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13년전 '롯데의 비밀프로젝트'
<뷰스칼럼> 롯데의 담배인삼공사 인수 로비와 'SSM 구상'
롯데그룹의 고위 임원이 당시 재경원을 출입하던 필자 등 몇몇 기자들을 찾아왔다. 당시 정-재계에 파다했던 롯데의 '담배인삼공사 인수설'에 대한 해명 차원에서였다.
13년전, 롯데의 담배인삼공사 인수설
롯데의 담배인삼공사 인수설은 김영삼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나웅배 부총리에게 공기업 민영화가 지지부진하다고 질책하는 과정에 구체적으로 담배인삼공사를 거론하면서 급속 확산됐다. YS 발언은 담배인삼공사를 팔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었다.
온갖 풍문이 정-재계에 나돌았다. YS가 선거때 롯데에 큰 신세를 졌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 정설이었다. 정치적 스캔들을 우려해 여권 내부에서도 반대 기류가 강했고, 나웅배 부총리도 속으로 끙끙댔다. 특히 김종필 자민련총재가 발끈했다. 담배인삼공사를 민영화하면 값싼 외국 담배잎을 대량 수입하면서 담배 농사를 많이 짓는 충청 농가가 몰락할 게 불을 보듯 훤했기 때문이다.
롯데 임원은 이처럼 부정적 여론을 긴급진화하기 위해 기자들을 찾은 것이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그룹이 담배인삼공사 인수를 하고 싶어한다"고 솔직히 털어놓으면서도 전혀 예기치 못한 '인수 동기'를 밝혔다. 그는 "담배장사에는 별 관심 없다"며 "그룹이 진짜 필요로 하는 건 담배인삼공사 땅"이라 했다.
"담배인삼공사는 해방후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만들어진 공사다. 당시에는 4대문 밖 등 외곽에 유통창고 등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담배인사공사 땅은 지금 모두 도심의 요지를 차지하는 노른자위가 됐다. 이 땅만 차지하면 전국에 순식간에 대형마트들을 쫙 깔 수 있다."
당시는 YS정부가 OECD에 가입하면서 유동시장 전면 개방을 약속한 상황이었다. 유통시장 개방전에 대형마트는 전국에 28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장이 전면개방되면서 유통업체간에 치열한 전쟁이 예고된 상황이었다. 롯데는 담배인삼공사 인수를 통해 대형마트 시장을 선점하려 했던 것이다.
"앞으로 골목까지 파고들 것, 한 2천개 깔 생각"
신명난 롯데 임원은 더 나아가 롯데의 '비밀 프로젝트'까지 공개했다.
"대형마트만 갖고는 안된다. 앞으론 미니마트도 필요하다. 한 2층짜리 슈퍼마켓을 생각하면 된다. 골목마다 파고 들 거다. 한 2천개쯤 깔 생각이다."
섬뜩했다. 전국 상권을 싹쓸이하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임원에게 듣기 싫은 쓴소리를 했다.
"너무 혼자만 살려고 하는 게 아니냐. 지금 장사하는 상인들은 다 죽으라는 소리 같다. 일본만 해도 대형마트 하나를 허가 내 줄 때도 도시에서 자동차로 한시간쯤 나간 지역에만 내주는 등 기존 영세상인들을 철저히 배려하고 있다. 그런데 대형마트를 무더기로 세우려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골목 안에까지 미니마트로 파고들려 하다니,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임원은 머쓱해 했다. 그후 롯데의 담배인삼공사 인수는 JP 등 정치권의 강한 반발과 언론의 의혹 제기 등으로 '없던 일'이 됐다. 그 와중에 담배인삼공사 매각에 미온적이던 나웅배 경제부총리도 취임후 겨우 8개월만에 옷을 벗어야 했다.
13년후, 현실화되기 시작한 비밀프로젝트
그러나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롯데 비밀프로젝트가 눈앞 현실로 나타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당시 임원이 말한 미니마트가 '기업형슈퍼마켓(SSM)'으로 이름만 바뀌었을뿐, 상황은 13년전 프로젝트 그대로다. 대형마트로 재래시장이 거의 초토화되더니, 이번엔 SSM 때문에 골목안 구멍가게들까지 몰살할 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며칠전 '서민 행보'의 시작으로 이문동 재래시장 골목을 찾았을 때, 상인들은 한 목소리로 "제발 대형마트를 막아달라"고 읍소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만나는 사람마다 대형마트, 대형마트 하는데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 식은 안 되니 같이 사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면서도 "마트를 못 들어가게 한다는 게 법률적으로 안 된다. 정부가 그렇게 시켜도 재판하면 정부가 패소한다"고 답하며, 산지와의 직거래 강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의 답을 듣는 상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침통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서민'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서민의 고통, 서민의 위기는 말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말로 서민의 편에 서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대통령이 SSM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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