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수구가 돼선 정권 탈환 못한다"
<분석> 한나라당 '8.3 쇼크'의 정치공학. '바이체커 벤치마킹'
8월3일 한나라당 당사의 풍광
지난 3일 오전 한나라당 염창동 당사 회의실.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북한이 1백년만의 대홍수로 1만명의 인명피해와 1백30~1백50만명의 이재민이 생겼다"며 "동포애적 입장에서 북한의 김정일 체제와 인민과는 구별해야 하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주도해 기초적 구호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날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좋은 벗들’의 발표 내용을 인용, 북한 수해 참사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대북 지원을 주장하고 나선 것. 그는 "북한의 미사일 사태 이후 정부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지원을 끊고 인도적 지원을 살려야 하는데 오히려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며, 식량-비료 추가지원을 중단한 정부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정 최고위원은 안기부 출신의 대표적 ‘매파’로 인식돼 왔던 만큼 그의 제안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욱 주목을 끈 것은 한나라당 대응이었다. 정 최고위원 제안에 대해 한나라당 지도부가 "수재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선뜻 합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정 최고위원의 제의에 대해 비공개로 장시간 숙고 끝에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회의후 "한나라당은 북한 정권과 주민은 분리해서 대응하고 있고 인도적 차원, 동포애적 입장에서 수재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 민간단체의 북한 지원은 적극 환영 ▲ 정부는 북한이 수재로 인해 입은 피해상황과 규모 등을 적극 확인할 것 ▲ 북한 수재민에 필요한 의약품과 생필품 지원 촉구 등의 의견을 모았다.
‘색깔론’ 이미지로 점철된 한나라당의 이 결정은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당들 가운데 가장 먼저 대북 지원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김병준 퇴진-문재인 법무장관설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전쟁 중'이었다. 그런 탓인지 대북 수해 지원 문제는 관심밖이었다. 극히 일각에서는 ‘가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괜히 대북 지원 문제를 꺼냈다가는 보수세력들로부터 맹공을 받을 것을 우려해 눈치만 보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한나라당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어퍼컷을 한방 맞고 크게 당황해 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다음날인 4일 서둘러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대북지원 사업의 재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양당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환영한다"며 "어떤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대북지원은 흔들림 없이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동참 입장을 밝혔다. ‘평화민주세력’ 대변자로 자처해온 열린당으로선 부끄러운 늦대응이었다.
임태희 소장 "수구적 모습 보이면 '중도 표' 못 끌어온다"
“한나라당이 무슨 변신? ‘즉흥적’인 게 아니겠나.”
대북 지원 파동을 지켜본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색깔론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한 일회적 대응에 불과하다는 혹평이다.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봐라. 이재오 후보를 빨갱이로 몰지 않았나. 십수년 전 변심한 운동권 출신까지 빨갱이로 모는 마당에 무슨 놈의 변신이냐. 쇼일 뿐이다.” 그의 첨언이다.
맞는 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요즘 한나라당 수뇌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입만 열면 안보보수, 반공보수 등 수구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어떻게 중도성향의 표를 끌어올 수 있나. 실제로 한나라당 지지자 중 그렇게 수구적 색채를 보이는 세력은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를 새로 책임 맡은 임태희 소장이 지난달 28일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2007년 대선 필승법’으로 “40대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가치관이 진보-보수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이슈에 따라 반응이 다르더라. 그런데 모든 이슈에 대해 반응을 많이 하는 계층이 40대다. 이 40대를 잡아야 대선에서 이기게 된다."
"40대는 문제 해결자적 지위에 있어서 그렇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조직에서도 40대는 모든 문제가 자기 자신의 문제다. 모든 문제에 대해 다 고민을 한다. 10대-20대는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라는 점을 고민하지 않는다. 40대는 이런 문제들에 다 고민한다. 자기 자식의 문제이고 자기 부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고민들에 대한 답을 제시할 때 외연확대를 확실히 할 수 있다."
그의 분석은 정확하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은 40대 중반 이하를 노무현 후보에게 빼앗겼고, 이것이 한나라당 패배의 결정타가 됐다. 과거냉전시대의 이분법적 접근이 이들의 마음을 돌리게 했다는 분석이 훗날 나왔다.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극우는 한나라 지지층의 3분의 1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익명으로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조선일보 고위관계자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다. 조선일보 독자 중 김대중-류근일-조갑제 같은 극우적 성향의 글에 열광하는 독자는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3분의 2는 이들의 극단적 글에 고개를 돌린다. 조선일보 기자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김대중 전주필과 조선일보 젊은 기자들 사이에 종종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3분의 1의 독자를 버릴 수 없기에 김대중씨 등의 글을 계속 싣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지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3분의 1 정도는 분명 극우적이고 수구적이다. 그러나 나머지 3분의 2는 그렇지 않다. 더욱이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기 위해선 탈이념적이고 합리적인 40대 중간층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고의 틀을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 1백년만의 대참사를 겪은 북한 동포들에게 비상 생필품과 의약품 등을 보내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나라당이 물밑에서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나라 3룡'의 이념적 유연성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우 한때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의 전폭적 지지를 반가워했다. 그는 '한반도기'를 가장 싫어한다는 말을 이들 극우진영에 하기도 했다. 이에 한때 "이명박을 앞세워 골수보수 신당을 만들자"는 주장이 극우진영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측근들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자신의 이미지가 수구보수로 비치는 걸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얼마 전 한나라당 대표 경선때 극우진영으로부터 이재오 후보와 함께 싸잡아 색깔공세를 당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대표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박 전 대표측은 집권전략을 '서진정책'과 '북진정책'으로 잡고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마음을 얻어 호남의 벽을 부수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남북의 벽을 부수겠다는 구상이다. 박 전대표는 여야 대권주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몇 년 전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만난 경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남들이 갖고 있지 못한 이 경험을 적극 활동하겠다는 계획이다.
박 전대표가 오는 9월 중국과 독일을 방문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중국에선 선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강연하고, 독일에선 통독 과정을 살펴볼 예정이다. 탈이념적 이미지를 구축하려 하는 것이다. 실제로 박 전대표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론이 한창이던 지난해 1월 미국의 극우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 초청으로 방미한 자리에서 “한반도 전쟁은 용납 못한다. 햇볕정책이 해법이다”라는 요지의 강연을 해 미국 극우들을 질색케 한 적도 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지사 재직시절 북한과 접경한 경기도를 평화지대로 만든다는 구상아래 공동 벼농사를 짓는 농장 설립 등을 위해 여러 차례 북한을 갔다 온 경험이 있다. 지만원 등 극우인사로부터 "친북좌파"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손 전지사는 "남북경협은 북한의 개방개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축했다.
대북 정책에 관한 한, 세 대권주자 모두가 상당한 수준의 이념적 유연성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의 '폰 바이체커' 벤치마킹
한나라당의 이념적 유연성은 앞으로 차기 대선운동이 본격화할 경우 “통일을 위해서라도 보수진영에서 차기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논리로 대외적으로 보다 극명하게 천명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벌써부터 여의도연구소 등 한나라당 두뇌집단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같은 통일 얘기를 해도 진보출신보다는 보수출신 대통령이 해야 국민적 통합을 이루기 쉽다"는 논리다. 그동안 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던 통일까지도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최근 즐겨 예로 드는 것이 ‘독일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리 브란트와 폰 바이체커의 ‘위대한 우정’이다. 이는 합리적 보수원로인 강원룡 목사가 수년 전부터 한나라당 등에 대해 주창해온 가르침이기도 하다.
진보계열인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가 1970년 독일 총리가 된 뒤 단행한 통일정책이 그 유명한 ‘오스트폴리티크(동방정책)’이다. 그는 동방정책을 통해 동독, 동유럽의 기타 공산국가들,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함으로써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았다. 특히 그가 국교정상화 협약 체결을 위해 폴란드를 방문, 나치 희생자 기념관의 비 젖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려 폴란드인들의 용서를 이끌어낸 대목은 지금도 ‘세계 정치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브란트 총리가 처음 동방정책을 추진할 때만 해도 독일내 보수진영의 저항이 대단했다. 특히 그가 폴란드 방문후 오데르-나이세 선을 폴란드의 서부 국경선으로 인정하는 독일-폴란드 불가침 조약을 맺으려 하자 반발이 엄청났다. 야당인 보수 기민당 등은 “이 조약은 독일 영토의 상실을 의미한다”며 브란트를 “매국노” “빨갱이”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단 한사람 폰 바이체커만은 달랐다. 기민당 중진의원인 그는 국회에서 “동방정책은 민족 통일을 위한 일인 만큼 대국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당리당략을 떠나서 사심을 버리고 여당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감동적 연설로, 보수적 국민들까지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지지케 만들었다. 바이체커는 훗날 독일 대통령이 돼서도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변함없이 승계했다.
바이체커와 친분이 두터운 강원룡 목사는 자서전 <역사의 언덕에서>를 통해 한국의 보수정치권에 이같은 조언을 한 바 있다.
“내가 본 바이체커는 진정한 정치가였다. 그는 평소 소신대로 자신이나 자기 정당의 이해보다 민족의 이해를 먼저 생각한 정치가였다. 물론 독일에도 이런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특히 이런 정치가가 나와야 한다. 그의 이런 자세를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이 나와서 남북문제, 여야문제, 지역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정치가는 찾기 힘들고 정략가들만 많다. 민족의 장래와 다음 세대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가, 그리고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소속 정당의 정략을 거부하고 반대당과 협력할 수도 있는 정치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한나라당의 최근 변화가 과연 강원룡 목사가 주문한 수준의 변화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나라당 곳곳에 아직도 냉전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고, 색깔론도 수시로 고개를 내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조짐’은 분명 곳곳에서 읽히고 있다. 앞으로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지난 3일 오전 한나라당 염창동 당사 회의실.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북한이 1백년만의 대홍수로 1만명의 인명피해와 1백30~1백50만명의 이재민이 생겼다"며 "동포애적 입장에서 북한의 김정일 체제와 인민과는 구별해야 하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주도해 기초적 구호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날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좋은 벗들’의 발표 내용을 인용, 북한 수해 참사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대북 지원을 주장하고 나선 것. 그는 "북한의 미사일 사태 이후 정부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지원을 끊고 인도적 지원을 살려야 하는데 오히려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며, 식량-비료 추가지원을 중단한 정부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정 최고위원은 안기부 출신의 대표적 ‘매파’로 인식돼 왔던 만큼 그의 제안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욱 주목을 끈 것은 한나라당 대응이었다. 정 최고위원 제안에 대해 한나라당 지도부가 "수재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선뜻 합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정 최고위원의 제의에 대해 비공개로 장시간 숙고 끝에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회의후 "한나라당은 북한 정권과 주민은 분리해서 대응하고 있고 인도적 차원, 동포애적 입장에서 수재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 민간단체의 북한 지원은 적극 환영 ▲ 정부는 북한이 수재로 인해 입은 피해상황과 규모 등을 적극 확인할 것 ▲ 북한 수재민에 필요한 의약품과 생필품 지원 촉구 등의 의견을 모았다.
‘색깔론’ 이미지로 점철된 한나라당의 이 결정은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당들 가운데 가장 먼저 대북 지원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김병준 퇴진-문재인 법무장관설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전쟁 중'이었다. 그런 탓인지 대북 수해 지원 문제는 관심밖이었다. 극히 일각에서는 ‘가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괜히 대북 지원 문제를 꺼냈다가는 보수세력들로부터 맹공을 받을 것을 우려해 눈치만 보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한나라당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어퍼컷을 한방 맞고 크게 당황해 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다음날인 4일 서둘러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대북지원 사업의 재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양당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환영한다"며 "어떤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대북지원은 흔들림 없이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동참 입장을 밝혔다. ‘평화민주세력’ 대변자로 자처해온 열린당으로선 부끄러운 늦대응이었다.
임태희 소장 "수구적 모습 보이면 '중도 표' 못 끌어온다"
“한나라당이 무슨 변신? ‘즉흥적’인 게 아니겠나.”
대북 지원 파동을 지켜본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색깔론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한 일회적 대응에 불과하다는 혹평이다.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봐라. 이재오 후보를 빨갱이로 몰지 않았나. 십수년 전 변심한 운동권 출신까지 빨갱이로 모는 마당에 무슨 놈의 변신이냐. 쇼일 뿐이다.” 그의 첨언이다.
맞는 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요즘 한나라당 수뇌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입만 열면 안보보수, 반공보수 등 수구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어떻게 중도성향의 표를 끌어올 수 있나. 실제로 한나라당 지지자 중 그렇게 수구적 색채를 보이는 세력은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를 새로 책임 맡은 임태희 소장이 지난달 28일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2007년 대선 필승법’으로 “40대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가치관이 진보-보수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이슈에 따라 반응이 다르더라. 그런데 모든 이슈에 대해 반응을 많이 하는 계층이 40대다. 이 40대를 잡아야 대선에서 이기게 된다."
"40대는 문제 해결자적 지위에 있어서 그렇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조직에서도 40대는 모든 문제가 자기 자신의 문제다. 모든 문제에 대해 다 고민을 한다. 10대-20대는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라는 점을 고민하지 않는다. 40대는 이런 문제들에 다 고민한다. 자기 자식의 문제이고 자기 부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고민들에 대한 답을 제시할 때 외연확대를 확실히 할 수 있다."
그의 분석은 정확하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은 40대 중반 이하를 노무현 후보에게 빼앗겼고, 이것이 한나라당 패배의 결정타가 됐다. 과거냉전시대의 이분법적 접근이 이들의 마음을 돌리게 했다는 분석이 훗날 나왔다.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극우는 한나라 지지층의 3분의 1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익명으로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조선일보 고위관계자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다. 조선일보 독자 중 김대중-류근일-조갑제 같은 극우적 성향의 글에 열광하는 독자는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3분의 2는 이들의 극단적 글에 고개를 돌린다. 조선일보 기자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김대중 전주필과 조선일보 젊은 기자들 사이에 종종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3분의 1의 독자를 버릴 수 없기에 김대중씨 등의 글을 계속 싣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지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3분의 1 정도는 분명 극우적이고 수구적이다. 그러나 나머지 3분의 2는 그렇지 않다. 더욱이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기 위해선 탈이념적이고 합리적인 40대 중간층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고의 틀을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 1백년만의 대참사를 겪은 북한 동포들에게 비상 생필품과 의약품 등을 보내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나라당이 물밑에서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나라 3룡'의 이념적 유연성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우 한때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의 전폭적 지지를 반가워했다. 그는 '한반도기'를 가장 싫어한다는 말을 이들 극우진영에 하기도 했다. 이에 한때 "이명박을 앞세워 골수보수 신당을 만들자"는 주장이 극우진영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측근들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자신의 이미지가 수구보수로 비치는 걸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얼마 전 한나라당 대표 경선때 극우진영으로부터 이재오 후보와 함께 싸잡아 색깔공세를 당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대표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박 전 대표측은 집권전략을 '서진정책'과 '북진정책'으로 잡고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마음을 얻어 호남의 벽을 부수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남북의 벽을 부수겠다는 구상이다. 박 전대표는 여야 대권주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몇 년 전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만난 경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남들이 갖고 있지 못한 이 경험을 적극 활동하겠다는 계획이다.
박 전대표가 오는 9월 중국과 독일을 방문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중국에선 선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강연하고, 독일에선 통독 과정을 살펴볼 예정이다. 탈이념적 이미지를 구축하려 하는 것이다. 실제로 박 전대표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론이 한창이던 지난해 1월 미국의 극우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 초청으로 방미한 자리에서 “한반도 전쟁은 용납 못한다. 햇볕정책이 해법이다”라는 요지의 강연을 해 미국 극우들을 질색케 한 적도 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지사 재직시절 북한과 접경한 경기도를 평화지대로 만든다는 구상아래 공동 벼농사를 짓는 농장 설립 등을 위해 여러 차례 북한을 갔다 온 경험이 있다. 지만원 등 극우인사로부터 "친북좌파"라는 비난을 받았으나 손 전지사는 "남북경협은 북한의 개방개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축했다.
대북 정책에 관한 한, 세 대권주자 모두가 상당한 수준의 이념적 유연성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의 '폰 바이체커' 벤치마킹
한나라당의 이념적 유연성은 앞으로 차기 대선운동이 본격화할 경우 “통일을 위해서라도 보수진영에서 차기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논리로 대외적으로 보다 극명하게 천명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벌써부터 여의도연구소 등 한나라당 두뇌집단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같은 통일 얘기를 해도 진보출신보다는 보수출신 대통령이 해야 국민적 통합을 이루기 쉽다"는 논리다. 그동안 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던 통일까지도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최근 즐겨 예로 드는 것이 ‘독일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리 브란트와 폰 바이체커의 ‘위대한 우정’이다. 이는 합리적 보수원로인 강원룡 목사가 수년 전부터 한나라당 등에 대해 주창해온 가르침이기도 하다.
진보계열인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가 1970년 독일 총리가 된 뒤 단행한 통일정책이 그 유명한 ‘오스트폴리티크(동방정책)’이다. 그는 동방정책을 통해 동독, 동유럽의 기타 공산국가들,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함으로써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았다. 특히 그가 국교정상화 협약 체결을 위해 폴란드를 방문, 나치 희생자 기념관의 비 젖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려 폴란드인들의 용서를 이끌어낸 대목은 지금도 ‘세계 정치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브란트 총리가 처음 동방정책을 추진할 때만 해도 독일내 보수진영의 저항이 대단했다. 특히 그가 폴란드 방문후 오데르-나이세 선을 폴란드의 서부 국경선으로 인정하는 독일-폴란드 불가침 조약을 맺으려 하자 반발이 엄청났다. 야당인 보수 기민당 등은 “이 조약은 독일 영토의 상실을 의미한다”며 브란트를 “매국노” “빨갱이”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단 한사람 폰 바이체커만은 달랐다. 기민당 중진의원인 그는 국회에서 “동방정책은 민족 통일을 위한 일인 만큼 대국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당리당략을 떠나서 사심을 버리고 여당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감동적 연설로, 보수적 국민들까지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지지케 만들었다. 바이체커는 훗날 독일 대통령이 돼서도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변함없이 승계했다.
바이체커와 친분이 두터운 강원룡 목사는 자서전 <역사의 언덕에서>를 통해 한국의 보수정치권에 이같은 조언을 한 바 있다.
“내가 본 바이체커는 진정한 정치가였다. 그는 평소 소신대로 자신이나 자기 정당의 이해보다 민족의 이해를 먼저 생각한 정치가였다. 물론 독일에도 이런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특히 이런 정치가가 나와야 한다. 그의 이런 자세를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이 나와서 남북문제, 여야문제, 지역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정치가는 찾기 힘들고 정략가들만 많다. 민족의 장래와 다음 세대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가, 그리고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소속 정당의 정략을 거부하고 반대당과 협력할 수도 있는 정치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한나라당의 최근 변화가 과연 강원룡 목사가 주문한 수준의 변화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나라당 곳곳에 아직도 냉전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고, 색깔론도 수시로 고개를 내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조짐’은 분명 곳곳에서 읽히고 있다. 앞으로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