여연대>에 띄운 '주택정책의 정책목표가 무엇인가-서민 내집마련과 주택가격 안정이 궁극'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경실련 등의 입장을 나열적으로 소개한 뒤 "각 정당과 단체의 시각은 원가공개를 통해 얻고자 하는 정책목표를 설정하는 데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 뒤 "이와 달리 참여연대는 원가공개를 아파트 가격 하락과 서민의 내집 마련이라는 공공주택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가능한 하나의 정책수단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해, 분양원가 공개란 여러 선택가능한 정책수단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참여연대는 이어 자신들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 "정부여당이 발표한 국민주택규모(25.7평) 이하 주택에 대한 원가연동제 이외에 국민주택규모 이상 주택에 대한 원가공개 내지 원가연동제 도입 전매금지 강화 등 투기근절책 마련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무주택 서민 우선분양권 확대 등 종합적인 서민주거안정대책의 마련을 합리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참여연대만이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양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앞서 천정배 당시 열린우리당 대표에게 분양원가 공개 대신 정부의 원가연동제가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서를 보내기도 했다. 김부겸 열린우리당 의원은 “참여연대가 천정배 대표에게 전달한 내용을 보면 25.7평이하 국민주택은 원가연동제가 실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게 훨씬 많다고 했다”며 “분양원가 공개가 개혁으로 비쳐지고 반대가 비개혁으로 비쳐지는 것은 옳지않다고 시민단체들도 전했다”고 참여연대의 분양원가 반대를 당론 변경의 면죄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제 집단이 분양원가 공개에 극력반대하는 동안 아파트값을 폭등을 거듭해 아파트값 1천조, 땅값 2천조가 넘는 단군이래 최악의 부동산거품이 만들어졌고, 다수 서민과 중산층은 골병들었고 국가경제는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원가연동제만 도입해도 아파트값이 30%가량 떨어진다고 주장했던 이들은 과연 지금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들의 답이 듣고 싶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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