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남의 돈, 정신없이 바쁘다"
<뷰스칼럼> "V자형 회복확률 70%, 코스피 1,800 간다"?
최근 금융시장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동부건설이 지난 12일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300억원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가 참패했다. 청약률은 0.267 대 1. 발행목표액 300억원 중 겨우 80억원 어치만 팔렸다.
동부건설의 신용등급은 BBB. 투자적격중 맨아래다. 기관투자자들이 BBB급 이하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내부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어 회사채 인수를 기피했기에 할 수 없이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회사채를 팔려 하다가 참패한 것이다.
발행조건은 만기 1년6개월에 금리 10.3%였다. 초저금리 시대에 매력적인 조건이었으나 개인들은 외면했다.
반면 다음날인 13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하이닉스 증자에는 무려 25조8천307억원의 자금이 국내외에서 몰려들어 36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이닉스 신용등급은 앞의 동부건설보다 불과 한단계 높은 BBB+였지만, 하늘과 땅 만큼 큰 차이를 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원인은 여러가지일 거다. 건설업의 앞날을 어둡게 보는 반면, 반도체는 반대로 본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정부가 앞으로 하이닉스가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기간산업인데 가만 두고 보겠냐는 판단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성 싶다. 과거에도 현대전자 도산을 정부가 막아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번 사건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 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지 않는 기업으로는 그렇게 넘실대는 돈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중에 800조원의 엄청난 부동자금이 떠돌고 있으나, 그 돈이 금융권과 일부 대기업, 부동산 등지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의미다.
"요즘 강남의 돈, 정신없이 바쁘다"
타워팰리스 등 주상복합이 밀집한 강남 도곡동 일대의 부자고객들을 상대하는 모 시중은행 PB센터 책임자는 지난 몇달간 강남의 자금 흐름을 이렇게 전했다.
"1~3월에는 급매물로 헐값에 나온 아파트들을 싹쓸이했다. 그러다가 아파트 호가가 오르자, 이번에는 관심을 상가 매물로 바꾸고 있다. 이들은 은행 대출도 필요없어 한다. 정말 현찰을 많이들 갖고 있다. 우리 사회의 돈이 한곳으로 다 몰려 있는듯 하다."
그는 얼마 전 한 경제전문가가 PB고객들을 상대로 한 특강 내용을 전해주기도 했다.
"경제전문가가 말하길 앞으로 경기가 U자형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30%, V자형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70%라고 하더라. 그는 코스피지수가 1,800까지 수직상승할 거라고도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그는 이처럼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지금 강남의 돈들은 정신없이 빠르게 부동산과 증시를 들락거리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에 돈을 맡겨봤자 세금 떼고 나면 연리가 2% 정도로 물가 상승률보다 낮아 손해를 보는 판이니, 부지런히 증시와 부동산 등을 넘나들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지금 분위기를 보면 강남에선 이미 '경제위기'가 끝난 것 같다"고 했다.
양극화의 덫
과연 위기는 끝난 걸까.
과거엔 강남이 들썩이면 그 뒤를 비강남이 따르곤 했다. 앞으로도 그럴까. 하지만 앞의 동부건설 예에서도 볼 수 있듯, 돈이 기업 쪽으론 가려하지 않고 있다. 증시와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서만 맴돌고 있는 양상이다.
남대문 시장의 한 상인은 지금 경기를 "정말 최악"이라고 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갭을 메워주곤 있으나, 총수입 면에서 보면 "역대 최악"이라 했다. 서민들이 쓸 돈이 동났다는 얘기다. 이는 강남이 들썩여도 비강남이 따라 들썩일 수 없는 '양극화의 덫'에 빠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 외국계은행 책임자는 "경기 회복 여부를 놓고 전망들이 크게 엇갈리고 있으나,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세계경제 전체규모가 쪼그라들고 있으며 이런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점"이라며 "세계경제가 쪼그라드는데 한국만 예외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는 거품은 오래 갈 수 없는 법이다. 시중자금이 들어오지 않는데 오래 버틸 수 있는 기업도 없다. 또한 돈이 한곳에 몰려있는데 내수경제가 살아날 수도 없다. 아직 한국경제가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고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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