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한국 신용등급 방어 극비작전'
<뷰스칼럼> 5년전 반기문, 왜 무디스-S&P-피치로 달려갔나
2003년 3월, 반기문이 급거 방미한 이유인즉
반 장관이 먼저 점심이나 한끼 같이 하자고 해 마련된 자리였다. 반 장관의 최우선 관심사는 당시 치뤄지던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까였다. 미국대통령이 누가 될지에 따라, 한국이 처할 외교지형도 크게 바뀔 게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 대선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이 현역 프리미엄으로 유력시되나 민주당 케리 후보 역시 만만치 않은 강세를 보이던 상황이었다. 부시의 일방주의에 대한 국내외적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반 장관도 마찬가지 상황판단을 하면서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물밑외교를 하고 있었다. 케리 진영의 외교안보라인들과도 접촉을 갖고 이들중 일부는 한국에 조용히 초청까지 했다고 밝혔다. '외교대가(大家) 반기문'다운 철저한 대비였다.
하지만 이날 만남에서 가장 큰 성과(?)는 반 장관에게서 직접 들은 노무현정권 출범 초기의 심각한 '국가신용등급 하락 위기' 상황이었다.
노무현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03년 3월9일 반기문 당시 대통령 외교안보보좌관은 권태신 재경부국장, 차영구 국방부정책실장과 함께 급거 미국으로 날아가야 했다. 미국의 세계적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와 S&P가 한국 신용등급을 무려 두단계나 낮추려 한다는 첩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반미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반기문 당시 외교안보보좌관은 무디스 본사에서 7명의 심사위원들과 만나 "제발 한국의 신용등급을 떨어트리지 말아달라. 노대통령의 대미정책은 앞으로 확연한 변화를 보일 것이다. 노대통령의 방미때까지 두달만 시간을 달라"고 몇시간씩 호소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이 '대통령 외교안보보좌관'임을 밝히며 자신의 말은 노 대통령 메시지임을 밝히기도 했다.
S&P를 찾아서도 마찬가지 호소를 했고, 이어 귀국길에 홍콩에 들러 또다른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를 만나서도 마찬가지 호소를 했다.
반기문 장관은 "홍콩에 머물고 있을 때 무디스로부터 시간을 주겠다는 통고를 받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며 "노 대통령이 그로부터 두달뒤 미국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이 아니었다면 나는 북한 강제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란, 노 대통령 성품상 하기 힘든 말까지 했던 것도 이런 전후사정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후 무디스는 신용등급을 두 단계 내리는 대신, 신용등급전망만 낮추는 조치를 취했다.
2008년 11월, 피치의 기습적 신용등급전망 하락
2008년 11월10일, 피치가 기습적으로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한단계 낮췄다. 정부가 크게 당황해하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중은행 외채에 대한 정부 지급보증이후 무디스, S&P가 신용등급 유지 방침을 밝히자, 신용등급 위기는 물 건너갔다고 장담했었다. 그러다가 피치로부터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피치 발표후 가진 긴급기자회견에서 "세계경제전망이 어두워졌는데 이중 가장 영향을 받는 나라들의 등급전망이 조정된 것"이라며 글로벌 경기침체 탓을 했다. 하지만 리뷰대상 아시아 6개국중 왜 한국과 말레이시아만 등급이 떨어지고, 중국 인도 대만 태국 4개국은 그대로인가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최 국장은 S&P, 무디스 등의 신용등급 하향조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각 신용평가사마다 주안점을 두고 있는 사항이 다르다"며 "S&P나 무디스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 주고 있는 피치가 신용등급 전망을 바꾼 것이 영향을 주기는 힘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뻥튀기'를 해온 피치가 등급을 무디스, S&P 수준으로 낮춘 것뿐, 크게 개의할 것 없다는 식이다.
왜,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나
하지만 정부 주장과 달리, 한국을 보는 외국계 시선은 싸늘하다. 왜 그런가.
피치는 신용등급 전망을 낮추며 "급격한 경기 침체에 따른 은행권의 디레버징(차입감소) 부담 증가와 자산건전성 악화로 인해 한국의 대외 신용도가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문제라는 것이다.
은행은 지금 정부 지급보증에도 계속되는 외국계의 단기외채 회수와, 과도한 가계-건설대출 부실화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외국계가 더 큰 문제로 보는 것은 정부가 한계기업들에 대한 추가대출을 압박하고, 가계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등 은행 부실화를 심화시킬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정책을 취하려면 미국-유럽처럼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영화해야 하나, 그런 조치없이 은행만 찍어누르는 모양새를 보이니 외국계가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공식적 거론을 삼가하고 있으나 남북관계 긴장 고조다. 다행히 버락 오바마 당선으로 북-미간 긴장은 크게 완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이 개성공단기업 축출 메시지를 보내는 등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외국계 CEO는 "과거에는 북미 갈등이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위협했다면, 지금은 남북 갈등이 국가신인도를 위협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지금 상황은 국가신용등급이 흔들리기 시작한 위기상황이다. 5년전 같은 위기때, 반기문 당시 외교안보보좌관은 신속히 미국으로, 홍콩으로 날라가 신속히 불을 껐다. 하지만 지금 경제-외교안보팀은 내심은 그게 아니겠으나 겉으론 별 것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위기대응 능력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의 최대 위기는 정부의 '위기불감증'이란 지적이 결코 지나친 과장만도 아닌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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