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만 왕따?"에 "한국 너무 느려"
<뷰스칼럼> 지금은 '제대로 된 속도전'이 필요한 때
영국 <로이터> 통신이 11일(현지시간) 밤 세계 10대 자산운용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10개 중 7개 운용사가 "한국 주식을 팔라"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주식을 사라"는 의견을 낸 곳은 단 1곳에 그쳤다. <로이터>가 조사한 12개 아태국가중 가장 부정적인 조사결과였다.
때마침, 한 대기업의 국제담당 임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국내에서 누구보다 월가에 정통한 국제금융전문가였다. 잘 됐다 싶어, 그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거냐?"
그의 답은 간단했다.
"구조조정을 제대로 안하니까 그런 거지, 뭐. 우리 최대경쟁국인 일본도 그렇고 전세계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데, 수출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아 이번 공황에 최대 타격을 받고 있는 한국만 아직은 괜찮다며 정부나 기업, 은행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으니...너무 느리다고 보고 있는 거야."
요컨대 '너무 느리다(too late)'가 한국 비관론의 핵심이라는 답이었다.
실제로 'too late'라는 표현은 한국을 다루는 외신이나 외국분석자료 곳곳에서 목격되는 단어다. 이들은 앞서 채권단이 그 난리법석을 치루고 겨우 건설-조선사 1곳씩만 퇴출시켰을 때도 이런 냉소적 표현을 썼었고, 최근 수출이 반토막나고 있는 한국의 주력수출산업에 대해서도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오마에 겐이치의 '비아냥'
얼마 전, 일본 <로이터> 홈페이지에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가 연초에 한 일본잡지에 쓴 원고지 수백쪽의 글이 며칠간 핵심 박스로 대문짝만하게 게재된 적이 있다. 당면한 공황하에서 일본이 향후 100년후에도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다룬 글이었다.
맥킨지 출신의 오마에는 국제무대는 물론, 국내에서도 지명도가 대단히 높은 인물이다. 그는 오랜기간 LG그룹 컨설팅도 했었고 수많은 언론과도 수시로 인터뷰를 해왔으며 그의 많은 저서도 번역됐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쓴 이번 글은 엉뚱하게도 미국과 한국 비판으로 시작됐다. 요지인즉 미국과 한국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폴슨 당시 미 재무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이 제대로 위기의 본질을 파악 못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또한 한국은 기초산업 없이 기형적으로 외형만 커져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불균형을 고치려는 노력을 도통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요컨대 일본도 미국-한국처럼 되지 않으려면 국가 지도층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국제무대에서 어떻게 생성, 확산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증거였다.
윤증현의 기선 제압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스타트'를 잘했다. 취임 일성으로 과감하게 '-2% 성장'과 '일자리 -20만개'를 선언한 게 그렇다.
IMF가 '-4%'를 전망한 마당인만큼 당연한 게 아니냐고 볼 수도 있으나, 아마도 강만수 장관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다. 물론 강 장관은 물러나면서 "나도 지난해말 이미 이대통령에게 마이너스성장을 보고했다"고 허튼소리를 했지만.
윤 장관의 선언이 과감했다는 건, 한국은행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0.3%냐 0.8%냐"를 놓고 고심했다는 한은 내부의 전언을 봐도 그렇다. 윤 장관이 치고나가자, 곧바로 다음날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 등이 신속히 -2%대 수정 전망치를 내놓았다. 윤 장관이 일단 기선을 제압한 모양새다.
정부가 위기의 심각성을 정확히 밝힌 것은 분명 진일보한 것이다. 정부가 '솔직'해야 비로소 리더십이 생기기 때문이다. 전임 강만수팀은 낙관론을 펴다가 외부의 비관론에 끌려가는 모양새로 리더십을 상실해왔기에 더욱 그러하다.
제대로 된 '속도전' 필요
문제는 앞으로다. '너무 느리다(too late)'는 인식을 깨야 산다.
앞으로 거액의 추경편성이 불가피할 것이다. 일각에선 10조원 운운하나 이 정도는 껌값이다. 본격적으로 기업들이 쓰러지고 금융사들이 부실화하며 실업자가 길거리에 넘쳐나면 10조원보다 몇배, 많게는 십수배 많은 추경이 필요할 거다. 앞으로 몇번에 걸쳐 찔끔찔끔 추경을 짜느니, 정확한 수요에 기초해 한번에 과감히 추경을 짜야 한다.
내수 붕괴 위기에 직면하면 대만처럼 '시한부 쿠폰'도 빈곤층과 신빈곤층에게 신속히 나눠줘야 할 것이다. 설계 등에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토목공사 운운하다간 실기(失期)하기 십상이다. 빈곤층-신빈곤층을 살리는 데야말로 '속도전'이 필요한 것이다.
기업-금융 구조조정도 당연히 속도전 대상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부실만 몇배 커질뿐이다. 기업-산업 구조조정 마스터플랜을 빨리 짜야 한다. 특히 최고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환율에 의존하거나 부동산거품, 또는 중국특수 등에 의존하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부숴야 한다. 공황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속도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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