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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어려우면 민심 더 까다로와져"

5년째 택시 핸들 잡은 한 국회의원이 전하는 '요즘 민심'

한나라당이 '수해골프 파문' '호남비하' 발언 등으로 급락한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당 지도부가 휴가를 포기하는가 하면, '1백일 민심대장정'중인 손학규 전지사의 뒤를 이어 이재오 최고위원 등이 잇따라 민심대장정에 들어가는 등 비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5년 전부터 조용히 '민심 탐방'을 해온 의원이 있다. 한나당 경북 포항 북구의 이병석 의원은 매년 휴가철이면 고향이자 지역구인 포항서 택시운전을 한다. 운전을 하면서 민생체험에 나선지 벌써 5년째다. 지난달 30~31일에도 택시운전대를 잡았다.

재선 출신으로 당내에서 중도개혁파로 분류되는 이 의원의 택시운전은 맨처음 국회의원 선거 출마때 만난 택시기사들과의 약속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선거 때만 나타났다가 당선되면 코빼기도 보기 힘든 것 아닌가?”라는 택시기사를 빈축에 그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답했고, 그러자 “택시운전을 하라면 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에 5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고 이 의원은 밝힌다.

이 의원은 3일 한나라당에 홈페이지에 '나의 택시운전 체험기'라는 글을 통해 이틀간 택시운전을 하며 접한 요즘 민심을 전했다. 그의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편집자주>


작은 순두부가게 하는 할머니의 가르침

“경기가 어렵다고 입맛이 변하나? 어려울수록 입맛은 더 까다로워지는 법이야!. 밥도 찬도 한 번 더 신경 써야 돼. 이거 안 하면 망해. 사흘도리 문 닫고 또 생기고 하게 되는 거거든. 들어가는 게 많아지잖아. 정치가 뭐야. 이 때 힘을 들어 줘야지. 물가 올리고, 공공요금 올리고, 세금 올리면 누가 살아남겠어? 경기가 어려우면 민심도 더 까다로워지는 거거든? 정치가 살펴야지, 밥도 찬도 더 신경 써야지. 안 그러면 정치도 망해. 사흘도리 문 닫는다고…”

야율초재(耶律楚才)라는 이가 있었다. 거란족이면서, 거란을 무너뜨리고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의 고관이 되었다가, 다시 징키스칸의 참모가 되어 원(元)의 기틀을 세운 이. 사상 초유의 대제국의 기틀을 세울 때의 정치 철학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 “하나의 이로움을 세우는 것보다 (백성에게) 해로운 것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 더 낫다(興一利不若除一害)”는 것. 그 야율초재의 지혜를 우리 포항의 순두부가게 할머니에게서 나는 듣고 있었던 것.

한 옷가게 주인 "1백만원 벌어 80만원 세금으로 낸다"

오전 11시. 포항의 중심가인 우체국 앞. 휴일이고, 방학이라면 벌써부터 붐비고 있어야 할 곳이다. 그러나 거리는 마치 민방위 훈련 때의 상황처럼 꿈속인 듯 한산하다. 모두 해수욕장으로 간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마침 이곳에 내린 손님은 중앙상가에서 의류점을 하고 있으며 작은 노래방도 한다고 했다. 손님이 없어 가게 문을 열수도 닫을 수도 없는 상황이란다.

“100만원 벌어 80만원을 세금으로 낸다.”고 했다. 재산세와 공시지가가 오르면서 세금부담이 커졌단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어려운 경기에 세금고지서는 마치 해머로 내리치는 것과 같은 충격을 준다는 말일 것이다. 참여정부의 ‘세금폭탄’이라는 말은 애초의 뜻대로 ‘가진 사람’을 겨냥했다기보다는 서민들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말처럼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일반 택시기사 월수입은 1백만원, 개인택시는 1백50만원"

오전 5시가 지나는데도 마수걸이를 하지 못했다. 장성동 한 아파트 앞에서 이제 꼭 한 달 되었다는 기사를 만났다. 겨우 10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택시는 더 이상 생계 수단이 아닙니다. 겨우 아르바이트일 뿐입니다.” 부인들의 부업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정년퇴직 후에 자식들 다 키워놓고 하는 일이지만 젊은 사람들에게는 큰일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일한 시간을 보면 억울할 때가 있다고 한다. 야간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지만 주간에는 사납금 채우기가 어렵다고 했다. 경험 많고 콜 손님 많은 개인택시가 한달에 월 150만원 정도 번다니 근본적인 대책이 불가피하다.

지역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5년째 해마다 며칠씩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 ⓒ연합뉴스


"옛날과 다르다, 콧대 높아지면 절대 안 된다”

36도의 펄펄 끓는 아스팔트를 달려 송도해수욕장으로 갔다. 거리의 택시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작은 비취 파라솔 하나에 여남은 명의 기사들이 모여 있다. 다니면 가스만 닳을 뿐 차라리 기다리다 ‘콜’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했다. 새벽부터 벌은 것을 내 보이는데 3만원을 넘는 사람이 드물다. 내가 번 것은 겨우 1만 7,500원. 다시 ‘LPG특소세 면세’요구가 터져 나왔다. 지난 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이다. 이들은 ‘LPG 특소세 면세’가 숨구멍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택시가 왜 고급 교통수단인가? 버스처럼 보조금을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아이스크림 12개를 샀다. 오전에 내가 번 돈의 1/3이 나갔지만, 한 낮의 뜨거움 아래 잠시의 기쁨은 된 듯하다. 떠나려는데 몇 마디만 더 듣고 가란다. 사납금을 보태 주겠단다. 운행을 잠시 못해도 이야기는 들어야 할 터. 햇살보다 뜨겁게 요구가 쏟아졌다.

“택시의 수급을 조절해야 한다. 증차 요인이 있으면 증차하더라도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나라 당이 정권을 잡고, 옛날처럼 경기활성화 해라” “한나라당도 문제다. 나도 홍씨지만 수해에 골프 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옛날과 다르다, 콧대 높아지면 절대 안 된다.” “포항사람들은 이(명박)시장을 좋아하지만, 박(근혜)대표도 괜찮다. 둘이 깨지면 절대 안 된다.” “야당이라고 앉아만 있지 말고 여당을 설득해라.” “(기초의회)정당공천제는 없애야 한다.” 수많은 요구의 홍수 속에 한 분이 살짝 귓속말을 했다. “요즈음은 씨름도 안 한다. 한달에 한 번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인들이 소일거리가 없다.” ‘총체적’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모양이다.

3년째 국회서 제자리 맴도는 '대리운전자 관리법'

어느덧 오후 3시 반, 이제 교대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얼마나 벌었는가? 3만 7,000원이다. 사납금은 5만 7,000원인데 2만원이 부족하다. 가스를 충전하고, 차를 닦았다. 어차피 시민의 소리를 듣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닌가? 큰마음 먹고 통닭 3마리를 샀다. 오늘은 중복이 아닌가? 그리고 나도 점심을 거르지 않았는가?

회사에서는 시원한 수박이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가져간 통닭은 다른 어느 때보다 제몫을 한 듯하다. 교대 이후 얼마나 출출한 시간인가? 수박과 통닭을 나눠 먹는 동안에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대리운전문제. 야간의 대리운전뿐 아니라 대리운전자 수송차량조차 영업을 하니 택시는 더 어렵다는 것. 그러고 보니 이 문제도 아직 해결을 보지 못한 것이다. 2004년 ‘자동차 대리운전자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되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2004년 11월에 다시 발의되었으나 법안이 철회되고 지금 재발의가 준비 중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건교부와 경찰청이, 민간은 민간대로 대리운전업협회와 대리운전자협회로 나뉘어져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택시업계나 대리운전 업계만이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빠른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 의원 "쇼라도 이런 쇼는 괜찮지 않겠느냐"

처음 택시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정치 쇼’를 한다고 했었다. 그 때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쇼라도 이런 쇼는 괜찮지 않겠느냐?”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쇼는 아니지 않는가?” 며 웃어 넘겼다. 진정성은 세월이 가면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택시 운전은 나의 정치에 있어서 ‘거멀못’과 같은 것이다. 민본의 정치를 하게 하는 거멀못. 초심을 잃지 않게 하는 거멀못. 어쩌다 생기는 게으름을 물리치는 거멀못. 어쩌면 시민들보다, 내게 더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5년 전 들었던 요구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듣고 있어야 하는 민망함을 내년에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거멀못: 나무 그릇 따위의 터지거나 벌어진 곳이나 벌어질 염려가 있는 곳에 거멀장처럼 겹쳐서 박는 못. 편집자주)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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