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장관, 투기판에 기름 붓다
<뷰스 칼럼> "올해는 유동성 회수 안해" 발언 유감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19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윤증현 장관과 한은의 '인식차'
"올 들어 단기유동성이 60조원 이상 늘어나는 등 M1(통화)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전체유동성 상황을 잘 보여주는 M2(총통화)나 통화유통속도를 보면 상황이 다르다. 전체 유동성 상황을 보여주는 M2는 늘지 않고 있으며 통화유통속도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자산 가격이 일시적으로 오르는 것을 경기회복으로 잘못 알고 긴축 정책을 펴면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우를 범한다."
하지만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의 생각은 좀 달라 보인다.
김재천 한은 부총재보는 같은 날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정책토론회에 내놓은 발표자료를 통해 “이번 금융위기 파급과정에서는 금리 인하 및 유동성 공급 확대 외에도 비정통적인 정책수단들이 동원됐다”면서 “앞으로 경제상황 전개에 발맞춰 이런 정책기조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기조의 전환 시기 및 조절 속도는 경제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결정돼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으나, 한은이 유동성을 회수하는 '출구전략'을 검토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로이터> 등 외신들도 김 부총재보 발언의 중차대성을 파악, 이를 속보로 타전했다.
윤 장관, 불에 기름을 붓다
기획재정부와 한은의 시각차는 어찌 보면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윤증현 장관은 전임 장관과는 대조적으로 경기를 보는 데 일관되게 신중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경기 급락을 막았을 뿐, 아직 경기회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해왔다. 특히 정부 경기부양 효과를 빼면 민간부문의 업황은 형편없으며, 보유현금이 고갈돼 도산할 기업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또한 환율효과가 사라지면서 다시 경제환경이 악화될 가능성도 지적해 왔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마찬가지다.
이런 마당에 주식, 부동산시장에서 자산거품이 목격된다고 곧바로 유동성을 회수했다간 과거 90년대 일본이 경험했던 장기불황이나, 30년대 대공황때와 마찬가지로 '더블 딥' 함정에 빠지면서 불황이 장기화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윤 장관이나 이 총재 모두 공유하고 있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현재 금융시장, 부동산 등에서만 뱅뱅 맴돌며 또다시 자산거품을 만들기 시작한 작금의 '유동성 함정' 상황에 대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로는 부동산투기를 엄단하겠다고 하나, '엄단할 수단'은 말하지 못한다. 부동산경기 부양을 목표로 온갖 규제를 해제했기 때문이다. 기껏 예상되는 게 국세청의 세무조사나 '떴다방' 단속 정도이나, 과거에도 수없이 써먹었던 쓸모없는 전시행정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올해는 유동성을 회수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윤 장관의 발언이다. 그의 발언이 통화당국인 한은의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 행위'라는 점은 일단 접어두자. 그는 분명 "올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올해는 맘껏 투기적 행위를 해도 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게 분명하다. 불에 기름을 끼얹는 발언에 다름 아니다.
'거품없는 성장', 그 험난한 길
정책당국자는 '포커페이스'가 돼야 한다. 특히 금리 등 통화정책에 있어서 그러하다. 당국의 속내를 들킬 경우 이는 곧바로 돈 놓고 돈 먹는 '머니게임'을 벌이는 시장에서 거품 양산을 부추기는 등 일파만파의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경제는 '거품의 복수'를 혹독하게 당하고 있다. 이번 위기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거품없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다. 더이상 불로소득이 양극화를 심화시키며 경제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는 사회가 돼선 안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선 "거품은 경제의 윤활유"라는 종전의 그릇된 사고부터 버려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경제주체들은 '거품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듯 싶어, 앞날이 험난해 보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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